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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치적 스승 위대한 개혁가들
'사람은 운명에 의해 만들어지는 피조물'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오늘 내 자신이 ‘정치의 현장’에 서게 될 것이라고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을 때까지도 상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두드려서는 안 될 문으로 생각했다. 전공분야도 정치와는 관련이 없는 회사법과 계약법을 선택했다. 정치 문외한으로 지내다가 어느 순간 정치의 끄트머리에 서게 됐는데 그 모두가 내 스스로 계획해서 선택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 어떤 운명에 의해 이뤄진 것과도 같다는 생각에 젖을 때가 많다.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전개됐고 나와의 타협이 그렇게 만들어 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내가 지금은 거친 정치의 들판에 외롭게 서 있다. 더 이상 운명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내 의지로 그것을 받아 들였고 내 의지의 실천으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운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정치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순간순간 신속 정확하게 판단하고, 그 판단에는 ‘최선의 완벽함’을 추구해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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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뒤바꿔진 역사… 민족 지도자의 책임"
다음 두 가지의 사상사적 기반이 리버럴리스트에 대한 나의 사랑을 보다 풍요롭게 했다. 민족주의(nationalism)와 인간주의(humanism)다. 현대에 우리 민족 앞에 놓인 현실은 고통에 가까웠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로 인해 남북이 분단돼 서로가 이질적인 체제로 대립하게 됐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일어난 6.25 전쟁은 사상자만도 100만명이 넘어섰고 20여만 명의 전쟁미망인과 10여만명의 전쟁고아가 피눈물 나는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비극의 역사를 만들어 놓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빚어진 한반도 분단의 책임도 일본에 있다. 2차 대전 이후만이라도 세계가 올바른 역사의 길을 걸었다면, 미국이나 소련이 그들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분단되지 않았어야 했다. 오히려 전범국가인 일본이 분단됐어야 했다. 나는 이점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상황은 '뒤바꿔진 역사'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된 이유에는 우리 민족 지도자들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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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논쟁에서 나타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에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는 서로 상반되는 가치로 부딪힌다. 국정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검인정 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부분이 이들 교과서가 북한을 사실상 추종하는 내용을 싣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지나치게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한 서술에 기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적 가치로 추구하는 대한민국은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자유주의 사관'에 기반해 북한의 인권과 전체주의 사회 문제를 짚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북한 뿐 아니라 일제 식민 시대와 분단, 대한민국 정부 수립, 산업화 과정 등에 대한 역사관도 비슷한 양상으로 충돌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민족주의적 관점으로만 보면 산업화와 경제성장 등 우리 근현대사의 '밝은 면'보다는 식민 지배와 분단 등 '어두운 면'을 부각하는 이른바 '자학사관'을 형성한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국정화의 주요 논거로 사용되는 이러한 주장에 반대론자들은 민족의 비극을 덮고 친일·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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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문재인, '교과서 올인'에서 빠져나와야
"경남 고성군수 당선시켜 보이겠다." 10.28 재보선 전 새정치연합 고위 당직자가 호기롭게 한 말이다. 뚜껑을 열자 빈 말이 되고 말았다. 이번 재보선이 아무리 소규모였더라도 선거는 선거다. 여기서 야당은 또 졌다. 그나마 주목받았고 여권 후보의 표분산으로 야당이 가능성도 있다고 봤던 경남 고성군수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무소속보다 득표율이 낮았다. 야당이 선거에 집중할 여건이 아니긴 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때문이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여론이 찬성보다 높게 나오는 가운데서도 이를 지지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세월호 참사의 여파 속에서도 야당은 승리하지 못했다. "백약이 무효"라는 자조섞인 말도 당 안팎에서 나온다. 다양한 패인이 제기되겠지만 무엇보다 교과서 '올인'의 비용이 크다. 문 대표는 대통령과 정부여당을 향해 민생을 외면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지만 야당 자신부터 민생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메시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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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헌법 아버지들의 살아있는 교훈 '연방주의자 논집'
