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임 당시 개헌을 추진했었다.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주장했지만 실패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전임자처럼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청와대는 부인한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특임 장관은 '연내 개헌'을 주장한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잊을 만하면 개헌론에 군불을 땐다. 청와대의 공식 부인이 설득력을 잃은 이유다.
개헌론은 1년 가까이 여의도를 맴돌았다. 의견만 분분하다 꼬리를 감추곤 했다. 여·야 지도부 차원의 제대로 된 논의도 없었다. 또 다시 용두사미로 전락할 찰나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이 나섰다.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여당의 계파갈등을 배경으로 깔았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집권 이후를 우려하는 친이계와 상대적으로 집권 가능성이 낮은 민주당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유시민 발(發) '친이-민주 개헌 밀실협상론'의 요체다. 하필이면 친박계가 반대하는 이원집정부제, 분권형 대통령제 등 대통령의 권한이 약화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발끈하며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사건은 진실 공방 국면에 접어들었다. 최근 제기됐던 '개헌-4대강 빅딜설'을 떠올리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일련의 소동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개헌만큼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안도 없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권력과 차기 권력 뿐 아니라 차기 대권 주자들의 셈법도 엇갈린다. 정치 세력 간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혔다.
대두될 때마다 그 필요성보다 대권을 둘러싼 정치적 배경에 시선이 분산되는 게 바로 개헌이다. 특히 내각제 개헌론은 "차기 대권 주자를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얕은 수"로 폄하되는 천덕꾸러기다.
4·19혁명, 5·16군사정변, 10월 유신, 10·26사건, 12·12군사반란… 대한민국 헌정사를 살펴보면 개헌은 늘 격변기에 이뤄졌다. 지금껏 9차례 개헌이 있었는데 6월 민주화항쟁 직후인 1987년 10월 개헌이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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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동안 정권이 다섯 번 바뀌었다. 민주적인 토양이 뿌리 내렸으니 독재자의 장기집권을 견제하는 '1987년 체제'를 극복하자는 공감대는 이미 형성됐다. 그런데도 개헌론의 주인공인 '개헌'은 정쟁 도구로 전락해 왔다.
꼭 '혁명'이란 시발점이 없더라도 개헌 논의에 착수할 수 있다. 정치권은 입만 열면 '국가 백년대계'를 부르짖는다. 어쩌면 대한민국이 시대상에 걸 맞는 헌법을 가질 시점이 지나버리진 않았는지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