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33년전 강도상해죄, 제가 감당하려고 묻어둔 일"

이학영 "33년전 강도상해죄, 제가 감당하려고 묻어둔 일"

신희은 기자
2012.04.08 15:14

[인터뷰]이학영 민주통합당 경기군포 후보

"차성환씨에게 30년도 더 지난 일을 왜 새삼 꺼냈냐고 물으니 그저 허허 웃더라. 어차피 제가 감당하겠다고 마음먹었고 오랜 기간 가슴속에만 묻어둔 일이다."

이학영 민주통합당 경기군포 후보(사진)가 남조선민족해방준비위원회(이하 남민전) 사건 당시 동료였던 차씨의 고백에 이 같이 밝혔다.

이 후보는 8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현장에서 저 혼자만 붙잡혔고 검사 앞에서 다 제가 한 일이라고 했다"며 "동료들이 피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털어놨다.

이 후보는 이어 "(상대인) 새누리당 후보가 (강도상해죄로) 저를 공격할 자격이 있는가 싶다"며 "박근혜 위원장이나 새누리당 후보라면 유신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 하느라 고문당하고 감옥가고 했던 사람들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해야 하지 않나"고 지적했다.

이 후보는 33년 전, 박정희 유신정권 당시 동료들과 재벌 2세들의 일탈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한 대기업 회장의 집에 침입, 경비원과 몸싸움을 벌이다 현장에서 체포됐다.

이 후보는 경비원을 칼로 찔러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힌 강도상해죄로 구속, 남민전 사건으로 병합되면서 재판을 받고 실형을 살았다. 박정희 정권 최대의 공안사건으로 기록된 남민전 사건은 2006년에 정부로부터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상대 새누리당 유영하 후보는 "강도 상해, 어떤 변명도 진실을 덮을 수는 없다"며 "사실을 밝히고 후보직을 자진 사퇴하라"고 압박해왔다.

이를 전해들은 차씨는 지난 4일 "이 후보와 나는 배달원을 가장해 대문 안까지 들어가는 데 성공했지만 경비원을 제압하지는 못했고 격투가 벌어지면서 제가 미리 준비해 온 흉기로 경비원의 옆구리를 찔렀다"며 "놀라서 먼저 현장을 빠져나왔고 경비원과 실랑이를 벌이던 이 후보가 경찰에 붙잡힌 것"이라고 고백하고 나섰다.

차씨는 이후 경찰에 자신이 범인이라고 진술했으나 이미 1심 판결이 난 상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뒤늦게 이를 털어놓는 이유는 이 후보가 이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다는 얘기를 듣고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차씨의 고백으로 '남민전 공방'은 일단락된 모양새다. 그동안 치열한 공방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 온 두 후보 간의 승패가 주목된다.

지난달 31일 군포지역 유권자 600명을 대상으로 한 중앙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후보는 지지율 43.6%로 유 후보(35.8%)를 처음으로 앞섰다. 경인일보도 3일 이 후보가 41.2%로 유 후보(37.0%)를 다소 앞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래는 이 후보와의 일문일답이다.

- 경기군포는 여론조사 때마다 순위가 급격히 바뀌고 있는데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 여론조사 결과로는 그동안 대체로 꾸준한 상승세였던 것으로 안다. 표본추출에 문제가 있었다고 스스로 밝힌 한 지역신문의 조사결과를 제외하면 그렇다. 최근 상대 후보측의 흑색선전이 아주 심해지고 있어 향후 추이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그래도 시민들께 인사드리러 다녀보면 많은 분들이 저를 알아봐주시고 초면에 반겨주시기도 한다. 현장분위기는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다. 군포는 수도권에서도 시민의식이 높은 지역이다. 군포시민들의 양식을 믿고 부지런히 선거운동 하러 다닌다.

- 최근 차씨가 남민전 사건 당시 경비원을 칼로 찌른 사람이 본인이라고 고백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그동안 사실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뭔가.

▶ 엊그제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듣고 차씨에게 전화했더니 기자들을 만난 후 이미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30년도 더 지난 일을 왜 새삼 꺼냈냐고 말을 건네니까 그 양반이 그저 허허 웃기만 했다. 당시 현장에서 저 혼자만 붙잡혔고 검사 앞에서 다 제가 한 일이라고 했다. 동료들이 피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재판받고 선고받은 거다.

차씨가 뒤늦게 붙잡혀 자기가 했다고 진술했지만 수사관이 부담을 피하기 위해 사건처리를 다시 하지 않았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독재권력 앞에 무력했고 독재권력 타도가 절박했던 청년시절이었다. 어차피 제가 감당하겠다고 마음먹었고 그에 따라 형을 선고받아 복역도 했는데, 지나고 나서 무슨 사실을 다시 밝히고 하겠는가. 그건 차씨에게도 좋지 않을 테고. 그래서 오랜 기간 그저 제 가슴속에만 묻어둔 거였다.

