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당선 뿐 아니라 낙선에도 담긴 국민 뜻, 보답하는 정치

'잔인한 4월.' 국회의원이되 국회의원이 아닌 채로 4월을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 다가올 5, 6월은 더욱 잔인할 것이다.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19대 국회의원들의 시계는 4월 13일을 기점으로 멈췄다. 아직 2주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대다수의 낙선자들은 이미 과거가 된 선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패인에 대한 '나홀로 분석'과 복기를 거듭하게 된다고 호소한다.
낙선이 낯선 이들은 이미 낙선을 경험해 본 '선배 낙선인'을 찾아 조언을 구하고, 동병상련의 '동료 낙선인'들을 만나 앞날을 탐색해보기도 한다. 이들은 다양한 조언에 귀를 기울이며 4년 후를 기약하고자 한다.
낙선자들이 많이 듣는 조언은 새로운 국회가 개원하는 시기 잠시 한국을 떠나있으라는 것이다. 4월과 5월,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다짐을 하노라고 해도 5월 31일 '전(前) 국회의원' 신분이 되는 그 순간 모든 노력이 '도로아미타불'이 되면서 '멘붕(멘탈붕괴)'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국회의원 신분에 주어진 갖가지 '특권'들이 5월 31일을 기점으로 안개처럼 사라진다. 공항 의전실 이용을 비롯해 아주 사소한 특별대우부터도 그렇지만 각종 행사에서 가장 앞자리로 모셔져 축사를 부탁받는 '주인공 인생'의 종말이다. 다른 사람이 '주인공'으로 올라서는 모습에 밀려드는 허탈함과 패배감에 허우적대지 않으려면 적어도 20대 국회의 시작이 조명받는 6월에는 떠나있으라는 조언이다.
그 다음은 유권자들로부터 떨어져 잊혀져야 한다. 다음 총선에서 설욕을 꿈꾸며 당장이라도 선거 운동에 나설 태세의 낙선자들에겐 다소 이해되기 힘든 조언이다. 한 다선 국회의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6개월이고 1년이고, 지역 유권자들 앞에서 사라져야 한다. 유권자들은 낙선한 전 국회의원을 잊고 새로운 국회의원의 활동을 지켜보게 마련이다.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유권자들이 전 국회의원을 떠올릴 날이 온다. 유권자가 부를 때 그 때 돌아와야 한다."
물론 유권자 눈에서 사라진다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의 부름을 받기 위해서는 그 나름대로의 준비가 필요한 법. 상당수의 비(非) 국회의원들이 가장 많이 권유받는 것이 미국이나 중국 등 해외 명문 대학으로의 유학이다. 정치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해보고 넓은 세상에서 보다 큰 정치를 보고 돌아오라는 의미에서다. 현실정치와 조금 떨어져 정치의 의미와 자신의 지향점을 점검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유학이 아니더라도 낙선 기간 동안 해외에서의 경험이 다음 기회에서 정치적 자산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19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후 친분이 있는 낙선인들과 함께 여행한 그리스에서 국가 재정 문제를 이슈로 발굴해 새누리당 대선주자로 올라서기 위한 아젠다 중 하나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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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언들이 낙선자들이 4년을 보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낙선자들이 꼭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 게 하나 있다. 4년 후 선거에서 다시 국회의원이 될 수 있을 지에 대한 염려보다 이번 선거에서 자신을 선택함으로써 사표(死票)를 감수해야 했던 유권자들의 뜻을 어떻게 받들 지다.
비록 국회의원은 한 표라도 많이 얻은 단 한 사람만 당선되지만 낙선자에게 던져진 표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정권심판과 새로운 정치세력 교체를 바라는 '커다란 바람'이 선거를 휩쓸면서 당선인 뿐 아니라 낙선인에게도 국민들이 바라는 요구가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 지지자들 상당수가 돌아섰다고 이야기하지만, 미운 새누리당이나마 뽑을 수밖에 없었던 유권자들의 뜻 또한 헤아려저야하고 낙선자들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사람들이다. 물론 아무 고민 없이 1번을 뽑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선택한 후보자가 새누리당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회심(回心)을 미룬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야권도 마찬가지다. 정권교체라는 명확한 메시지 속에 당선인들은 '선택'이 아닌 '기회'를 얻었을 뿐이라고 야권 스스로 평가내리고 있다. 즉 '선택'을 얻기 위한 문은 낙선인에게도 열려있다는 의미가 된다.
총선이 끝나고 나서도 정치권은 소용돌이 속에 있다. 비단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새누리당은 보수 진영의 변화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수권 대안정당으로서의 가능성을 바라는 민심에 답을 해야 할 상황을 맞았다. '선거 혁명'이 보여준 정치권의 과제는 국회의원 당선인에게만 주어진 것은 아니다.
국회의원이란 자리를 위해 정치를 하는 이들에게 이번 총선에서의 낙선은 패배이자 4년의 공백을 의미한다. 반면 정치를 위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싸웠던 이들에게 낙선은 국민들이 부여한 새로운 역할이며 변화를 추구하란 뜻을 받들 의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