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1등급만 받아도 SKY권 진입?..."절대평가 취지 무색"

영어 1등급만 받아도 SKY권 진입?..."절대평가 취지 무색"

정인지 기자, 유효송 기자
2025.12.08 15:33
2026학년도 영어 34번
2026학년도 영어 34번

#"의약학, 스카이(서울·고려·연세대) 합산 정원이 1만6000명인데, 영어 1등급이 1만5000명입니다. 영어 1등급을 받았다면 스카이권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돼요."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지난 7일 2026 수능 실채점 '합격 점수 예측 및 전략 설명회'에서 "올해 입시는 영어가 중대 변수로 떠올랐다"며 이렇게 말했다.

역대급 불영어 수능에 절대평가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상대평가에서 1등급은 4%지만, 올해 수능 영어 1등급(90점 이상)은 3.11%에 그치면서 역대 최저 수치를 기록한 탓이다.

영어, 절대평가 도입에도 변별력에 집착...난이도 널뛰기
영어Ⅱ교과서와 최고 난이도 지문 AR지수 비교/그래픽=이지혜
영어Ⅱ교과서와 최고 난이도 지문 AR지수 비교/그래픽=이지혜

8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에 따르면 2026학년도 영어 1등급 비율은 3.11%(1만5154명)으로 전년(6.22%) 대비 반토막이 났다. 2018학년도부터 절대평가로 전환된 이후 최저치다.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은 지난 4일 영어 난이도 조절 실패에 유감을 표하며 "수능은 공교육 과정 범위 내에서 문항을 출제하되, 대입 선발에서 변별력을 가질 수 있도록 문항 출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지만 후속 대응책은 없는 상황이다.

영어는 수능 뿐 아니라 모의평가에서도 난이도가 널뛰는 과목으로 유명하다. 모평 영어 1등급 비율 최소치는 2025학년도 6월 1.47%, 최대치는 2026학년도 6월 19.1%로 1년만에 극과 극으로 치달았다. 평가원은 영어 1등급의 적정 비율을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입시업계에서는 6~7%로 보고 있다.

영어 교육계에서는 교과서와 괴리가 있는 어려운 내용의 수능 지문을 난이도 조절실패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한다. 영어는 90점 이상만 받으면 만점이 되는 절대평가지만, 동시에 상위권과 최상위권을 가르기 위한 변별력을 갖춰야 하는 딜레마를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2026학년도 수능 영어에서 가장 고난도로 꼽힌 34번 문항은 철학자 칸트의 법치주의에 관한 것이다. 합리적인 사람에게 '법은 자유의 제약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정치철학 : 주요 쟁점(Political Philosophy: All That Matters)'이라는 교양서에서 발췌했다. 이 책은 '주요 쟁점(All That Matters)' 시리즈 44권 중 하나다.

2025학년도 수능 영어에서 최고난도로 꼽힌 33번도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에 관한 것으로, 미국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허버트 A. 사이먼이 정립한 개념이다. 소프트웨어 등이 무료처럼 보이지만, 이에 대한 대가를 누가 지불하는지 알 수 없다면 '판매되고 있는 진짜 제품은 당신이다'라는 답을 골라야 한다.

수능 난도가 올라가면서 공교육과의 간극도 벌어지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지난 7월 고등학교 영어Ⅱ교과서와 2025학년도 수능 지문 최고 난이도는 5학년의 차이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학년단위로 영어 난이도를 나타내는 AR지수(미국 교육기술기업인 르네상스러닝이 개발한 읽기 평가 지수)로 평가할 경우, 영어Ⅱ 교과서 4종 본문의 최고 난이도는 8.45~11.05학년인데 반해, 2025학년도 수능 영어는 13.84였다. 역대급으로 쉬웠던 2026학년 6월 모의평가도 12.12학년으로 교과서 수준을 웃돌았다.

"절대평가, 상대평가보다 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
수능 영어 절대평가 도입 후 1등급 비율/그래픽=임종철
수능 영어 절대평가 도입 후 1등급 비율/그래픽=임종철

매년 시험 난이도에 따라 1등급 비율이 들쑥날쑥해진다면 절대평가가 오히려 상대평가보다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용원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수능 영어는 언어 능력을 파악하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사고 능력을 평가하는 식으로 문제를 꼬아서 내고 있다"며 "진정한 절대평가가 되려면 교육과정의 목표를 세우고, 매년 시험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해 학생들이 목표를 성취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쓰기, 말하기 등 현실에서 필요한 영어 능력 목표를 설정하고, 평가 방법을 연구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28학년도부터 대입이 개편되면 수시에서 수능최저기준이 강화될 우려도 있다. 내신이 9등급에서 5등급으로 바뀌면서 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수능 활용도가 커질 전망이다.

남윤곤 메가스터디 입시전략연구소장도 "절대평가에서 89점, 79점은 아쉽게 2등급, 3등급이 돼 불이익이 커진다"며 "차라리 1등급의 폭을 상위 8%, 15% 식으로 넓혀주는 게 영어 교육 과열 억제라는 기존 취지에 부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불영어의 여파는 이달 말에 드러난다. 2026학년도 수시 충원 등록 마감일은 오는 24일로, 메디컬 등 최상위권에서 불영어로 수능최저등급을 맞추지 못할 경우 미달 인원은 정시로 이월된다. 남 소장은 "1등급 3.11% 중 일부는 N수생이기 때문에 수시에 유리한 재학생이 1등급을 받은 인원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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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지 기자

안녕하세요. 정책사회부 정인지 기자입니다.

유효송 기자

안녕하세요. 정보미디어과학부 유효송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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