농업인의 목소리를 '기술로'…데스밸리의 해법 'R&I'

농업인의 목소리를 '기술로'…데스밸리의 해법 'R&I'

이승돈 농촌진흥청장
2026.04.16 06:00
이승돈 농촌진흥청장
이승돈 농촌진흥청장

답은 늘 현장에 있다. 농업인이 맞닥뜨리는 불편과 애로가 절실한 질문이 되어 연구의 출발점이 될 때 기술은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연구 성과는 논문과 보고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농업인의 손에서 쓰이고, 일상에서 효용이 입증될 때 비로소 해법이 된다. 농업 연구개발로서 온전한 의미도 완성된다. 기술은 현장을 떠나 존재할 수 없고, 현장이 외면한 성과는 지속할 수 없다.

갈수록 우리 농업은 더 빠르고 더 정밀한 대응을 요구받고 있다. 기후 위기와 공급망 불안이 겹치면서 농업 환경은 한층 가혹해지고 있다. 이상기상은 작황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생산비 부담 또한 농가 경영을 힘겹게 한다. 이런 때 농업의 자생력을 키울 첫 단추는 결국, 현장이다. 현 정부가 강조하는 농업 R&D(연구개발)의 방향도 분명하다. 연구실을 벗어난 '현장 체감형 기술 개발'이다. 성과의 축적보다 농가의 생산성과 안전, 소득의 실질적 변화에 집중해야 한다. 농업인이 변화를 체감하는 기술을 구현할 때 진정한 연구개발의 가치가 빛난다.

오랜 시간 연구와 현장 사이에는 높은 장벽이 존재해 왔다. 혁신적이고 유망한 기술을 개발하고도 실증과 확산의 문턱을 넘지 못해 멈춰서고 마는 일이 반복돼 왔다. 이른바 '데스밸리(Death Valley)'다. 기술의 잠재력이 현장에 닿지 못한 채 사장되는 이 구조적 단절을 끊어내는 것이야말로 농업 혁신의 선결 과제다.

농촌진흥청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의 R&D를 넘어 R&I(연구혁신)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기술 개발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혁신을 책임지는 구조를 갖춤기 위해서다. 이렇게 해야 농업인의 일상과 경영이 바뀐다.

그 중심에는 '현장 의견 전주기 관리 체계'가 있다. 지난해 농촌진흥청으로 접수된 현장 기술 수요와 민원은 2만 4,500여 건에 이른다. 이러한 현장의 요구는 '접수–검토–대응–환류' 시스템에 따라 통합 관리된다. 단순 문의는 5일 이내, 기술 지원이 필요할 때는 30일 이내 현장 컨설팅을 진행해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가 연구와 정책에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체계로 정비하고 있다. 아울러, 중요한 것은 접수로 그치지 않고 해답을 들고 다시 현장을 찾는 책임 있는 행정의 실현이다.

이때 핵심은 현장의 수요를 연구과제, 시범 사업을 통해 중장기 과제로 연결하는 데 있다. 지난해 딸기 농가의 시들음병 조기 진단 기술 요청은 연구과제로 전환됐고, 스마트 전기화재 감지기 지원은 47개 시군 시범사업 지침에 반영되며 올해부터 추진된다. 현장의 목소리가 연구와 정책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연구개발 과정도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다. 현장 명예 연구·지도관 제도를 통해 농업인은 과제 기획부터 평가, 실증까지 직접 참여하고 있다. 내년 신규 R&D 사업 역시 기획 단계부터 농업인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농업인이 문제를 제기하고 연구자가 해결책을 찾는 이 협력 구조야말로 데스밸리의 벽을 넘을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제 국가 R&D 평가는 예산 투입액이 아니라 현장의 애로를 실제로 해결한 성과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농촌진흥청은 도 농업기술원·시군 농업기술센터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연구와 기술 확산의 출발점이 되는 현장 중심 R&I 체계를 점차 고도화할 것이다.

기술의 가치는 농업인의 손끝에서 드러난다. 그 성과가 생산성 향상과 소득 증대,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때 농업 혁신도 완성된다. 농촌진흥청은 현장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세심한 소통으로, 대한민국 농업 혁신의 답을 현장에서 찾고 그 해법을 다시 현장에 돌려드리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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