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의 고뇌, '국정공백'vs'정부조직법' 딜레마

朴의 고뇌, '국정공백'vs'정부조직법' 딜레마

이상배 기자
2013.03.06 16:56

"유 장관 내정자께서 직접 현장에 가셔서···", "유 장관 예정자께서 다른 부처 장관들의 몫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오전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내정자와 통화를 하면서 '내정자'와 '예정자'라는 표현을 번갈아 썼다. 구미 염소가스 누출사고, 진도 어선 전복사고 현장에 직접 방문할 것을 지시하는 통화였다.

유 장관 내정자는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됐지만 아직 장관 임명장을 받지 못했다. 임명이 안 됐으니 법적으로 '내정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예정자'라는 표현을 함께 쓴 것에는 곧 장관 임명장을 줄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장관 임명을 위한 모든 절차가 끝났음에도 임명장을 주지 못하는 데 대한 미안함이 묻어난다.

현재까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장관 후보자는 모두 8명이다. 유정복 안전행정부,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윤병세 외교부, 황교안 법무부, 윤성규 환경부, 방하남 고용노동부, 서남수 교육부,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내정자 등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중 단 한명도 임명장을 받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장관 임명장 수여를 미루고 있는 것은 정부조직 개편안의 국회 통과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조직 개편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장관만 먼저 임명한 뒤 이전 정부의 장관들과 함께 국무회의를 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새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새 정부가 출범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때에는 정부조직 개편안이 통과가 된 뒤 이전 정부 장관들과 동석을 했지만, 그러나 지금은 정부조직 개편안이 통과가 안 된 상태여서 이전 정부 장관들을 꿔서 하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2008년 2월25일 취임 후 나흘째인 2월29일 한승수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당일 한 총리와 11개 부처 신임 장관이 임명됐다. 이어 3월3일 이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장관 4명이 참석한 가운데 첫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박 대통령이 바라는 최선의 시나리오는 장관 내정자 17명 가운데 국무회의 구성 요건인 15명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이 끝나기 전에 정부조직 개편안이 통과되는 것이다.

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장관 내정자 인사청문 과정 중에 정부조직 개편안과 같이 (통과 시점이) 맞으면 빠르면 (조만간) 우리가 희망적으로 국무회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3월 임시국회에서 정부조직법 통과되면 많이 늦었지만 다음주 중에 출범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정부조직 개편안 통과 이전에 장관 임명을 주저하는 것은 장관들을 먼저 임명할 경우 자칫 여야 간 정부조직 개편안 협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야당 측에서 "장관 임명까지 해서 '국정공백'도 별로 없는데, 정부조직 개편안의 신속한 통과가 왜 필요하냐"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박 대통령이 정부조직 개편안이 통과될 때까지 장관 임명을 계속 미룰 경우에는 '국정공백' 또는 '식물정부'를 자초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정부조직 개편안 통과가 지연될수록 이 같은 비판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유 장관 내정자에게 구미, 진도 사고 현장 방문을 지시한 배경이기도 하다.

결국 '정부조직법'과 '국정공백'의 딜레마에서 박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지가 정국의 열쇠가 될 전망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제일 시급한 것은 정부조직 개편안이 통과하는 것"이라면서도 "그것이 통과되야만 장관들을 임명한다 아니다라고 얘기하기에는 (어렵고) 국정공백을 없앨 수 있는 안들을 수석회의에서 논의하고 있다"는 말로 고민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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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 기자

머니투데이 정치부장입니다. △2002년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2011년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2002년 머니투데이 입사 △청와대, 국회, 검찰 및 법원, 기재부, 산자부, 공정위, 대기업, 거래소 및 증권사, IT 업계 등 출입 △2019∼2020년 뉴욕특파원 △2021∼2022년 경제부장 △2023년∼ 정치부장 △저서: '리더의 자격'(북투데이), '앞으로 5년, 결정적 미래'(비즈니스북스·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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