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사이트] 무대와 VIP, 2014 카노사의 굴욕

[이슈 인사이트] 무대와 VIP, 2014 카노사의 굴욕

이상배 기자
2014.10.27 10:53

[the300] 동서고금 막론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 간 충돌···대결 끝 최후의 승자는 둘다 아닐 수도

# 1077년 1월27일 밤, 이탈리아 북부 카노사에는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성문 앞 눈밭에 한 남자가 맨발로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려 있었다. 그렇게 사흘째였다.

그는 다름아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였다. 교황의 뜻을 어기고 대주교 임명권을 행사한 '죄'로 그는 얼마 전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생각보다 강한 교황의 '반격'에 황제를 따르던 주교와 귀족들도 모두 등을 돌렸다.

힘의 차이를 절감한 황제는 교황이 머물고 있던 카노사성을 찾아가 눈물로 '파문 철회'를 호소했다. 교황은 눈보라 속에서 무릎 꿇고 고개 숙인 황제를 사흘동안 지켜본 뒤에야 '파문'을 거뒀다. 바로 '카노사의 굴욕'이다.

이는 '종교권력'과 '세속권력'이 정면으로 부딪친 사례지만, 동시에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충돌이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와신상담'한 황제는 3년 뒤 교황을 상대로 설욕에 성공한다. 주교와 귀족들을 규합해 오히려 교황을 폐위시킨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충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있어왔다. 국제정치학에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말이 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패권을 둘러싼 '현재권력' 아테네와 '미래권력' 스파르타 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두고 고대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패권과 신흥세력은 싸우는 경향이 있다"고 한 데서 유래됐다.

'개헌'을 둘러싼 청와대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사이의 불편한 기류를 놓고도 '현재권력'과 '미래권력' 간 갈등이라는 해석들이 나온다.

"정기국회가 끝난 뒤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질 것"이라는 김 대표의 16일 상하이 발언이 발단이 됐다. '개헌은 경제 블랙홀'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자 김 대표는 즉시 "불찰"이었다며 사과했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불쾌한 감정을 거두지 않았다.

"실수로 언급했다고 생각치 않는다"는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경고성' 발언까지 나오자 김 대표는 22일 예고도 없이 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 회의장을 찾아가 "대통령과 절대 싸울 생각이 없다"고 거듭 해명했다.

'애증의 관계'인 박 대통령과 김 대표 사이에 이런 일은 한두번이 아니었다. 2009년 10월에도 당시 '친박 좌장'이었던 김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가 '세종시 원안'을 지지하던 박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이는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 멀어진 결정적인 계기 가운데 하나가 됐다.

김 대표가 노트북을 펴고 앉은 기자들에게 '개헌'에 대한 말을 하고도 이것이 기사화될 줄 몰랐을리는 없다. 그러나 김 대표의 즉각적인 사과 등에 비춰 그것이 청와대의 '역린'임을 몰랐을 수는 있다.

중요한 건 '통치권'과 '당권', 두 권력 간의 갈등이 국민들의 삶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과연 국민들이 공감하긴 하느냐는 것이다. 그리스의 '패권'을 둘러싼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대결의 최후의 승자는 아테네도, 스파르타도 아닌 마케도니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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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 기자

머니투데이 정치부장입니다. △2002년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2011년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2002년 머니투데이 입사 △청와대, 국회, 검찰 및 법원, 기재부, 산자부, 공정위, 대기업, 거래소 및 증권사, IT 업계 등 출입 △2019∼2020년 뉴욕특파원 △2021∼2022년 경제부장 △2023년∼ 정치부장 △저서: '리더의 자격'(북투데이), '앞으로 5년, 결정적 미래'(비즈니스북스·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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