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동질감 강조, 서울의 우월감 반박, 부산 야성 자극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광주 5.18 묘역을 참배하면서 유독 부산의 민주화 운동 역사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문 후보는 추석 직전인 지난 27~28일 이틀간 광주전남을 찾아 호남민심 잡기에 나섰다. 이때 '87년 봄'으로 불리는 1987년 민주화 운동, 그중에서도 부산의 상황을 여러 번 언급했다.
그는 안내하던 관계자가 "여기 심어진 나무들은 1인1그루 나무심기 운동으로 받은 것"이라고 설명하자 "부산에서도 (나무 보내기 운동을) 했었다"고 말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묘역조성 특별담화를 발표하기 전, 5.18 묘역은 국가적 예우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1994년 묘역 조성공사가 시작됐고 전국적으로 1인 1그루 나무심기 운동이 벌어졌는데 자신을 포함, 부산의 재야인사들도 이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부산에서는 80년대 민주화운동이란 곧 광주(민주화 항쟁)를 알리는 것 이었다"며 "5월마다 부산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광주로 참배를 왔다"고 회고했다.
이어 "1987년 6월을 앞두고는 5월 내내 '광주 알리기'라고 해서 부산 카톨릭센터에서 광주 민주화 항쟁 관련 비디오를 상영했는데 그것이 6월 항쟁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광주, 그것도 5.18 묘역에서 '87년 부산'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은 우연이라기엔 의미가 적잖다. 여기엔 호남, 부산, 무엇보다 서울지역 유권자를 각각 겨냥한 메시지가 한꺼번에 들어 있다.
문 후보는 우선 '광주는 민주화 성지, 부산은 보수정당 텃밭'이란 등식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부산도 민주화 운동의 한 축이었으며 그 점에선 광주와 부산이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을 표현한 셈이다. 이는 부산 유권자들에게는 숨겨진 '야성', 즉 야당 성향을 올 대선에서 표현해 달라는 원거리 메시지가 된다.
특히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서울 중심으로 기록하고 부산은 주변부로 여기는 상식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의미가 크다. 문 후보가 부산 민주화 운동을 강조한 것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6월 출간한 '운명'에서 1980년대 부산의 민주화 운동을 자세히 기술했다. "6월 항쟁이야말로(호헌철폐-직선제 개헌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며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사에서 가장 높이 평가해야 할 운동"(운명 64쪽)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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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명동성당 농성이 해산돼 서울 등 타지역 시위가 급격히 위축됐을 때 부산에서 가톨릭센터 농성과 함께 더 치열하게 시위를 전개, 항쟁의 불꽃을 되살렸다"며 "6월 항쟁은 전국적으로 전개됐지만 그 운동의 중심을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6월 항쟁 역사를 정리하는 데 부산의 역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서울지역 중심으로 서술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서울 중심 사고의 산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선 같은 시기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했다 해도 그 무대가 어디였는지에 따라 미묘한 이질감이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에서 이른바 명문대 재학 중에 학생운동에 뛰어든 인사들은 부산과 대구 등 영남 출신에 대해 은근히 우월감과 자존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문 후보도 이 점을 느낀 탓에 여기에 반박하는 생각을 내비친 셈이다.
한편 문 후보가 '87년 부산'을 강조한 밑바닥엔 결국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존경이 깔려 있다. 당시 부산 민주화운동의 한가운데 대학을 다닌 적 없는 '변호사 노무현'이 있었다.
"정치인이 됐을 때 노무현은 서울의 민주화운동권으로부터 변방 출신으로 대접받았다. 역시 서울 중심 사고에 더해, (중략) 학벌주의와 엘리트주의의 소산이라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적어도 5공 시기동안 변호사 노무현만큼 자기를 버리고 치열하게 투쟁했던 이가 없었다."(운명 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