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3월28일 서울 성수동 '삼표레미콘 공장 철거' 착공식 현장. 오세훈 서울시장은 '회색 거인'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새로운 감회에 빠졌다. 20여 년 전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치밀한 설계도와 담대한 결정, 시민들의 바람이 결합해 이뤄낸 성과였다.
6·3 지방선거에서 다시 한번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오 시장은 그동안의 시정 철학과 행정 경험, 뒷이야기 등을 담은 새 책 '서울시민의 자부심을 디자인하다'를 내놨다. 2000년대 초반 '무채색 도시'로 여겨졌던 서울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톱 5급 '매력 도시'로 도약시키는 과정에서 오 시장의 고민과 결단을 고스란히 담았다.
오 시장은 서울을 단순한 행정 관리의 대상이 아닌 '설계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스스로 역시 단순한 행정가가 아닌 '시스템 디자이너'로 정의하며, 서울이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하는 '기능도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케이팝데몬헌터스' 같은 K콘텐츠 속 환상에 걸맞은 매력을 실제로 갖춘 '감각도시'로 발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죽어가는 공장지대' 성수동은 어떻게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는 '힙플레이스'가 됐는가? 오 시장은 이 같은 질문에 서울숲 조성부터 정보기술(IT) 산업개발 진흥지구 지정 그리고 삼표레미콘 철거까지 이어지는 치밀한 '도시 설계' 때문이라고 답했다. 특히 '강제 수용' 대신 적극적인 인센티브 거래 방식인 '사전협상제'를 활용한 과감한 정책 판단을 '결정적 순간'으로 꼽았다.
2000년대 초 서울시 실무진은 현재 서울숲 자리에 '뚝섬 경마장' 부지 일부를 상업용지로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5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수익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당시 이명박 시장은 매각 대신 서울숲 조성이라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오 시장은 서울숲 조성을 두고 "성수동 변화의 첫 단추이자, 가장 강력한 '외부 유입 장치'가 탄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전임 박원순 시장 시절은 성수동 발전에 '뼈아픈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한강변 초고층 불가 원칙을 담은 '35층 룰' 규제로 현대차가 당초 삼표레미콘 공장 부지에 지으려고 했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계획이 무산되면서다. 오 시장은 "2011년 시장이 바뀌고 '초고층 불가'라는 새로운 규제의 벽이 세워지면서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됐다"며 "기다리다 지친 기업은 떠났고, 공장은 남았다. 성수동의 시계는 멈췄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21년 4월 오 시장은 보궐선거로 시장직을 다시 맡게 되면서 성수동 파일부터 찾았다. 같은 해 7월 서울시는 삼표산업, 현대제철과 협상을 재개했다. 오 시장은 "기존 방식을 모두 버렸다"고 표현했다. 시민들 이용이 많았던 서울숲 주차장을 매각해 부지를 사들이겠다는 계획도 폐기했다. 대신 2009년 마련한 사전협상제를 적용해 문제 해결의 물꼬를 텄다. 사전협상제는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용도를 변경하는 대신 늘어나는 용적률 60%에 해당하는 토지면적 가치를 사회에 환원하는 제도다.
2022년 삼표레미콘 철거 당시, 민간 기업에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대신 원하는 '용도 상향'을 내주고, 6000억원 규모의 공공기여를 적절히 맞교환했다는 게 오 시장의 얘기다. 그는 "개발 기회가 생기자 기업들이 스스로 협의했다. 현대는 삼표에 토지를 팔고, 삼표는 이를 매입해 개발기회를 마련하기로 했다"며 "기업은 이익을 쫓아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시가 만든 시스템의 승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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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시장은 "도시는 저절로 성장하지 않고 누군가는 욕을 먹더라도 끝까지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며 "높아진 서울의 위상이 곧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부심이 되는 것이 저의 목표"라고 밝혔다. 오 시장의 새 책은 이달 5일부터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등 온라인 서점에서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정식 출간일은 13일이다. 추천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