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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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경쟁법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영국의 ‘GCR(Global Competition Review)’지로부터 미국, 독일, 프랑스 등과 함께 별 5개 만점을 받았다. 별 4개 반을 받은 EU(유럽연합)를 제치고 세계에서 1등을 차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캐나다 등의 경쟁당국은 공정위에 노하우 전수를 요청할 정도다. 경제검찰, 시장경제의 파수꾼으로 불리는 공정위는 이처럼 해외에선 인정받고 있지만 최근 속앓이를 심하게 하고 있다. 법에 따라 진행한 정책들이 비판을 받고, 지난 4년간 열정을 다해 조사한 대형 사건이 사실상 무혐의 판결을 받아서다. 그래서일까. 30년 넘는 공무원 생활을 주로 공정위에서 한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정 위원장은 28일 서울 태평로 공정거래조정원에서 머니투데이와 만나 “사건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최근 사건들은 억울한 측면이 많다”고도 했다. 당초 한시간 정도 예정된 인터뷰는 예
한정식보다는 치킨에 골뱅이가, 신형 자동차보다는 17년 된 자신의 무쏘 차량이 더 좋다는 기관장.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기사 딸린 세단이 "불편하다"며 직원들이 타고 다니는 중형 봉고차를 선호하는 기관장. 첫 공모절차를 통해 국립민속박물관 별정직 관장직에 오른 천진기(54) 관장은 '소탈함'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안동대에서 국내 최초로 민속학과가 개설되자 2회로 입학한 그는 "국내에 하나밖에 없으니 그 과에서 1등을 하면 '전국 1등'이 된다"는 학과 교수님의 꼬드김에 넘어갔다는 것. 실은 8녀 2남의 장손으로 태어나 어머니와 멀리 떨어질 수 없었던 지극한 효심이 더 컸다. 그는 1988년 국립민속박물관에 연구원으로 입사해 올해로 28년째 박물관 근무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대학원생 신분으로 일용직에 입사했으나, 1991년 정식 학예사가 됐으며 이후 학예연구관을 거쳐 국립민속박물관장 자리에 올랐다. "가진 것이 없으니 딴생각도 없어요. 박물관이 제게는 전부입니다." 천 관장은 민속학
열 평 남짓한 사무실 벽면을 둘러싼 나무 책장. 선반마다 잡동사니들이 놓여있다. 북유럽 전통의상을 입은 소년소녀 인형, 일본어가 쓰인 표지로 싸여있는 딱딱해진 쌀빵, 거친 갈색의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진 가방까지. 한편에는 손톱보다 작은, 유약을 발라 물기가 만져질 것처럼 촉촉해 보이는 도자기 개구리 3마리도 쪼르르 올려져 있다. "물건 버리는 걸 잘못해요. 여기 있는 물건중에는 세계 민속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우리 박물관을 찾아오면서 선물로 주고 간 것도 있고, 내가 가져다 놓은 물건도 있고. 아, 이건 미국에 있는 청바지 박물관에서 가져온 건데…." "뭐가 이렇게 많아요?" 말을 잘못 꺼냈다. 천진기(54)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인터뷰를 시작도 하기 전에 30분 넘게 물건을 소개하느라 바쁘다. 오래된 만물 잡화상 주인처럼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물건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들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는 자신을 "안동 촌놈"이라 말한다. 어렵고 학술적인 것에서 재미를 못 느낀다.