- 경쟁 상대인 새누리당 유영하 후보가 '강도 상해'를 전면에 내세워 비판하는 데 대한 생각은 어떤가.

▶ 새누리당 후보가 그렇게 공격할 자격이 있는가 싶다. 새누리당은 박정희 유신독재 세력이 속해 있던 공화당을 이어받은 정당이다. 유신독재시대가 어땠나. 음식점이나 다방 같은데서 친구들끼리 사적인 얘기를 하고 있어도 거기에 정권 비판하는 내용이 들어있으면 잡아가고 고문하고 하던, 참 숨쉬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박근혜 위원장이나 새누리당 후보라면 그 시절 유신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 하느라 고문당하고 감옥가고 했던 사람들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해야 하지 않나.

‘남민전 사건'은 2006년에 정부기구인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역사의식까지는 기대하지 않지만 최소한 양심이라도 있다면 새누리당 후보가 그런 일로 저를 공격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 유 후보는 과거 검사재직 시절 180만 원 상당의 향응을 받은 혐의로 징계처분을 받은 바 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나.

▶ 살면서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반성할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상대후보는 명백히 밝혀진 잘못조차 부인하면서 방송에 출연해서 그 일에 대해 떳떳하다고 말하더라. 검사가 나이트클럽 사장에게 향응을 받았고 그 일로 법무부로부터 3개월 감봉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법원에 징계처분취소청구 소송도 냈지만 기각됐다. 이것은 팩트(사실)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내가 몇 년 전에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 반성하고 있다" 하면 좋지 않나. 그렇게 하면 아무리 선거판이라지만 누가 그걸 계속 뭐라 하겠나. 그런 사람이 저한테 남민전 강도 운운하면서 선거판을 비방전으로 몰고 가고 있으니, 저를 지지하는 분들도 격앙된 반응을 하곤 한다. 시민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축제 같은 선거운동을 기대했는데 참 민망하고 유감스럽다.

- 군포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민생정책은 갖고 있나.

▶ 선거운동 하느라 시민들을 만나면 낮 시간에 가장 많이 듣는 말씀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켜서 먹고 사는 걱정 좀 덜어 달라는 내용이다. 영세상인 보호를 위해 유통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을 제한하는 법규와 조례 정비를 추진하고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지원제도를 마련하는 것 등이다.

또 시민사회단체 분들을 만나면 군포지역경제의 내발적 발전을 위해 지역 내 순환경제가 작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시면서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사회적 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 등이 성장할 수 있도록 애써달라는 말씀도 많이 하신다.

관내에 첨단산업단지로 지정된 부지에는 친환경 고부가가치 첨단업종 산업을 유치해서 군포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고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들었다. 모두 의미 있는 말씀들이어서 시민들의 의견이 곧 정책으로 다듬어지는 방식을 체계화할 생각이다.

- 지역주민에 하고 싶은 말은.

▶ 우선 희망을 심어드리는 정책 경쟁의 선거판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 지역주민들께 송구하다. 내가 상대후보를 비방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결과적으로 네거티브 선거전 양상이 여기저기서 계속되고 있다. 각 가정에 배달된 선거공보물이라도 잘 살펴봐주시고 각 후보가 살아온 궤적을 통해 누가 더 국회의원으로 적합한지, 지역일이나 나라일이나 누가 더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정책공약이나 신뢰감을 주는지를 꼼꼼히 가늠해보시면 좋겠다.

인터넷이나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등을 통해 비교해보시는 것도 좋겠다. 그래서 우리지역 국회의원 만드는 선거에 내가 꼭 참여하겠다는 마음을 내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저를 지지하는 군포시민이시면 이웃들께 많이 말씀해주시고 군포시민이 아니시라면 군포에 사시는 아는 분들께 군포시민정치인 이학영을 적극 추천해주시길 부탁드린다.(웃음)

■ 이학영 민주통합당 경기군포 후보는=1952년생(59세)으로 전남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와 행정대학원 정책학과를 졸업했다. 한국YMCA 전국연맹 사무총장,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공동대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 희망제작소 이사, 노무현 재단 이사, 진보통합시민회의 상임의장 등을 지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 '남조선민족해방준비위원회' 사건에 연루, 5년간 복역했다. 이 사건은 2006년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시집 '눈물도 아름다운 나이', '꿈꾸지 않는 날들의 슬픔' 등을 출간한 시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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