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도전·통합, 성공적인 공론화의 세가지 조건"

"공정·도전·통합, 성공적인 공론화의 세가지 조건"

대담= 박재범 정치부장, 정리= 정진우 , 사진= 이기범 기자
2017.10.30 04:46

[the300]②[인터뷰]김지형 전 신고리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장 "법률가 양심으로 탈원전 이슈 다뤄"

김지형 전 신고리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사진= 이기범 기자
김지형 전 신고리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사진= 이기범 기자

지난 20일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 ‘대한민국 정부’가 적힌 브링핑 연단에 한 남자가 섰다. 국민들은 숨을 죽이며 TV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분홍색 넥타이를 맨 이 남자에 주목했다. 그는 침착한 목소리로 손에 들고 있는 문서를 읽어 내려갔다. 그가 손에 든 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5개월 넘게 찬반으로 국론이 갈린 첨예한 문제를 푸는 열쇠가 들어 있었다. 바로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재개 여부를 판가름할 ‘대(對)정부 권고안‘이었다.

국민이 주목한 이 사람은 신고리 공론화위원회를 이끈 김지형 전 위원장이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우리 사회 모두가 이번 공론화 절차를 통해 참여단의 최종 판단에 담긴 정책 권고사항을 최대한 존중해 주실 것을 강력하게 희망한다”며 발표를 시작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번 공론화 작업의 배경과 의미를 설명한 후 “최종 조사 결과 건설 재개 쪽을 최종 선택한 비율이 59.5%로서 건설 중단을 선택한 40.5% 보다 19%포인트 더 높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전을 축소하는 쪽을 선택한 비율이 53.2%로 가장 높았다”며 “원전 유지 쪽 비율은 35.5%, 원전 확대는 9.7%로 나왔다”고 발표했다. 발표 시작 후 정확히 20분만이다.

지난 7월24일 출범한 공론화위가 89일간 활동을 마치는 순간이었다. 일각에선 이번 공론화 방식을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얘기한 여론에 기댄 ‘우민정치’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이번 참여단은 작은 대한민국”이라며 “국내 최초 성공한 숙의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29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김 전 위원장을 만나 지난 3개월간 얘기와 대한민국 정치 환경에서 숙의 민주주의의 의미를 들어봤다.

김지형 전 신고리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왼쪽)/사진= 이기범 기자
김지형 전 신고리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왼쪽)/사진= 이기범 기자

- 이번 공론화위원회의 성과가 있다면.

▶크게 두가지다. 공론화위가 끝까지 갈 수 있겠냐는 비관적인 시각이 많았다. 공론조사 전문가들은 끝까지 못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런 우려에도 위원회는 진정성을 보이며 끝까지 완주했다. 또 건국 이래 이번처럼 논쟁적인 사안을 다룬 공론화 방식이 없었다. 한쪽이 이기면, 다른쪽이 지는 등 투쟁적인 이슈로 비춰졌지만 결국 갈등을 푸는 방식으로 솔루션(해법)을 찾았다.

- 공론화위를 이끌면서 무엇을 강조했나.

▶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첫번째 공정성이다. 찬반 양쪽으로 나뉘는 첨예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절차적 공정성을 지키는 게 정말 중요하다. 과거에 통일문제, 사용후 핵연료 등 여러 분야에서 공론조사 방식을 도입했지만 잘 안된 것도 공정성 때문이었다. 두 번째 개척자 정신이다. 여기서 어떤 솔루션을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실패한 경험이 아무 것도 안한 것보다 낫다는 정신으로 도전하자고 했다. 세 번째는 통합이다. 서로 대척점에 서 있지만 절충하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첫 회의부터 계속 강조했다.

- 가장 힘들게 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 통합이 가장 어려운 이슈였다. 이번 공론화 중심엔 우리 국민을 대표하는 471명의 참여단이 있었다. 기회될 때마다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게 아니라고 했다. 분열과 대립 등 갈등을 촉발할 수 있는 이슈지만 넘어서야 한다고 했다. 이번 공론화 작업 과정에서 통합과 상생 방향으로 가자는 얘기를 많이 했다. 참여단에게 “현자가 돼 답을 달라”고 계속 강조했다. 결국 참여단은 답을 절묘하게 줬다. 건설을 재개하는 의견이 60%에 가까웠고, 원전을 축소하자는 의견이 53%로 모아지는 등 어느 누구도 승자 혹은 패자란 감정이 안 생기도록 결론이 나왔다.