정 준 벤처기업협회장은 통신장비업체 쏠리드 창업자다. 최근엔 팬택 대표로 더 바쁘게 활동 중이다. 외모에서 풍기듯 온화하고 신중한 성품의 소유자인 정 회장은 지난해 주위를 깜짝 놀랄만한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끝에 청산에 몰린 팬택을 인수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지인들은 장고 끝에 내린 결단이란 걸 잘 안다. 하루에도 몇번씩 생사의 갈림길에 선다는 사업가로서 그의 성품은 최근 진가를 발한다. 팬택 인수 후 조급해질 법도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걸어나간다. 최근 팬택은 신제품 '스카이 아임백'을 내놓고 재기에 나섰다. 사업가로서의 그의 행보는 이력에서도 드러난다. 서울대와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면서 줄곧 한길을 걸었다. 1994년 KT에 연구원으로 입사한 후 1998년 사내 벤처 1호인 쏠리드를 창업했다. 그가 가장 잘 아는 통신장비 분야로 한 우물을 판 것이다. 벤처산업의 수많은 부침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다. 팬택을 인수한 배경도 통신장비와
"물이 끓기 바로 직전 임계점에 온 듯하다. 벤처 활성화 정책을 좀 더 과감히 실행해야 한다." 정 준 벤처기업협회장(52)은 "정부의 벤처 활성화 정책 덕분에 2000년대 이후 오랜 침체기를 벗어나 최근 제2의 벤처붐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다만 현재는 물이 끓기 전 기포가 올라오는 단계로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부가 단기간 세수 감소를 감수하더라도 좀 더 과감한 지원책을 내놓아야 할 때"라고 17일 밝혔다. 정 회장은 "국내 굴지 기업에 다니는 직원과 대학 교수가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벤처 창업에 뛰어드는 2000년대 초 벤처붐 현상이 재현되는 양상"이라며 "몇 년전까지만 해도 찾아볼 수 없는 대표적인 벤처붐 조짐"이라고 말했다. 그는 "벤처기업 창업에 나서거나 직장 선호도가 높으려면 미래의 위험보다 기대이익이 커야 한다"며 "결국 벤처기업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에 대한 과감한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 실패 위험을 줄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전 사고는 항상 인간의 욕망 때문에 발생합니다. 세월호 참사도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됐습니다. 안전은 욕망과 소망 중 비중을 어디에 두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대한민국 안전 콘트롤타워를 이끄는 중책을 맡고 있는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의 안전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다. 박 장관은 "안전을 완성하려면 욕망을 자제하고 소망 쪽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아울러 "안전은 사고 발생 뒷수습보다 예방이 더 중요한데 현실은 안전 사고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는 신속한 지원이 이뤄지지만 예방 목적으로는 예산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좀 더 안전 사고 예방 쪽으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전 방재에 대한 투자를 아까워 하지 않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적 재난에 대한 종합적이고 신속한 대응 및 수습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 2014년 11월 19일 국민안전처를 설립했다. 박 장관은 초대 국민안전처 장관으로 취임 이후 지난 19개월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64)은 지난 2014년 12월 5일 취임 이후 한 번도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잔 적이 없다. 사고가 났을 때 정부서울청사 1층에 있는 상황실에 10분 내에 들어오기 위한 것이다. 휴가 기간에도 서울청사 인근 거처에 머물면서 전화와 팩스 등으로 전국의 재난 상황을 챙겼다. 박 장관은 해군 4성 장군 출신으로 해군 1전투전단장, 제3함대 사령관과 합동참모본부 차장을 역임했다. 군 현역시절에는 해상작전에 잔뼈가 굵은 대표적인 '작전통'으로 꼽혔다. 경기도 양주가 고향으로 경희고를 나와 해군사관학교(28기)에 진학했으며 2008년까지 해군에서 복무한 뒤 전역했다. 2008년 3월 전역한 후 충남대 석좌 교수를 지냈다.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꼼꼼하고 신중한 성격이며, 상·하 동료들의 신망이 두텁다. 배우자 임순숙씨와 1녀를 두고 있다. △경기 양주(1952년) △경희고 △해군사관학교(28기) △국방대학교 안보과정 △경남대 안보정책학과 정치학 석사 △해군 인사참모부
