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 "당장 충격 없지만 관리 안하면 큰 문제"
"13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가 가진 만성질환이다. 당장은 한국 경제에 큰 위기가 아니지만 놓아두면 발목을 잡을 것이다. 문제는 가계부채를 줄일 경우 경제에 충격이 상당할 것이란 점이다. 이 때문에 현재로선 가계부채가 많이 늘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은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수면 아래 존재하는 거대한 빙산처럼 한국 경제의 중요한 잠재적 위험요인 중 하나"라며 “가계부채를 줄이려면 빚을 갚기 위해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얘긴데 이는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어 쉽게 줄이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가계부채 총액은 1223조6700억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 등 비은행권 가계대출이 123조3300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39.5% 폭증했다. 이후로도 가계부채는 증가세를 계속하고 있어 올해 말에는 13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지난 7월말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673조7000억원으로 전달보다 6조3000억원 늘어났다.
서울 명동 금융연구원에서 신 원장을 만나 가계부채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들었다. 신 원장은 기업구조조정과 저출산·인구고령화 등 한국 경제가 당면한 중요한 과제에 대해서도 생각을 밝혔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1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부채 증가세를 경고했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에 잠재된 위험요인이다. 지금 당장 경제에 충격을 주는 요인은 아니지만 증가세를 관리하지 않았을 때 상당히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다만 가계부채 문제가 아직은 잠재돼 있을 뿐 표면적으로 터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서서히 완화해나갈 시간적 여유는 있다고 본다.
-가계부채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지금 가장 큰 딜레마가 가계부채를 줄이는 정책을 쓰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가계부채 축소를 목표로 정책을 펴려면 가계가 추가로 차입하지 않는 동시에 소비를 줄여 빚을 갚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이 경우 내수가 위축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지금은 가계부채를 줄이는 것보다는 더 증가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최선이다. 특히 가계부채의 잠재적 위험이 한계가구나 저소득층에 집중돼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들은 금리 인상, 노동시장 경직, 자산가격 감소 등 외부충격에 매우 취약하다. 이들에게 큰 충격을 가하지 않는 선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한계가구에 집중된 위험을 완화할 수 있는 선제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계가구를 위한 정책으로 무엇이 있나.
▶ 여러 가지 방안을 연구 중인데 한계가구에 대해서는 금리 상승시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이자비용의 상한을 정해주는 제도가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은행이 부담을 지게 되는데 서민금융 등 정책자금을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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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를 인하해도 경제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가계부채만 늘어났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통화정책의 효과가 기대했던 것만큼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금리를 인하하면 이자비용이 줄어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야 하는 데 대출만 증가할 뿐 소비 진작이나 투자 활성화 효과는 거의 없다. 이는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크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래가 불안하니 돈을 못 쓰고 쥐고 있는 거다. 게다가 투자를 하려 해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다. 주식 등 위험자산에 투자하려 봤더니 가격이 너무 올라 위험하게 느껴지고 무위험자산에 투자하려니 수익률이 너무 낮다. 그래도 비싼 위험자산에 투자했다 손해 보는 것보다는 나으니 수익이 거의 없는 무위험자산에 돈을 묻어두고 있는 상황이다.
-금리 인하가 부동산가격 버블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리가 떨어지니 사람들이 돈을 빌려 그나마 실물이라도 남는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 이 결과 부동산을 중심으로 자산가격에 버블이 있는게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와 더불어 자산 버블 조짐은 정책당국이 예의 주시해 선제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더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통화정책의 효과가 기대했던 것만큼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정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물론 지금 경제에선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 때문에 추가경정예산과 슈퍼예산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 여건이 더 악화되면 한국은행이 추가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고 본다.
▶가계부채가 잠재된 위험이라면 조선업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구조조정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지금의 기업구조조정은 부채를 줄이는 재무적 구조조정보다 주력사업을 조정하고 기업간 합종연횡하는 사업구조조정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엔 과잉 투자로 인한 과도한 부채가 문제였다. 부채만 줄이면 되는 대차대조표 오른쪽(대변)의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부채보다 수요가 문제다. 상품을 팔아 수익을 내야 하는데 전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렵다 보니 수요가 부진하다. 돈을 못 버니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거다. 문제는 부채를 갚는데 자금을 투입한다고 해도 정상적인 기업활동이 어려워 다시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재무적 구조조정과 더불어 국내 업체들의 세계 경쟁력과 글로벌 산업의 구도를 생각해 사업구조조정을 반드시 진행해야 한다.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국책은행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정부와 정치권 등 이해관계자들이 개입한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의사결정을 누가 하고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인지가 구조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다. 의사결정 최상층부와 실무급까지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우조선해양 같은 문제가 또 일어날 수 있다.

-은행, 보험사 등 금융산업도 위기라는 얘기가 나온다.
▶금융권이 수익성은 계속 떨어지고 소비자들의 신뢰는 얻지 못하고 있다. 고성장·고금리 시절의 수익모델에 안주해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금융산업이 활력을 잃은 가장 큰 원인은 금융회사 경영에 있다고 본다. 경영진이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미래를 보고 회사를 경영해야 하는데 현재 금융회사 경영진은 임기가 짧아 단기 실적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은행권에선 성과연봉제 도입이 이슈다. 은행의 고임금, 경직된 인력구조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데.
▶성과연봉제는 비단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는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어 인구구조상 성장 잠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출산율 저하와 인구 고령화로 국가 경제가 위축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를 타개하려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조직을 유연하게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 경직된 조직, 경직된 고용구조와 임금체계로는 버틸 수 없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금융산업도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자산관리, 복지혜택, 세제 및 상속 문제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신탁서비스를 준비해야 한다. 신탁서비스는 고령화에 대비한 금융회사의 핵심 서비스다. 금융회사는 고객과 신탁계약을 통해 생전과 사후에 이르는 자산의 축적과 배분을 도와줘야 한다. 재산상속과 장례비용 마련 등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다.
-지난해 3월에 취임한 후 1년반이 지났다. 그간의 성과와 앞으로 계획은.
▶취임 이후 정책 당국과 함께 금융개혁, 인터넷 전문은행 등 많은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은행장, 금융지주 회장들과 개별적으로 소통하면서 금융산업에 필요한 연구가 무엇인지도 고민했다. 앞으로도 정책당국과 금융업계 모두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소비자 관점에서 금융산업 발전에 필요한 연구를 진행할 생각이다. 금융연구원 내 연구원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고 국제적으로 금융연구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영문 자료도 많이 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