- 공론화위에선 신고리원전 재개 여부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나. 탈원전 정책 방향까지 다룬 이유는 뭔가.

▶ 당초 공론화 의제 자체는 원전건설 중단 여부였다. 건설 여부 의제는 탈원전 의제와 구분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완전히 별개가 아니다. 공론화의 출발점은 문재인 정부 공약을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다. 건설 중단으로 결론이 나면 탈원전 정책은 일관성을 갖는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탈원전 정책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논의하는 과정에서 탈원전 이슈도 다루게 됐다. 법률가 양심으론 그렇게 논의가 됐는데 탈원전 정책을 같이 다루지 않으면 모순이라고 봤다. 건설 재개가 반드시 친원전은 아닐 수 있기 때문에 4가지 조합(건설재개와 친원전, 건절재개와 탈원전, 건설중단과 친원전, 건설중단과 탈원전)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참여단 의사가 확정된 후 자연스럽게 갈등을 푸는 솔루션이 됐다.

김지형 전 신고리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사진= 이기범 기자
김지형 전 신고리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사진= 이기범 기자

- 참여단의 분위기는 어땠나.

▶ 울릉도와 제주도에서 오신 분들도 있었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분들이 모였다. 이분들은 시종일관 열정적으로 이번 공론화 이슈에 몰입했다. 참여의 정도를 따지면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다. 우리가 선정한 500명 중 9월16일 첫 날 오리엔테이션에 478명이 왔다. 95%가 참여했다. 다른 나라 공론조사 사례를 보면 평균 30%가 참여를 안 한다. 우리도 500명 가운데 350명 정도 참여하면 성공적이라고 봤다.

- 참여단은 왜 그렇게 열심히 했을까.

▶ 국민이 국가적 문제를 직접 다룰 수 있는 주인이 됐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즉 자기 자신이 주권자라는 것을 몸소 느낀 것이다. 그동안 국민이 주권자란 얘기가 공허하게 들렸지만 이번 공론화위를 통해 “내가 진짜 주인”이라는 점을 깨달은 거다. 이 분들이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해줬다. 참여단 덕분에 공론화위가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 공론화위 덕분에 숙의 민주주의가 갈등 해결의 중요한 해법으로 떠올랐다. 반면 국회 중심의 대의 민주주의와 상충된다는 지적도 있는데.

▶ 물론 숙의 민주주의가 대의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없다. 또 우리 현실에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숙의 민주주의의 장점을 대의 민주주의에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숙의 민주주의가 보완재 역할을 하면 대의 민주주의와 병행할 수 있고 그게 더 좋은 민주주의 방식이 될 것이다. 공론조사를 세상에 처음 선보인 미국 스탠포드대 피쉬킨 교수도 그렇게 말했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 공론조사는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 중 국민이 참여하는 방식이다. 더 깊게 파헤치는 여론이다. 격이 높고, 품질이 좋은 여론이란 얘기다. 전문가들은 숙의 민주주의를 정책 결정자가 취하는 행정권의 민주적 행사로 여긴다. 대의 민주주의를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 공론화가 대의 민주주의를 완전히 대체할 순 없다. 이번 참여단처럼 국민의 대표가 충분한 토론과 숙의를 통해 어떤 의사를 결정했다면, 정치 지도자들이 받아서 결론을 내는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본다. 국회를 중심으로 한 대의 민주주의와 시너지를 내면서 함께 공존할 수 있다.

- 개헌도 공론방식으로 추진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 우리 사회엔 숙의 민주주의를 통해 해결할 만한 갈등 이슈가 많다고 본다. 공론화 방식의 장점을 잘 활용하면 충분히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개헌도 마찬가지다. 실제 몽골에서 개헌을 공론방식으로 다뤘다고 한다. 하지만 반드시 명심할 게 있다. 개헌은 헌법을 고치는 작업이다. 의회가 주체인 입법활동이기 때문에, 법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개헌에 필요한 공론 방식을 법에서 인정해야 효력이 있을 것이다. 탈원전 이슈는 행정부의 정책결정 일환이기 때문에 단순히 공론조사만 있어도 되지만, 개헌은 결이 다르다. 법률적인 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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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기자

안녕하세요.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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