'연방주의자 논집(The Federalist Papers)'은 1787년 9월 17일 필라델피아 연방 회의에서 미합중국 헌법 초안이 완성된 후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이 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발표한 85편의 글을 묶은 것이다. 그해 10월 알렉산더 해밀턴이 1호 논문을 뉴욕의 언론에 실었으며 이후 제임스 메디슨과 존 제이가 동참, 그 다음해 8월까지 장장 10개월 간 매주 미국 헌법이 담고있는 정신과 철학을 설명하는 글이 이어졌다. 연방주의자 논집은 미국 헌법의 해석서로 자리매김했지만 애초에 연방헌법에 반대하는 '반(反)연방주의자(anti-federalist)'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물이었다. 연방헌법 비준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뉴욕주에서 '카토'와 '브루투스'란 필명으로 헌법비준에 반대하는 기사가 신문에 실린 것이 발단이 됐다. 로마 공화정 말기 공화정의 수호자로 자처한 이들의 이름을 빌어 연방헌법이 공화주의에 어긋난다고 공격한 것이다. 이에 맞서 해밀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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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와 다른 의견 받아들이는게 자유주의자"
어제의 역사에서 배태된 문제로 그것의 한계만 지적한다고 오늘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당면한 문제는 지금 바로 잡아야만 보다 나은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 오늘의 과제와 책임, 이와 함께 자유주의의 기본적인 성격도 깊이 살펴봐야 한다. 먼저 문제의 본질을 살펴보고 옳고 그름도 따져본 후 좋은 것은 그대로 지속시키되 더 좋은 것을 이룩하기 위해 개혁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접근이다. 상대방의 논리를 배격하거나 적대적으로 임하는 ‘패거리’식의 주장이나 결정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자유주의적 접근은 적대적 대결이 아니라 상대방을 인정하고 옳고 그름을 함께 판단하면서 연대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유주의는 감성이 아니라 이성에 바탕을 둔 개혁의 사상이다. 이성적 개혁은 사건이나 사물의 인과관계를 깊이 살펴보고 옳고 그름을 밝혀내는 객관적이고도 성찰적인 접근을 의미한다. 자유주의의 문제 해결 방식은 혁명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비록 혁명적일 정도로 철저한 변혁을 추구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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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중도'에 안주말고 사상을 말하라
현직 국회의원 10명 중 8명은 자신의 이념성향이 ‘중도’(중도·중도보수·중도진보)라고 내세우지만 이는 다분히 유권자들에게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의 방어기제에 가깝다.(☞국회의원 10명 중 8명 "나는 중도파"[the300 1주년- 국회의원 설문조사⑧] 기사보기) ‘따뜻한 보수’나 ‘낡은 진보’ 같이 수식하는 바가 애매모호하거나 형용모순으로 보이는 단어의 조합이 등장하기도 한다. ‘보수’나 ‘진보’ 그 자체만으로 정치인의 이념성향을 나타내기엔 우리 정치권의 지형이 너무나 왜곡됐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주의 역사가 짧고 정치 제도와 이를 뒷받침할 사상적 기반이 취약한 탓이기도 하지만 정치를 하겠다고 정치권에 뛰어든 정치인들의 문제점도 크다. '왜 정치를 하는가?'란 물음이 한동안 회자되기도 했지만 왜 정치인이 정치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정치인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국회의원 진영이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이자 뿌리인 '자유주의'에 대해 돌아보게 된 것도 우리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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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내세워 오늘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나는 몇 해 전에 책 한 권을 쓴 적이 있다. 책의 제목을 ‘인간의 얼굴을 한 자유주의자’라고 하고 나 자신을 자유주의자(liberalist)라고 말했었다. 그 후로부터 이런 질문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자유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유주의의 정책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 자유주의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그때마다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자유주의를 한 두 마디로 말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어려움이었다. 맹목적일 정도로 자유주의를 내걸고 달려왔지만 내 스스로 생각이 깊지 못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점에서 다시 자유주의를 생각해 보면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로 명명했던 그 때와 오늘 사이에 느껴지는 차이점은 무엇인가? 누구에게 설명할 만큼 처절한 성찰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에 오직 새로운 다짐을 위하여 이 문제를 바라봤다. 자유주의자로 살고 싶고 그것을 이념의 푯대로 삼아 먼 뱃길을 저어가고 싶은 열망 때문에 나는 지금 국회의원이란 자리에 매달려 있는지도 모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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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칫솔과 다이아몬드
"만약 칫솔과 다이아몬드를 똑같게 취급한다면 칫솔은 덜 잃어버리겠지만 다이아몬드는 더 많이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J.F. 케네디 대통령의 국가안보 특별보좌관으로 활약한 맥조지 번디는 '과도한 비밀주의'에 대해 이렇게 우려했다. 모든 것을 비밀로 하게되면 정작 중요한 사안을 놓치게 된다는 의미다. 지난 25일 야당은 박근혜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위해 비밀 테스크포스(TF)를 만들어 운영해왔다고 폭로했다. 규정에 근거하지 않은 조직을 만들고 청와대가 직접 업무보고까지 받았다는 의혹도 나온다. 정부는 현행 역사교육지원팀의 한시적 인력보강일 뿐 비밀조직이 아니라는 설명이지만 문을 걸어잠그고, 불을 끈 채 야당 의원과 취재진의 진입을 막아 의문을 키웠다.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각은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다. 과도한 '비밀주의'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어진 탓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도 마찬가지다. 감염자가 확대돼고 전국이 메르스 공포에 떨면서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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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주의 PPL]판·검사·의원 평가한다는 변협…변호사는?
