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명정승 황희'가 청문회에 나온다면…

[기자수첩]'명정승 황희'가 청문회에 나온다면…

이승제 기자
2009.09.24 16:20

명정승 황희가 오랜 은둔을 접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국무총리 직을 수락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 바로 대한민국 국회의 인사청문회.

인간미, 관대함, 청렴함, 능력을 동시에 갖춘 명재상이자 태종 세종 문종 3대에 이르기까지 3대를 섬겼던 황희 정승. 이런 그도 청문회에서 '인생을 돌아볼 정도로'(최근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말처럼) 벗겨질 각오를 해야 한다.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머리 속에 '한 점 부끄럼 없는 완전무결한 성인군자'라는 판단잣대를 세워놓았을 터. 자연스럽게 "왜 고려를 버리고 조선의 세종을 보필했냐"며 변절 이유를 추궁한다. 당연히 이 점은 황희의 최대 약점. 머뭇거리는 그를 향해 먹잇감을 앞에 둔 사냥꾼처럼 날카로운 시선과 송곳 같은 질문이 쏟아진다. 국가와 백성을 향한 그의 충절, 선비로서 명예를 남기고 싶다는 인생의 목표는 그 과정에서 초라한 변명거리로 전락한다.

여야가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등을 대상으로 한 인사청문회를 놓고 격돌하고 있다. 여당은 방어에, 야당은 공격에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없다. 낡은 테이프를 돌리듯 낯익은 풍경 뿐이다.

야당은 예전과 똑같이 '도덕성'을 절대적인 판단잣대로 내세웠다. 여당에서는 이를 두고 '흠집찾기'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리고, 야당은 "일을 맡길 수 없는 사람"이라고 폄훼한다.

고위공직 후보자에게 탈세, 병역 의혹, 위장전입, 논문 중복 등은 분명 믿음을 깰 만한 결함이다. 하지만 이것이 곧 "그 사람에게 공직을 맡기면 국민을 위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한국의 인사청문회는 '도덕성의 함정'에 빠져 있다. 능력 평가는 도덕성 검증에 의해 저 멀리 밀려나 있다. '어떻게 일 할 것인가', '당신의 장점과 비전은 무엇인가', '국민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지금의 청문회는 과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인재를 뽑기 위한 과정인가. 우리는 과연 도덕성과 능력을 동시에 갖춘 인재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분명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을, 준비된 인재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도덕성과 능력을 겸비한 인재가 중용되고 성공하는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지금은 이런 물음부터 던질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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