“얼마 전 이세돌 9단과 구글 알파고의 대국은 우리 사회에 수많은 숙제와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에 근간한 지능정보사회에 걸맞는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게 시급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도 메이커(Maker) 문화가 보다 확산 돼야 합니다. ” 김승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은 메이커 문화로 ‘창직·창업의 르네상스’를 이끌어가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스스로 뭔가를 만들고 공유하는 메이커 운동은 김 이사장이 2014년 10월 부임한 뒤 가장 공을 들인 문화·교육사업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앞서 17~18일 양일 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2016 메이커 페스티벌’를 개최했다. 재단에 따르면 이 기간 총 1만 5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고, 총 1274건의 거래에서 1500만원대의 매출이 발생했다. 김 이사장은 “이번 행사는 개막식 의전도 없었고, 단체 참여를 요청하는 공문도 없이 오로지 20개의 민간 기관이 협력해 주도한 것”이라며 “메이커에
김승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은 최근 ‘암흑물질과 공룡’의 저자 리사 랜들 하바드대 교수와의 공개 대담 자리에서 ‘지적긴장’이란 말을 자주 썼다. 그가 운영하는 페이스북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단어다. 평소 호기심이 많은 데다 도전적인 김 이사장의 스타일을 면면을 엿볼 수 있는 키워드다. 그의 성향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사업에서도 고스란히 뭍어있다. 그는 3차원(D) 프린터 등의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물건이나 제품을 만드는 ‘무한상상실’ 등 메이커 스페이스(창작공간)를 전국 170여 곳에 2년이란 짧은 기간에 세웠다. 새로운 과학문화 대중화 사업을 망설임 없이 펼치는 김 이사장은 어떤 과제를 누가, 언제까지 진행할 지도 꼼꼼히 챙긴다. 2014년 10월 부임한 후로 지금까지 그가 추진한 사업 대부분이 정상궤도에 올라 있다. 김 이사장은 뼛속까지 물리학자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1981년)한 뒤 198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코넬대 응
국내 1위 식자재유통기업인 CJ프레시웨이가 중국에 이어 인도차이나반도 공략에 본격 나선다. 베트남을 거점으로 삼아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으로 진출국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현지 식자재 유통업체를 인수해 1~2년내에 직접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강신호 CJ프레시웨이 대표이사(55·사진)는 "안전하고 품질좋은 제품을 통해 국내 식자재 유통산업 수준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해외사업을 확대하겠다"며 "2020년까지 전체 매출의 35%를 해외에서 올릴 수 있도록 사업 구조를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인도차이나반도 국가의 경우 해변가는 해산물, 내륙은 농작물 식재료 품질이 좋아 물류시스템만 갖춰지면 현지 유통은 물론 제3국 무역에도 유리하다"며 "이들 지역에 CJ의 유통로드가 완성되면 수입 식자재 매입이 더 수월해져 이익률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대표를 지난 10일 서울 중구 쌍림동 CJ프레시웨이 본사에서 만났다. 불경기에도 지난해 매출이 15% 이상 성장하며
강신호 CJ프레시웨이 대표이사(55·사진)는 직원들 사이에서 합리적인 CEO(최고경영자)로 통한다. 매년 사업계획이나 목표를 세울 때 실현 불가능한 주문을 하는 법이 없다. 1년 동안 집중할 사업목표 3개만 선택해 밀어 붙인다. 연간 사업 과제를 10개 이상 만들고 달성하기 어려운 실적 목표를 세우느라 애를 먹던 보고서 작업도 강 대표 부임 이후 사라졌다. 대신 강 대표는 어떤 과제를 누가, 언제까지 진행할 지 꼼꼼히 챙긴다. 3개월 뒤에는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반드시 중간점검하고 문제점을 보완·개선하는 방식으로 업무에 속도를 낸다. 회사 실적이 좋아지면서 직원들의 사기도 크게 진작됐다. CJ프레시웨이 매출은 2013년 1조8769억원에서 지난해 2조724억원으로 10.4% 늘었다. 영업이익은 85억원에서 315억원으로 270% 성장했다. 100억원을 밑돌던 영업이익이 2년만에 300억원을 넘어서면서 지난해 CJ프레시웨이 직원들은 수년만에 연말 성과급을 받았다. 강 대표는 취임 초기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9개 금융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도입을 완료한 직후 숨돌릴 틈도 없이 전 금융권의 성과연봉제 확산을 주문하고 나섰다. 금융당국이 붙인 '금융개혁'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없더라도 성과연봉제는 국내 은행들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게 은행권 최고경영자(CEO)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를 대표해 성과연봉제 협상 테이블에서 금융노조를 설득하는 무거운 책임을 졌다. 은행권 CEO들은 성과연봉제 협상에 하 회장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보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금융 전문가'이자 '직업이 은행장'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은행장으로서 느끼는 은행권 임금체계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 회장은 1981년 28살의 나이로 씨티은행에 입사해 씨티은행 아시아·라틴아메리카지역 본부 임원, 씨티은행 한국소비자금융 대표 등을 지냈다. 2001년에 한미은행 은행장으로 취임해 2004년 씨티그룹에 인수된 후에도 계속 은행장으로 14년간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