변협이 검사평가제를 하겠다고 나섰다. 검사의 적법절차 준수여부, 피의자 권리 침해여부를 평가해 내년 1월부터 우수 검사와 하위 검사를 발표하겠다는 방침을 21일 발표했다. 결과를 대검찰청에 제출해 인사자료로 활용하게 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검사평가제'는 올 1월 당선된 하창우 변협 회장의 공약 중 하나였다. 하 회장은 변협 회장 선거에서 "평가받지 않는 성역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며 검사평가제를 공약했다. 그는 이미 2008년 법관평가제를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시절 도입한 바 있다. 변협은 지난 8월엔 "국회의원 300명의 의정활동을 평가한 뒤 결과를 각 소속 정당에 보내 공천 등에 반영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의원 평가'계획도 밝혔다. 여의도 정가엔 아직 변협 '의원 평가'소식이 널리 퍼지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평가 중에 있고 이르면 연말에 발표된다. 실제 발표가 나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하위'평가를 받는 의원들은 예상치 못한 '폭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어 큰 파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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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명파동'의 전모…朴은 왜 陳을 붙잡았나
진영 새누리당 의원에게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일 것이다. 탈박(탈박근혜)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니지만 김무성·유승민 등 다른 탈박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배신의 정치'라고판결내린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나, 잊을만하면 청와대 고위 관계자발로 정치행보에 태클이 들어오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는 달리 박 대통령은 '항명파동'으로 정권 초반을 얼룩지게 한 진 의원에 대해 단 한번 비난이나 원망을 표한적 없다. 사퇴 당시에도 박 대통령은 진 의원을 붙들고자 했다. 2013년 9월 22일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 의사가 전해진 후 3일 후인 25일 사우디아라비아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진 의원에게 정홍원 국무총리를 보내 "사의는 없는 일로 하겠다"는 메시지까지 보냈다. 당시 박 대통령의 뜻은 완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 장관을 세종시 총리집무실에서 만난 정홍원 총리는 장관직 수행이 어렵다는 뜻을 전달하려는 진 장관의 말을 아예 들으려하지 않았다. 진 장관이 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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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져간 '박근혜 뗏목'…"밧줄이라도 던지고 싶었지만"
계절이 바뀌면 세상도 달라진다. 그리고 사람도 변한다. 나는 올바른 가치와 성실한 생활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믿음만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것 자체가 순진했음을 깨달게 된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건과 바람에 따라 상황은 변하고 이 세상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내 생각의 짧음을 부끄러워하면서 멀어져 가는 그 세상에 매어진 운명의 줄만 바라보았다. 정치학에서는 정치를 ‘갈등의 해결’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는 ‘갈등의 조성’이며 ‘광장의 대결’로 변질돼 버린다. 그 때문에 정치를 일러 ‘올바름, 즉 政은 正’이라고 강조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논리는 한낱 관념으로만 치부되고 있다. ‘적과 동지’로 양분된 정치의 무대 위에서는 ‘제로 섬 게임’만이 철칙처럼 지배한다. 명분도, 논리도, 약속도 모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질 뿐이다. 그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