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운찬 국무총리가 지난해 9월 29일 취임 이후 10개월여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난다.
개혁적 경제전문가라는 이미지와 충청권 출신이라는 지역성을 겸비해 민주당의 대선후보로도 거론됐던 정 총리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명박 정부의 두 번째 총리로 화려하게 정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지난해 9월 3일 총리 지명 당시에는 이 대통령의 '친서민 중도실용'이라는 정치철학을 구현할 적임자로 꼽혔다.
그러나 정 총리의 10개월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인사청문회와 국회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불거진 잇단 '말실수'는 참신하고 깨끗했던 그의 이미지에 씻을 수 없는 흠집을 남겼다.
특히 총대를 멘 '세종시 수정안'은 치열한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폐기로 결론이 났고 스스로를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만드는 '화살'로 되돌아왔다.
정 총리는 "세종시 문제해결에 명예를 걸겠다"는 취임 일성과 함께 수정안 추진의 전면에 나섰다. 그러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수정안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며 난관이 시작됐다.
이후 정 총리는 세종시 민관합동위를 출범시키고 이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힘을 보탰다. 그러나 세종시 관련법은 야당과 여당내 친박계 의원들의 반발로 국회에서 표류했고 6.2 지방선거에서 여권이 참패하며 정 총리의 정치적 생명도 사실상 결정이 났다.
세종시 이외에도 정 총리의 10개월은 악재가 겹쳤다. 취임 직후 당시 최대 현안이었던 용산 참사 문제 해결에 나서야 했고 지난해 11월에는 부산 사격장에서 화재가 일어나 일본인 관광객 16명이 죽거나 다쳤다. 지난 3월에는 '천안함 사건'으로 사태 수습에 매달렸다.
그러나 거듭된 '악재'에도 각종 정부 현안들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며 주요 국정 현안을 직접 주도하는 총리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었다.
정 총리는 취임 직후 용산참사 현장을 찾아 조문하며 사태 해결을 이끌어냈고 수정안 설득을 위해 충청도를 직접 방문하며 지역민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또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생명의 강, 환경의 강, 문화의 강을 만드는 대역사"라고 강조하며 구시대적 토목공사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키는데 주력했다.
가장 애착을 보였던 교육개혁 분야에서는 고교교육 다양화와 대학 자율화, 학력 차별 완화 등 이른바 3화(和)정책을 전파하는데 힘썼고 대·중소기업 상생을 강조하며 이 대통령의 '친서민정책'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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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국 정 총리의 발목을 잡은 것은 세종시였다. 수차례 "'세종시 총리'로 불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한 순간도 세종시의 굴레를 벗지 못했다. "여의도의 언어, 광화문의 언어에 익숙하지 못했다"는 스스로의 소회처럼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결국 세종시 수정안의 폐기와 함께 정 총리는 쓸쓸한 사퇴를 맞이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