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언론이 과거 어느 때보다 진보정당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다. 뉴스채널들은 오전 9시에 열리는 통합진보당 아침회의를 연일 '라이브'로 송출하고 있다. 지금껏 어떤 원내 '제1당'도 이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카메라의 주인공들은 매번 굳은 표정으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다.
14일 심상정·유시민·조준호 공동대표는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당은 강기갑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전환했다. 이른바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마찰을 일거에 해소할 수 없겠지만 쇄신의 계기를 마련한 건 바람직하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않은 치명적 문제점이 일찌감치 드러났다. 당 지도부와 비례대표 후보자 등 모든 관련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다. 그러나 '사퇴'를 놓고 충돌했다. 낯 뜨거운 폭력사태까지 연출했다. 결국 '자리'의 문제였다.
이날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 통합진보당의 지지율은 5.7%였다. 19대 총선 정당득표율 10.3%의 절반을 까먹었다. 한 달 전 통합진보당을 지지했던 유권자 다수가 고개를 돌렸다. 책임의 방법론을 놓고 충돌하는 사이 대중은 떠나고 있다.
'당권파'라고 불리는 그룹의 상당수는 진보정당에 냉정했던 한국정치사를 버텨 온 이들이다. 좌·우, 보수·진보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관계없이 자신의 신념을 지켜 온 것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 부정선거 당사자라는 손가락질이 억울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을 걱정하는 이들은 "큰 잘못과 작은 잘못을 가릴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한 당직자는 "쿨(cool)하지 못한 탓"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대중이 진보정당을 바라보게 하기 위해, 오랜 세월 쌓아올린 노력이 사라지고 있다. 위기는 기회다. 성찰하고 고쳐야 '반전'을 모색할 수 있다. 이미 드러난 환부는 도려내야 한다.
결국 간난신고 끝에 얻은 자리를 내려놓아야 한다. 당권파가 야당의 자리를 감수해, 진보정당이 언젠가 여당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당권파 일각에서는 대중이 보수언론에 현혹돼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대중을 나무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정치는 없다.
비례대표 1번 윤금순 후보는 사태 직후 '자리'를 버렸다. 30여년 농민운동에 투신했던 그 역시 "농민의 권익을 대변하고 싶었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자리'를 던지는 것으로 책임을 졌다.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한 마디를 남은 이들의 몫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