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대기업과의 선긋기에 나선 모습이다. 취임 초부터 '대기업 프렌들리'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우호적 관계를 조성했던 이 대통령이라서 무슨 속사정이 있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신호탄은 재계의 저승사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쏘아 올렸다. 공정위는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등 정부 부처와 합동으로 조사단을 구성해 단가인하, 기술탈취 등 대기업 부당행위에 대한 특별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 조사만 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한 조치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렸다. 과도한 단가후려치기 등 중소기업을 지나치게 옥죄고 있다는 자성이 대기업 내부에서까지 나올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2일 공개된 이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일련의 움직임이 어떤 큰 그림 아래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분석에 무게를 실어준다.
이 대통령은 이날 서울 화곡동 포스코 미소금융지점을 방문했다. 현장에서 대출 상담을 받으러 온 서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주도로 이뤄진 미소금융이 제대로 정착되고 있는지 둘러봤다.
문제는 대출 상담을 받으러 온 정 모씨와 얘기를 나누면서 벌어졌다. 이 대통령은 정 씨가 과거 대기업 계열 캐피탈에서 고율의 이자로 대출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대기업이 하는 캐피탈에서 40~50%의 이자를 받는 게 맞느냐, 이건 사채이자 아니냐"고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이 대통령은 "간판도 없는 사채업자나 많이 받는 줄 알았더니 대기업 캐피탈이 이렇게 이자를 많이 받는 줄은 몰랐다. 큰 재벌에서 이자를 일수이자 받듯이 이렇게 받는 것은 사회정의상 안 맞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또 "대기업 캐피탈이 이렇게 이자를 많이 받는 건 나쁘다. 대출 못 받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이자를 이렇게 많이 받으면 되겠나"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현장에서 대기업을 '재벌'이라고 지칭하는 등 평소 사용하지 않는 단어까지 구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형발전을 바라는 대통령의 의지가 예상외로 강하다고 전했다.
이 같은 사실은 연일 '친(親) 중소기업' 행보에 나서고 있는 정운찬 국무총리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 총리는 "최근 대통령을 만났는데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이 과거와 다를 것"이라며 대기업 횡포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독자들의 PICK!
중소기업 행보는 '서민경제 살리기'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3기 청와대 참모진과 상견례를 겸해 가진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서민경제 살리기에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이밖에 최근의 대기업 압박이 집권 중반기를 넘어서면서 제기되고 있는 '레임덕'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단안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날 문제가 된 캐피탈을 계열사로 둔 L그룹은 바짝 긴장하며 사태 진전을 지켜보고 있다. L그룹 측은 "확인해 보니 정씨는 35%의 금리로 대출을 받았고, 40~50%라는 건 사실과 다르다"며 "정씨가 대부업체에서 빌린 것을 착각하고 대통령에게 말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다른 대기업들도 이 대통령의 중소기업 챙기기 행보과정에서 혹시나 유탄이라도 맞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