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열의 '임팩트 이코노미'-제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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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인공지능) 열풍이 거세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AI가 얼마나 똑똑해졌는가"가 아니라 "AI가 누구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이다. 기술은 사람의 고통을 줄이고, 사회 비효율을 낮추며, 오랫동안 풀지 못한 문제에 실제로 작동하는 해법을 만들 때 비로소 혁신이 된다.
필자는 '임팩트 이코노미'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칼럼을 시작한다. 임팩트 이코노미란 기업과 자본, 기술과 정책이 재무적 성과뿐 아니라 사회·환경적 성과까지 함께 만들어내는 경제다. 사회문제 해결을 정부와 비영리기관의 몫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기업의 성장과 투자 활동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만들도록 경제의 작동 방식을 바꾸자는 것이다.
그 핵심 수단 중 하나가 임팩트 투자다. 임팩트 투자는 재무적 수익과 함께 측정 가능한 사회·환경적 성과를 의도적으로 추구하는 투자다. 이익을 낸 뒤 일부를 기부하는 방식이 아니라, 투자 대상의 사업모델 자체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도록 자본을 배분한다.
'임팩트 투자'라는 용어는 2007년 록펠러재단이 주도한 논의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됐고, 2009년 글로벌임팩트투자네트워크가 출범하면서 하나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처음에는 빈곤, 금융소외, 주거와 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적 투자로 인식됐지만, 지금은 기후위기와 고령화, 의료, 교육, 에너지 전환 등 거대한 산업 변화와 결합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사회적 기업과 소셜벤처에 대한 정책금융과 민간투자가 축적되며 시장이 확대됐다. 2010년대 초반 사회적 기업 투자조합과 소셜벤처 육성정책을 중심으로 기반이 형성됐고, 2018년 정부의 사회적금융 활성화 방안과 모태펀드·성장사다리펀드 등의 자금 공급을 계기로 제도권 벤처투자의 한 축으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임팩트펀드는 2004년 7개, 운용자산 1000억원에서 2024년 301개, 6조6500억원으로 성장했다. 20년 동안 펀드 수는 40배 이상, 운용자산은 60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다만, 사회적 기업과 소셜벤처, 기후·ESG 펀드의 포함 범위에 따라 시장 통계에는 차이가 날 수 있다. 숫자의 성장만큼 무엇을 임팩트로 볼 것인지, 사회적 성과를 어떻게 측정하고 검증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일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이제 중요한 것은 커진 임팩트 자본이 앞으로 어떤 문제와 해법을 향할 것인가이다. 기후위기와 고령화, 의료·돌봄공백, 교육 격차처럼 기존의 인력과 재정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 기술의 역할은 더 커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AI는 사회문제 해결의 속도와 비용 구조, 확장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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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러한 가능성에 주목해 3년 전부터 AI 기술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을 집중적으로 발굴하고 투자해왔다. 단순히 유행을 좇아서가 아니라, AI가 복잡하고 오랫동안 방치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사람의 삶과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AI 기업을 '임팩트 AI'라고 부른다.
이는 단순히 '착한 기업'이라는 수식어가 아니다. 가장 복잡하고 오래 방치됐으며 기존 방식으로는 해결하는 데 비용과 시간이 지나치게 많이 들었던 문제를 AI로 풀어내는 기업이다. 사회 문제는 거대하지만, 이를 해결하는 시장은 작다는 기존의 통념을 기술로 뒤집는 기업이기도 하다.
AI가 특히 잘하는 일은 영상과 음성, 센서, 생체신호, 에너지와 학습 데이터처럼 복잡하고 흩어진 정보에서 사람이 발견하기 어려운 패턴을 찾는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찾을 수 있었던 최적의 해법을 빠르게 찾아내고, 위험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다.
사회문제 해결에는 선의만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기술, 확장 가능한 비용 구조, 현장에서 축적되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사람이 한 명씩 제공하던 서비스를 기술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낮은 비용으로 전달해야 한다. AI는 이 세 가지를 결합할 수 있다.
과거 아동노동 문제를 연구하면서 접했던 해법은 캠페인, 불매운동, 공급망 감시와 현장 감독이었다. 모두 필요했지만 사람이 직접 가야 문제를 볼 수 있었고, 조사가 끝난 뒤에야 상황을 알 수 있었으며, 대부분 사후 대응에 머물렀다. 이제 드론과 비전 AI는 농장과 작업장의 영상을 분석해 위험 지역과 아동노동 가능성을 더 빨리 포착할 수 있다. 기술이 선언을 감시로, 감시를 예방으로 바꾸는 것이다.
헬스케어와 돌봄에서도 변화가 시작됐다. 환자의 움직임과 근육 반응을 분석해 집에서도 재활훈련을 돕는 AI 홈재활, 내시경과 의료영상을 분석해 암의 조기 발견을 보조하는 의료 AI, 비접촉 센서로 심박과 호흡, 미세 움직임을 읽어 이상 징후를 감지하는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병원과 시설에만 의존하던 돌봄이 집과 지역사회로 확장되는 것이다.
환경 분야에서는 AI와 사물인터넷으로 건물의 온도와 이용 패턴을 분석해 냉난방 설비를 자동 제어하고 전기료와 탄소배출을 함께 줄인다. 교육에서는 개인별 학습 수준을 진단하고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해 지역과 소득에 따른 교육 격차를 완화할 수 있다. AI가 교사를 대체할 수는 없지만 좋은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한 학생의 첫 번째 조력자는 될 수 있다.
동시에 딥페이크, 허위정보, 차별적 알고리즘과 사이버 공격처럼 AI가 만든 문제도 새로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임팩트 AI에는 돌봄과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뿐 아니라 AI 오남용을 감지하고 알고리즘의 편향과 위험을 점검하며 기술의 안전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AI도 포함돼야 한다.
아직 임팩트 AI라는 시장은 충분히 명명되지 않았다. 장애, 돌봄, 안전, 에너지 빈곤과 교육 격차처럼 사회적 필요는 크지만 초기 시장 형성이 느린 분야의 기업은 기술 검증과 현장 실증, 규제 대응, 고객 확보를 동시에 넘어야 한다. 이때 임팩트투자는 단순히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시장성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더라도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 자본이어야 한다.
앞으로 이 칼럼에서는 △임팩트투자와 소셜벤처의 진화 △창업자와 생태계의 현실 △소상공인과 골목경제의 혁신 △기후테크와 돌봄경제 △지역소멸과 지역혁신 △기업의 사회공헌 자본과 ESG △임팩트 측정 그리고 기술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현장을 다루고자 한다. 임팩트 AI는 그 첫 번째 이야기다.
AI가 세상을 저절로 더 좋은 곳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누구의 시간을 줄였는지, 어떤 위험을 예방했는지, 비용을 얼마나 낮춰 더 많은 사람이 기술에 접근하게 했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투자자와 창업자, 정책입안자가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 자본과 기술, 제도와 신뢰를 연결할 때 혁신은 비로소 세상을 바꾼다. 기술이 사람을 향하고 자본이 사회문제 해결을 향하는 경제,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임팩트 이코노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