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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가 광복회에 참여해 독립군 양성과 군자금 모집, 의열투쟁에 헌신한 김경태·임봉주·장두환·박제선 선생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광복회는 1915년 8월(음력 7월 1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창립된 비밀 독립운동단체다. 계몽운동 계열과 의병 계열이 연합해 독립전쟁 준비를 목표로 조직됐다.
광복회는 만주에 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하고, 전국에 지부와 활동 거점을 구축해 군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친일세력 처단 등 의열투쟁을 전개하며 항일운동을 이끌었다.
김경태(1879년~1921년) 선생은 대한제국 군인 출신으로 의병활동에 참여한 뒤 광복회 충청도지부에서 활동했다. 군자금 모집과 조직활동에 힘썼으며, 친일파 처단 작전에 직접 참여하는 등 의열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체포돼 사형이 확정돼 순국했다.
임봉주(1880년~1921년) 선생은 광복회 경상도지부에서 활동하며 군자금 모집과 조직 연락 업무를 담당했다. 충청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며 자금 모집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친일파 처단 작전에 참여하는 등 의열투쟁에 앞장섰다. 이후 체포돼 사형이 확정돼 순국했다.
장두환(1894년~1921년) 선생은 광복회 충청도지부의 조직 확대와 군자금 확보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충남 각 지역에서 동지들을 규합하고 자신의 재산을 헌납하는 한편, 친일파 처단 작전을 준비·지원하며 의열투쟁을 뒷받침하였다.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징역 10년형으로 감형됐으나 옥중에서 순국했다.

박제선(1878년~1938년) 선생은 광복회의 주요 활동 거점인 대동상점을 설립해 독립운동 자금 모집과 조직운영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만주로 이주해 독립군 양성했으며, 출옥 후에도 중국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그의 항일 정신은 두 아들에게 계승돼 중국과 만주지역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기여했다.
광복회는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전국적 조직망과 국외 거점을 구축한 단체였다. 독립군 양성과 독립전쟁을 목표로 군대식 조직 체계를 갖추고 체계적인 활동을 전개했으며, 군자금 모집과 의열투쟁을 통해 항일운동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광복회의 활동은 이후 3·1운동과 1920년대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토대가 됐으며, 국내 의열투쟁의 선구적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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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애국지사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김경태, 임봉주, 장두환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박제선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