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Korea가 만드는 글로벌 미래] 2-⑦ 포기할 수 없는 철강, 화학, 디스플레이

포스코홀딩스(당시 포스코)의 2007년 시가총액은 56조원이었다. 명실상부 한국 제조업의 신화를 상징하는 기업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난달 기준 포스코홀딩스의 시가총액은 38조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철강 수익성 둔화 등의 악재에 기업가치가 뒷걸음 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발 공급과잉은 철강 업황 악화의 주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의 조강 생산량은 2015년 8억톤 수준이었으나 2020년 10억6476만톤까지 늘었다. 지난해에는 중국 정부의 감산 정책 영향으로 조강 생산량이 9억6010만톤으로 전년비 감소했지만 수출량은 역대 최대인 1억1902만톤을 기록했다. 중국 내 부동산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으로 수요가 줄어들면서 소화하지 못한 저가 물량이 해외 시장으로 대거 유입됐다는 의미다.
한국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업에서 주로 쓰이는 후판의 경우 중국산 수입량은 2022년 81만3000톤에서 2024년 138만1000톤까지 증가했다. 품질 격차도 과거만큼 크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가격이 사실상 승부를 가르는 상황이 됐다. 정부가 최근 중국산 후판 유입을 억제하기 위해 최대 38.02%의 잠정 반덤핑 관세 부과를 예고한 것도 이 같은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석유화학 업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기업들은 기술력과 품질 경쟁력을 앞세워 중국 기업과의 격차를 유지했으나 2022년 이후 사실상 장기 불황 국면에 진입했다. 중국이 에틸렌과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범용 석유화학 제품의 생산능력을 확대한 데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공급이 수요를 크게 웃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9년 2700만톤이었던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지난해 말 6000만톤을 넘어섰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에틸렌 공급과잉 규모가 연간 2000만~3000만톤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며 수급 불균형이 최소 2028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장기 부진을 버티지 못하고 구조조정에 착수한 배경이다. 개별 기업들은 비핵심 자산과 해외 자회사를 매각하는 등 자구 노력을 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정부가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마련하며 구조조정 논의를 본격화했다. 여수·대산·울산 등 각 산업단지를 기반으로 국내 NCC(나프타분해설비) 총 생산 능력의 18~25% 수준인 270만~370만톤을 감축한다는 목표다. 과거 증설 경쟁에 집중했던 기업들이 이제는 생존을 위한 감산과 사업 재편을 논의하는 상황으로 내몰린 셈이다.
디스플레이 업계마저 중국의 추격을 막기 어렵다. 중국 정부가 디스플레이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며 생산능력과 가격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린 결과다. 특히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약 70%에 달한다. 중국 기업의 공세에 삼성디스플레이는 2022년 LCD 사업 완전 철수를,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대형 LCD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는 아직 한국 기업들이 기술 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분야로 평가받지만 중국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의 '디스플레이산업 주요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글로벌 OLED 시장 점유율은 2023년 73.6%에서 2024년 67.2%로 감소했다. 중국은 같은 기간 25.7%에서 33.3%로 상승하며 격차를 좁혔다. 중국 기업들은 LCD 사업에서 확보한 수익을 OLED에 재투자하며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과거 LCD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했던 대규모 투자·증설 전략을 OLED에도 적용하며 한국 기업들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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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들 산업이 국내 제조업의 '근간'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철강은 자동차·조선·건설 산업의 기초 소재를 공급하고, 석유화학은 플라스틱·섬유·전자소재 등 제조업 전반의 원료 역할을 담당한다. 디스플레이는 반도체와 함께 한국 첨단 제조업의 경쟁력을 떠받쳐왔다. 개별 업종의 부진을 넘어 한국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이 단순한 저가 생산기지를 넘어 기술력을 고도화해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도 위기감을 키운다.
국내 기업들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당장 돈이 안 된다고 포기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포스코의 경우 고망간강, 전력용 전기강판 등을 8대 핵심 전략제품으로 선정하고 기술 개발부터 생산·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통합 관리하는 프로젝트팀 체계를 구축했다. 스페셜티 대응만이 살 길이라는 절박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화학사들도 NCC 비중을 줄이면서 고부가·친환경 소재 쪽으로 방향을 트는 중이다.
엄찬왕 한국화학산업협회 부회장은 "석유화학 등 산업은 국가 공급망 안정과 경제안보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며 "사업재편을 통해 경쟁력 회복에 나서고 있는 만큼 미래 성장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다 중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정책지원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