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대학 홍보수단이 돼 버린 삼성 '총장추천제'

[기자수첩]대학 홍보수단이 돼 버린 삼성 '총장추천제'

서진욱 기자
2014.01.28 05:43

'□□대는 삼성총장인재에 ○○명이 배정됐음을 알려드립니다. 기사에 □□대가 빠져 있습니다. 추가될 수 있도록 꼭 부탁드립니다.'

지난 주말 삼성그룹의 '대학총장 추천제' 할당인원과 관련한 기사를 출고한 직후 A 대학 관계자로부터 다급한 문자 1통을 받았다. A 대학에 할당된 인원 수가 빠졌으니, 꼭 반영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문자에는 삼성으로부터 받은 공문까지 첨부돼 있었다.

앞서 B 대학은 40여개 대학의 할당인원 통계 자료를 제공하면서, 자체적으로 배분율(정원 대비 인원 수)이란 지표를 추가했다. 그러면서 "B 대학은 학생정원별 수치로 계산하면 좋은 배정을 받았다"며 "관련 기사를 작성한다면 이를 고려해 달라"고 했다. 대학별 할당인원 순위에서 B 대학이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를 차지했다고 홍보하기 위해 통계를 재활용한 것이다.

이처럼 삼성의 총장추천제가 대학의 홍보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마치 할당인원 수가 취업률, 재학생충원율 등의 지표처럼 대학을 서열화하는 기준으로 쓰일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할당인원 수가 철저히 삼성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됐기 때문에, 서열화 지표로 활용돼선 안 된다는 점이다. 삼성은 정원과 해당 대학 입사자의 실적 등을 감안했다고만 설명했을 뿐, 구체적인 인원 할당 기준을 밝힌 적도 없다.

삼성은 총장추천제를 도입하면서 지원 경로를 다양화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대학별 할당인원 수를 집계한 보도가 나왔을 때에도 서열화를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관련 내용에 대해 함구했다. 하지만 대학들은 삼성의 의도와 달리 움직였고, 많은 이들이 '할당인원이 많으면 좋은 대학'이라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다.

총장추천제의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삼성은 △매사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인재 △전인적 인격을 갖춘 인재 △미래 삼성의 기둥이 될 성장 가능성 있는 인재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학 자체적으로 판단해 인재를 추천해 달라는 것이다. 보수적으로 운영되는 대학 특성상 추천인원 선발과정이 불투명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추천인원 선발을 둘러싼 학내 갈등마저 불거질 수도 있다.

공정한 추천을 위해 객관적 기준 및 평가를 도입한다면, 추천인원에 포함되기 위한 또 다른 과열경쟁이 유발될 수 있다. 이럴 경우 서류전형을 면제해 지원자들의 부담을 경감시키겠다는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

삼성은 이번 사태에 대해 "총장추천을 삼성 입사로 오해해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과연 총장추천제 자체의 문제점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었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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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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