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치적 스승 위대한 개혁가들

나의 정치적 스승 위대한 개혁가들

진영.정리=김태은 기자
2015.11.06 06:00

[the300][미래를 찾는 긴 여정-리버럴리스트의 매니페스토](5)운명과의 조우

[편집자주] 머니투데이 the300은 정치인들의 삶에 녹아있는 정치관과 비전을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리고 이를 검증하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나의 삶, 나의 정치'를 연재합니다. 첫 번째 필자는 국회 안전행정위원장을 맡고 있는 진영 의원(새누리당)입니다.
↑사진제공=진영 의원실
↑사진제공=진영 의원실

'사람은 운명에 의해 만들어지는 피조물'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오늘 내 자신이 ‘정치의 현장’에 서게 될 것이라고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을 때까지도 상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두드려서는 안 될 문으로 생각했다.

전공분야도 정치와는 관련이 없는 회사법과 계약법을 선택했다. 정치 문외한으로 지내다가 어느 순간 정치의 끄트머리에 서게 됐는데 그 모두가 내 스스로 계획해서 선택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 어떤 운명에 의해 이뤄진 것과도 같다는 생각에 젖을 때가 많다.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전개됐고 나와의 타협이 그렇게 만들어 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내가 지금은 거친 정치의 들판에 외롭게 서 있다. 더 이상 운명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내 의지로 그것을 받아 들였고 내 의지의 실천으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운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정치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순간순간 신속 정확하게 판단하고, 그 판단에는 ‘최선의 완벽함’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정치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나 자신의 목표와 표상이 필요하다. 정치는 외로움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어려울 때 도와주고 외로울 때 힘을 주는 ‘위대한 스승’이 있어야 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국민 모두가 존경하는 독립운동가이자 개혁가이다. 의원 중에서라면 누가 있을까?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새로운 시대적 사명에 헌신한 인물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됐다. 앞장서 세상을 더 좋게 바꾸기 위해 온 몸으로 헌신했으나 개인적으로는 한없는 고통 속에 살았던 개혁가들이다. 이 세상이 오늘과 같은 발전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개혁가의 헌신에서 비롯됐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요구했던 혁명가들보다 자신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꿔온 개혁가들의 존재가 더 위대하게 역사 속에서 빛나고 있다. 역사가 알든 모르든 이런 개혁가들은 여러 나라에 많았을 것이다.

◇로버트 오웬

영국의 사회개혁가이자 최초로 협동농장 운동을 시작했던 이상주의자였다. 오웬은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맨체스터에서 10살 때부터 면방직 공장의 일꾼으로 고된 노동에 땀 흘렸으며 이 경험을 통해 대기업가로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공장 소유자와 노동자가 대립하지 않는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공장 협동체를 만드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여겼다. 1800년 스코틀랜드의 뉴 라나크에 협동촌을 만들었으며 안락한 주택, 병원, 협동가게, 무료 학교 등을 세웠고 최선의 노동조건에서 일할 수 있는 공장도 운영했다. 그의 활동은 마침내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되었고 공장에서 억압당했던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데 신기원을 이룩했다.

◇비아트리체 웹

영국 ‘노동당의 어머니’로 알려진 여성 사회개혁가다. 본래 부유한 철도 기업가의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 자체가 가난한 사람들을 점점 더 빈곤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이를 바로 잡지 못하면 영국의 미래가 없다고 확신했다. 웹은 런던 동부 지역에 대한 현장 중심의 사회조사를 통해서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사실과 그들의 고통의 일상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그는 이들의 상태가 방치되면 영국은 끝내 “두 개로 나눠지는 비극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적극적인 사회복지정책과 가난한 사람의 아이들에 대한 적절한 무상 교육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영국의 사회개혁과 평화의 실현에 참여했으며 영국 국민들은 ‘갈등에 떨어진 영국을 구원했던 개혁적 지도자’라고 그를 찬탄했다.

◇마틴 루터 킹

미국의 사회개혁가로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비폭력 평화시위를 주도했고 흑인 인권 운동의 선두에 섰으며 1964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963년 워싱턴 대행진에서 “나에게도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은 인종차별 철폐의 감격적인 호소로서 역사에 길이 남았다.FBI의 집요한 감시를 받기도 했고 끝내 1968년 백인 우월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하는 비운을 맞게 됐지만 그는 위대한 민권운동가였다.

◇존 뉴턴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아름다운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존 뉴턴이 자신의 삶을 가사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군 수습장교로 일하다가 승선했던 함정의 해군 장교에 의해 아프리카의 노예 중개상선으로 넘겨져 다른 노예들과 같이 심한 고통을 겪었다.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영국으로 돌아오는 도중에는 심한 폭풍우를 만나 파선의 위기를 맞게 됐다. 뉴턴은 배의 전복 직전에 통한의 눈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기도를 올렸다. 기적처럼 그 배는 가까스로 해안가에 도달했고 뉴턴도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때부터 그는 신앙생활에 몰두했다. 1754년 뇌졸중으로 교역선 생활을 그만둔 후 목회자로 활동했으며 가난한 사람을 돕는 자선활동을 펼쳤다. 많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그를 따랐다. 그 중에는 젊은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도 있었다. 정치가들이 보여주는 비기독교적 활동에 환멸을 느끼고 정계를 떠나고 싶다고 고백한 윌버포스에게 뉴턴은 “하나님의 뜻이 지배해야 할 곳은 바로 의사당”이라는 충고와 함께 의회에서 이 세상을 바로 잡아가는 역할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뉴턴은 자신이 겪었던 노예 무역선의 실상을 밝히고 “너무나 늦었지만 나의 죄를 회개하면서 그것이 오늘까지 나를 괴롭히는 유령이 됐다”고 고백했다. 노예무역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책자로 발간했고 윌버포스가 추진했던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법’의 제정 활동을 적극 후원했다. 마침내 1807년에 윌버포스가 앞장서서 추진했던 '노예무역금지법'의 제정을 볼 수 있었고 그해 12월 21일에 82세의 나이로 런던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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