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냐?"던 대통령의 최후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냐?"던 대통령의 최후

이상배 기자
2016.11.19 09:00

[the300]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닉슨이 '하야'한 진짜 이유는 '조사 거부'·'수사 방해'

1972년 6월17일 새벽 2시30분, 미국 워싱턴 D.C.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 전직 CIA(중앙정보국) 요원 제임스 매커드는 출입문을 안에서 잠그지 않은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쿠바 출신 동료에게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 그 순간 불안감은 현실이 됐다. "경찰이다. 꼼짝 마!" 문이 벌컥 열리며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도청장치를 교체하던 매커드와 동료 4명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워터게이트 빌딩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서 체포될 당시 이들 5명은 배관공으로 위장하고 있었다. 경찰에 잡힌 뒤엔 좀도둑을 자처했다. 그러나 결국 닉슨 재선 캠프가 고용한 전·현직 CIA 요원들로 드러났다.

문제는 이들의 실력이 엉성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미 5월30일 목표 장소에 도청장치를 설치해뒀다. 그런데 도청 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이크를 바꾸러 다시 잠입했다가 꼬리가 밟혔다. 경찰에 잡힌 것도 사무실에 들어간 뒤 출입문을 잠그는 걸 깜빡해서였다. 경비원이 잠금장치가 해제된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체포 당시 이들의 주머니엔 수고비로 받은 3500달러 어치의 빳빳한 신권이 들어있었다. 매커드의 주머니에선 닉슨 측근의 백악관 사무실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까지 나왔다. 누가 봐도 배관공이나 좀도둑이라고 보기 어려운 소지품이다. 이런 모자란 요원들을 고용한 이는 닉슨의 측근이었던 전직 FBI(미국 연방수사국) 요원 고든 리디와 CIA 요원 하워드 헌트였다. 결국 이 일로 닉슨은 1974년 8월8일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글의 핵심은 닉슨이 하야에 이르게 된 이유다. 닉슨은 도청을 지시하지 않았다. 사전에 보고 받지도 못했다. 리디와 헌트가 대선을 앞두고 공을 세우려고 닉슨 몰래 벌인 일이었다. 보기에 따라선 측근들에 대한 처벌과 닉슨의 사과 정도로 끝날 수 있는 일이었다.

닉슨이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난 건 조사를 거부하고 수사를 방해하며 사건을 은폐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닉슨은 국회 특별조사위원회가 제출을 요구한 백악관 집무실 내 대화 녹음 테이프를 주지 않고 버텼다. 체포된 매커드에겐 입을 열지 않으면 사면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곤 워터게이트 사건을 맡은 아치볼드 콕스 검사를 해임하는 무리수까지 뒀다. 엘리엇 리처드슨 법무장관이 이에 반발해 사퇴하자 닉슨에 대한 탄핵 여론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닉슨은 뒤늦게 녹음 테이프를 제출했지만 중요한 내용은 삭제된 상태였다. 닉슨의 이런 태도에 민심은 폭발했고, 1974년 7월 상원 법제사법위원회는 탄핵안을 가결했다. 국회 본회의의 탄핵 의결이 임박하자 닉슨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하야 직전 닉슨은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를 붙들고 울부짖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거지?" 굳이 말하자면 진실을 숨기려 한 게 잘못이다. 실수는 용납돼도 거짓말은 용서 받지 못한다.

만약 그가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고 진실을 밝혔다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도 불명예 퇴진한 대통령으로 남았을까? 잘못한 게 없다면 굳이 조사를 피하고 숨길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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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 기자

머니투데이 정치부장입니다. △2002년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2011년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2002년 머니투데이 입사 △청와대, 국회, 검찰 및 법원, 기재부, 산자부, 공정위, 대기업, 거래소 및 증권사, IT 업계 등 출입 △2019∼2020년 뉴욕특파원 △2021∼2022년 경제부장 △2023년∼ 정치부장 △저서: '리더의 자격'(북투데이), '앞으로 5년, 결정적 미래'(비즈니스북스·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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