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오대양호 피랍 "생이별".. 42년만에 재회 눈물바다
(금강산공동취재단=뉴스1) 조영빈 기자,서재준 기자 =

이번 남북이산가족상봉에서 특히나 애절한 사연을 가지고 헤어진 가족들과 만나는 사람들은 6·25 당시 또는 그 이후 발생한 납북자들의 가족이다.
이들은 분단과 6·25 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진 대부분의 이산가족들과 달리 가족들이 북측에 피랍되면서 가족들과 '생이별'했다.
이번 상봉엔 전후(戰後) 납북자 2명의 남측 가족과 전시(戰時) 납북자 3명의 남측 가족들이 북측에 생존해 있는 피랍자 또는 피랍자 가족들을 만났다.
북한이 '납북'이라는 표헌 자체에 대해 민감한 것을 감안하면, 이번 상봉에서 그들의 만남은 더욱 애틋하고도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번 상봉단 가운데 남측의 박양곤(52)씨는 1972년 서해상에서 조업중이던 '오대양호'에 선원으로 탑승해 있다 납북됐던 형 박양수(58)씨를 찾아 금강산에 왔다.
먼저 단체상봉장인 금강산호텔의 상봉장 테이블에 도착해 있던 양수씨는 동생 양곤씨가 들어서자, 믿기지 않는듯 잠시 눈을 깜박였다. 두 형제는 이내 서로 부둥켜 안고 오열했다. 42년의 생이별의 슬픔이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두 형제는 서로 얼굴을 만져보고, 뺨도 부벼보고, 잡은 손을 한참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 동생 양곤씨가 "행님아"라고 외쳤다. 42년동안 부르지 못했던 이름이었다. 양곤씨는 그러곤 또 형의 품에 안겨서 한참을 더 울었다.
형 양수씨는 흰 봉투에 담아온 훈장증 석장과 훈장 3개를 꺼내 동생에게 보여줬다. "내가 당의 배려를 받고 이렇게 잘 살고 있어"라고 양수씨는 남측의 동생을 안심시켰다.
형이 납북될 당시 동생 양곤씨는 국민학생(초등학생)이었다. 형 양수씨는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16살 어린 나이에 돈을 벌기 위해 오대양호를 탔다가 납북됐다.
양곤씨는 형이 북한에서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약 12~13년 전 우연히 알게됐다. 북측에서 남측으로 내려온 한 탈북자를 통해 형님이 생존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이후 형님을 생전에 만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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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씨는 이번 이산상봉전 취재진과 미리 만났던 자리에서 "처음 납북됐을 때 (사람들은) 다 죽었다고들 이야기했다"며 "생사확인이 안되니 기일도 알수 없었다. 묵묵부답으로 형님 소식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고 그간의 마음 고생을 털어놓기도 했다.

1974년 2월 백령도 인근에서 홍어잡이 배를 탔다가 북한 해군의 함포 공격을 받고 납북되며, 40년동안 헤어졌던 형제도 이날 눈물로 상봉했다.
당시 스물한살이었던 최영철씨(61)는 당시 고등학교 진학이 힘들어 돈을 벌기 위해 어선을 탔다가, 북측으로 끌려갔다.
최씨를 만나기 위해 이날 금강산을 찾은 형 최선득(71)씨는 상봉 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동생) 딴에는 돈을 벌어서 그것으로 학교를 갈 생각도 했던 것 같기도 한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헤어진 두 형제는 이날 40년만에 다시 만나 끌어안고 1분여동안을 울 수 밖에 없었다.
북측의 동생 영철씨가 부인 박순화씨를 소개했다. 형은 "회신 온 거 보고 결혼해서 사는 거 알았다"고 말했다.
동생 영철씨는 "(김정은) 원수님 덕에 만났습니다. 서로가 비방중상 하지 말고 민족단합해서 통일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영철씨는 또 자신의 환갑때 찍은 사진과 조카네 돌잔치 사진을 형에게 보였다. 하지만 사잔 속 상차림과 병풍의 영 부자연스러웠다.
형은 이날 동생에게 '태엽시계'를 선물했다. 금강산에 오기 전에 가족들과 '디지털 시계'를 할지 배터리 시계를 할지 고민하다가 북측에 배터리가 없겠다 싶어 태엽시계를 들고왔다.
이밖에 정부로부터 전시납북자로 인정된 북측의 최종석(93)씨와 최흥식(87)씨도 이번 상봉대상에 포함됐었지만, 모두 사망한 것으로 확인돼 남측의 딸인 남순(65)씨와 아들 최병관(68)씨가 북측 이복동생들을 만나 생전 아버지의 모습을 전해들었다.
병관씨는 북측 이복동생 최병덕(46)씨와 여동생 최경희(55)씨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라고 하자 부둥켜 안았다.
북측의 이복동생들은 사망한 부친이 북측 가족들과 찍은 사진을 병관씨에게 내밀었다.사진에는 아버지가 북에서 새로 만난 어머니와 슬하의 7남매들과 함께 있었다. 사진을 본 병관씨는 "그래도 이렇게 사셨으니까, 외로움이 덜 하셨을 것 같다. 이런 가정을 꾸리지 못했으면 얼마나 외로웠겠냐"고 말했다.
다만 최남순씨의 경우 북측에서 나온 가족들이 자신의 가족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북측의 가족들이 생전의 아버지 사진을 보여줬지만 "아무리 봐도 우리 아버지가 아닌 것 같다"고 최씨는 말했다.
북측 가족들도 이내 "섭섭해서 어떡합니까"라며 남측의 가족이 자신들과 다른 가족임을 인정했다.
이에 최씨는 "이렇게 만났으니, 의형제라고 생각하고, 상봉행사 끝날때까지 같이 만나자"고 했으며, 이에 북측의 가족들도 "그러자"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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