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만세운동 100주년]①

조선총독부가 '6·10 만세운동'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 세력이 주도한 조직적 항일투쟁으로 판단했던 기록이 확인됐다. 일제는 당시 운동을 순종 인산일(장례식)에 벌어진 학생들의 우발적 시위로 선전하며 축소하려 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식민통치에 맞선 조직적 사상운동으로 규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0일 머니투데이가 '6·10 만세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확보한 '조선에 있어서의 동맹휴교의 고찰'(1929년)에는 순종 장례식 전후 경성 시내 치안 불안에 대한 일제 내부의 인식이 담겼다. 이 사료는 일제강점기 사상 통제와 독립운동 탄압을 담당하던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일본 내무성에 보고한 문건이다.
1929년 초대 척무대신을 지낸 마쓰다 겐지(松田源治·1875~1936)가 소장했던 기록물로 일본 패망 이후 도쿄의 국립국회도서관으로 넘어간 원문을 본지 특별취재팀이 분석했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위기감을 느낀 조선총독부가 6·10 만세운동과 광주학생항일운동(1929년) 등 조선 학생들이 참여한 항일투쟁을 어떻게 추적·분석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사료다.
1926년 6월11일자 석간 경성일보에는 순종 인산일이었던 전날 경성 시내의 엄숙한 분위기 외에 만세운동 관련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60대 노인, 여학생 등 관계자 150여 명을 체포했으나 단순 우발적 군중 소란 사건으로 규정하고 일제의 문화 통치가 굳건함을 전했다.

이런 대외적인 프로파간다(선전)와 달리 조선총독부 문건은 3·1 운동 이후 "조선 내에서 민족적 반감 내지 총독정치에 대한 반항이 심화하는 사건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며 "최근 들어(1926~1929년) 이러한 경향이 더욱 짙어지며 좌경적 사상과도 결합하고 있다"고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움직임을 경계했다.
조선총독부는 특히 순종 국장을 전후해 사회주의 독립운동 세력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고 판단했다. 자료에는 "다이쇼 15년(1926년) 6월 거행된 고(故) 이왕전하(순종) 국장의 기회를 포착한 불령선인들(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이 활발히 활동했다"며 "국장 당일에는 불온 선전문서와 인쇄물, 낙서, 유언비어 등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등장했다"고 적었다.
이는 당시 6·10 만세운동 현장에서 압수된 삐라(격문·檄文)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조선총독부는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김단야(金丹冶)와 권오설(權五卨) 선생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을 관련 격문의 작성 주체로 지목했다.
이들이 썼다는 '6대 교육 요구'(가칭)에는 △조선인 교육은 조선인 본위로!!! △보통교육을 의무교육으로! △보통학교용 언어를 조선어로! △보통학교 교장을 조선인으로! △중등 이상 학생의 집회를 자유롭게! △대학은 조선인을 중심으로! 등의 요구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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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는 이를 단순한 학생 불만 표출이 아니라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 세력이 조직적으로 독립사상을 확산시킨 결과로 판단했다. 또 이런 움직임이 비밀 독서회와 청년운동 등으로 번질 가능성을 경계하며 학교를 식민통치 체제를 위협하는 사상운동의 거점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전명혁 동국대 연구교수는 "결론적으로 6·10 만세운동은 권오설 선생 등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한 항일투쟁"이라면서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세력이 민족협동전선으로 처음 연대한 민족적 사건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