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미래를 찾는 긴 여정-리버럴리스트의 매니페스토](1)프롤로그 : ‘희망과 행복의 나라를 꿈꾸며’

계절이 바뀌면 세상도 달라진다. 그리고 사람도 변한다. 나는 올바른 가치와 성실한 생활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믿음만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것 자체가 순진했음을 깨달게 된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건과 바람에 따라 상황은 변하고 이 세상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내 생각의 짧음을 부끄러워하면서 멀어져 가는 그 세상에 매어진 운명의 줄만 바라보았다.
정치학에서는 정치를 ‘갈등의 해결’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는 ‘갈등의 조성’이며 ‘광장의 대결’로 변질돼 버린다. 그 때문에 정치를 일러 ‘올바름, 즉 政은 正’이라고 강조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논리는 한낱 관념으로만 치부되고 있다. ‘적과 동지’로 양분된 정치의 무대 위에서는 ‘제로 섬 게임’만이 철칙처럼 지배한다. 명분도, 논리도, 약속도 모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질 뿐이다. 그 현장에서는 현실과의 타협만이 나를 합리화 시키고 있다.
지난 몇 년의 세월은 나를 정신없이 몰아쳤다. 그 속에 정작 나는 없었다. 마구 떠내려가는 레프팅을 탄 것과도 같았다. 어린 시절에 본 영화, 로버트 미첨과 마릴린 먼로가 주연한 '돌아오지 않는 강'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남녀 주인공과 아이가 탄 뗏목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그 장면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 영화의 종말은 서부영화가 그렇듯이 해피엔딩이지만, 바로 그 뗏목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뛰어 내려야 했던 나는 온 몸이 젖은 채 강가에 서서 멀어져 가는 그 뗏목만을 바라보아야 했다. 마음으로는 격류를 맞아 부침을 거듭하는 뗏목에 밧줄이라도 던지고 싶었지만 내 옆에는 밧줄도 없었고 그럴 힘도 없었다. 뗏목은 점점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나로서는 그 뗏목이 격류를 잘 헤치고 잠잠한 장강으로 들어설 수 있기만을 두 손 모아 염원할 뿐이었다.
나는 한동안 힘든 나날을 보냈다. “정치가는 변명의 입이 없다”는 믿음이 모든 것을 마음속 깊이 묻었다. 겉으로는 웃는 낯으로 지냈지만 안으로는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었다. 오랫동안 창고에 넣어두었던 기타와 색소폰도 꺼내 닦았다. 피아노 건반도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것도 아픔을 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역사책에 나오는 솔론(Solon)과 키케로(Cicero)는 정치가에게는 고통과 번민이 필수조건이라고 말해주었고 미래만이 구원의 희망임을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번민의 일상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또 다시 미래를 꿈꾸는 내 모습의 한 가닥을 찾을 수 있었다.
정치의 현장에 서 있으면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을 시간이 없다. 여러 행사에 쫓겨 다니다 보면 여의도와 용산을 하루에 두세 번씩 왕복하는 날도 많다. 일정에 쫓기면서도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했고 앞에 놓여 있는 일을 열심히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나 자신과 정치에 관해 반성하고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상황에 이끌려서 처음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했던 때가 생각났다. 나는 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떠올릴 때마다 두려움과 부끄러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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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정치를 조금씩 되짚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다. ‘약속된 미래’라 해도 좋을 그런 미래를 생각했다.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는데 우리 정치는 1970~80년대의 언저리를 그대로 맴돌고 있다. ‘정체된 정치’와도 같은 그런 모습이 이제는 정치의 현장을 고착화시키고 있다. 이런 정치문화로는 미래가 없다. 과거가 현재를 사로잡고, 현재가 과거의 포로가 되고 있다. 이 상황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정치다운 정치는 실종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정치를 되살릴 길은 무엇일까? 과거라는 실타래로 묶여진 현재를 풀어내야 한다. 그 매듭을 풀어내는 일이야말로 정치의 과제다. 이 매듭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정치의 함선을 미래로 견인할 동력은 오직 올바른 정책이다. 정책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계획이다. 올바로 설계된 미래를 위한 정책, 개혁적 정책만이 실타래처럼 얽힌 우리 정치의 난맥상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올바른 목표와 방향이 있어야 올바른 정책이 가능하다. 단순히 이데올로기의 깃발만 하늘 높이 세우거나 이념의 칼날을 갈고 닦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정책으로 승부를 겨루어야 한다.
앞으로 내 조국의 정치가 어떻게 달라져야 할 것인지를 마음속에 그려보았다. 일종의 거시 논리라고 할 수 있는 정치적 기대치, 그리고 이룩하고 싶은 염원을 생각해 보았다. 이 글에서 담고 있는 내용 하나 하나는 내 스스로의 정치적 지향의 푯대일 수 있다. 바로 이 푯대를 기준삼아 내 정치의 항해를 계속하고 싶다. '약속은 지켜져야 하고, 신뢰는 생명과도 같다!'는 고언은 정치에서 최고의 덕목이 돼야 한다.
이 글을 쓰면서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 마음 속에서 지난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2012년의 열정을 다독거리는 일이었다. ‘희망’과 ‘행복’의 나라에 대한 우리의 꿈이 큰 맷돌이 돼 나를 휘감아 내동댕이친 것 같은 큰 시련을 겪었다. 그래도 2012년은 나에게 더 할 수 없는 희망이었다. 모든 것이 우리의 소원처럼 해결될 것만 같은 희망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날을 떠올리면서 ‘국민행복’의 여정이 꼭 성공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과 과제는 무한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