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새누리당 국회의원들, 계파싸움에 눈치보기만

"지금은 모두 다 납작 엎드려서 입 닫고 있어야 할 때 아닙니까."
새누리당 한 초선 국회의원이 필요 이상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뗍니다. 아니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는 비록 초선이지만 정치계에 오래 몸담았었고 행정 경험도 있는, 나름 '스페셜리스트'입니다. 국민들이 그를 선택했을 때는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을 것이라 기대했을텐데 정작 국회의원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합니다.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 청와대 간 여권 '파워게임'의 격류에서 자칫 떠내려갈까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여권 내 권력 구도에 따라 차기 총선에서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국회가 국민을 대표해 정치 혁신에 나선다거나 권력구조의 개편을 고민한다거나 국정운영의 아젠다를 제시한다거나,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할 여유는 초선에겐 사치입니다.
국회에 입성했을 당시 개헌에 대한 신념과 소신, 이를 국회에서 펼쳐 갈 계획을 진지하게 논의하던 한 초선 국회의원은 지난달 다소 실망스러운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당장 지역에서 잠재적 경쟁자보다 나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며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목표 중에 개헌 추진에 강한 의지가 있었지만 청와대가 강하게 반대하면서 국회에서 개헌 동력이 사그러들어 19대에서는 재선을 목표로 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비단 초선 의원만이 아닙니다. 한때 새누리당 세대교체를 주장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한 재선 의원도 이전과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정치를 오래 하기 위한 고민을 토로하며 "너무 튀는 것도 좋지 않은 것 같다. 때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다소 맥빠진 이야기를 합니다.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계속 해 나갈 수 있는지가 주요 관심사가 됐습니다. 국회에서, 정치를 통해 무언가를 바꾸기보다는 국회의원 그 자체가 목표가 된 겁니다.
무엇보다 정치 환경이 국회의원의 소신보다는 '거대 권력'이 주도하는 판에 순응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혁신을 거듭해도 국민들이 바라는 일하는 국회가 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 있는 지 모릅니다.
벌써 내년 상반기 경제에 대한 걱정이 먹구름처럼 밀려들고 있는데도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친박이다, 비박이다, '패싸움' 준비에 여념이 없고 대통령은 친박 특정 의원들만 몰래 만나 이를 거드는 형국입니다. 민생을 위해 적극 앞장서기보단 청와대나 당 주류의 눈치를 보며 가만히 있어야 하는게 오늘날 여당 국회의원이 처한 현 주소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비밀 회동에 참석했던 한 친박 중진이 민생입법 처리가 원활하게 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고 합니다. 물론 정권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것이 여당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당 운영의 문제점을 띄우고 이후 당 지도부에 대한 공격을 본격화하는 중진들의 모습을 봤을 때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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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도, 지지 기반도, 정책에 대한 소신도 다 다른 국회의원들에게 자칫 청와대 코드에 맞춰 거수기 노릇이나 하도록 '가만히 있으라'는 메시지로 전달되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