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늑대와 늑대의 시간

[기자수첩] 늑대와 늑대의 시간

양영권 기자
2012.02.21 14:46

"프랑스 사람들이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르는 때가 있습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되지 않는 시간을 말합니다.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양들을 지켜주는 충견과 양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늑대를 잘 구분해야 합니다."

총선을 앞두고 우리에게 '개와 늑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한 것은 안형환 새누리당 의원이다. 그는 지난 20일 낸 자료에서 "포퓰리즘과 선거 전략상 유권자에 대한 호소와는 구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포퓰리즘이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 한 사회를 집어삼킬 수 있고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고 경고했다.

정치권에서도 '포퓰리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안 의원은 "정치권 내부에서 개와 늑대를 구분해서 알리는 감시자가 되고자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이 같은 외침의 반향은 크지 않은 것 같다. 정부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내놓은 복지공약을 이행하려면 최대 340조원의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자 양당은 일제히 반발했다.

김종인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국민에게 재정에 큰 혼란을 야기할 것처럼 인식시키는 건 정부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했고, 이용섭 민주통합당 정책위 의장은 "정부가 과장 발표해 국민의 복지 요구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정치권의 선심성 공약에 제동을 걸어야 할 정부 역시 포퓰리즘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금융당국이 자동차 보험료를 2∼4% 인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인하 시점이 하필이면 4월인데 총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선심성' 대책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이러다가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 아니라 '충견'은 사라지고 '늑대와 늑대'만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보험이나 펀드를 판매하면서 소비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충분히 알리지 않는 것을 '불완전판매'라고 한다. 사후에 불완전판매가 밝혀지면 계약은 무효가 된다. 정치권에서도 선심성 공약을 내놓고 위험성을 충분히 고지하지 않는다면 '불완전판매'나 다름없는데, 금융계약과 마찬가지로 투표도 무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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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권 논설위원

머니투데이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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