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
세상을 보는 새로운 창이 열립니다. 음악과 문화, 책이야기 등 부드러운 이야기로 세상을 들여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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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현실로부터 길어 올린 이미지들로 허구를 직조해 낸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정교하게 발달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카메라로 포착된 물리적 실재를 필요로 하는 영상예술은 그 DNA에 현실과의 완강한 끈이 낙인처럼 새겨져 있다. 아무리 허무맹랑한 판타지라 할지라도, 카메라가 포착한 순간의 물리적 현실은 영화적 세계를 우리의 현실 세계와 끊임없이 교차시킨다. 스크린에 새겨진 현실의 흔적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인지, 오늘날 미디어 콘텐츠를 둘러싼 담론은 언제나 현실과 허구 사이의 팽팽한 긴장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영상예술의 역사에서 리얼리즘과 그 기술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진짜 같아서 현실과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 세계를 꿈꿔왔다. 그러한 '완전영화'(Total Cinema)'의 상상은 어쩌면 영화 '트루먼 쇼'나 '매트릭스'가 설정하는 세계와 유사하다. 알고 보니 주인공의 일상이 거대한 세트 속 리얼리티 쇼였다던가,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모두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파격적인 설정은, 현실을 그대로 매개하는 카메라가 어떻게 가장 거침없는 판타지를 포용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빽빽한 빌딩 숲 사이를 걷다가 숨을 고르러 종종 가는 공간이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알려져 있는 선정릉 공원이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색채의 나무들과 다채로운 식물들이 주는 공기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을 훌쩍 넘게 그 길을 걸었지만 지난 주말에는 처음으로 다른 산책 루트를 택했다. 그렇게 우연히 마주한 것이 50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거대한 은행나무 보호수였다. 한참을 그 아래 앉아 나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긴 시간을 견딘다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 한 노래 가사에서 '영생(永生)과 영면(永眠)의 차이를 아느냐'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영원히 삶'과 '영원히 잠듦(죽음)'의 대비를 표현한 것이다. 어떤 작가는 '혐오(嫌惡)'와 '염오(厭惡)'를 구별해 표현했다. 혐오가 바깥의 대상을 향해 미움과 공격성을 키우는 감정이라면, 염오는 자기 안의 탐욕과 집착을 알아차리고 그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는 마음에 가깝다. 비슷해 보이는 단어 하나에도 감정의 방향과 태도의 차이가 숨어 있다.
스마트폰 앱을 열었을 때 버튼이 어디 있는지 헤매지 않았다면, 병원에서 접수를 마치고 진료실 앞까지 자연스럽게 걸어갈 수 있었다면, 편의점 무인계산대 앞에서 당황하지 않았다면 경험디자이너의 손길이 이미 스쳐간 것이다. 경험 디자이너(Experience Designer)는 사람이 어떤 서비스나 공간, 제품을 사용하는 전 과정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겉모습을 예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이 순간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어디서 막히는가" 등을 연구하고 그에 맞는 흐름을 만든다. UX(사용자 경험) 디자이너라고도 불리며, 디지털 앱부터 공항 동선, 병원 대기실, 쇼핑몰 배치까지 그 무대는 어디에나 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험디자이너가 손수 만들던 것들이 AI 도구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사용자 인터뷰 수백 건을 분석해 패턴을 찾는 작업, 다양한 화면 레이아웃을 시안으로 만드는 작업, 색상과 글꼴을 조합하는 작업들을 AI는 몇 분 만에 해낸다. 어도비(Adobe), 피그마(Figma) 같은 디자인 툴에는 이미 AI 기능이 기본으로 탑재됐다.
"마른 가지로 자기 몸과 마음에 바람을 들이는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는 순교자 같다. 그러나 다시 보면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고 싶어하는 순교자 같다. "(황지우, '서풍(西風) 앞에서' 전문)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을 표현한 작품이다. 시의 주제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운다"쯤 되지 않을까. 하지만 세상에는 부채의식을 넘어서는 극단적인 가치 추구가 있다. 유토피아를 꿈꾸며 이념, 종교, 혁명에 헌신하고픈 욕망. 그것 없이는 하루도 살기 어렵다는 인류의 위대한 망집(妄執) 말이다. 그렇다. 전쟁은 짧고, 혁명은 길다. '미국의 침공에 의한 이란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최후의 승자는 이란, 그중에서도 혁명수비대(IRGC)일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관종' 같다. 그는 "하나의 문명이 완전히 사라질 것"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을 것"이라고 선전포고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이 소총 들고 싸운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게 패배한 이유를 몰랐던 듯하다. 민족주의와 결합한 이념(베트콩)과 종교(탈레반)는 강철비로 때려맞아도 항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한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는 단순한 지원 사업을 넘어 대한민국에 전례 없는 창업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접수 마감 결과, 최종 신청자 6만 명이 넘는 기록으로 역대 정부 공모전 중 가장 많은 지원자가 몰리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는 대한민국이 '국가 창업 시대'로 진입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다. 이 프로젝트는 창업자금에서 사업화 자금, 상금 및 보육 공간 및 멘토링 서비스 등 창업에 있어서 없는 것이 없는 프로그램으로 이토록 뜨거운 호응을 얻은 비결은 결국 창업의 문턱을 파격적으로 낮춘 데 있다. 아이디어만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설계된 접근성이 잠재된 창업 욕구를 자극했을 뿐 아니라 수도권, 지역까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모두의 창업은 고무적인 프로그램이다. 합격자 3명 중 1명이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할 정도로 글로벌 기술 트렌드인 'AI 대도약'의 시대정신을 정확히 반영하고,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유학생이 한국 유학 준비 플랫폼 아이디어로 합격하는 등 글로벌 창업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까지 보여주었다.
클로드 미토스(Mythos)의 등장은 사이버 보안의 역사에 또 한 번의 거대한 변곡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는 기술 진보를 넘어, 공격자가 고도의 공격 지능을 가진 '자율 에이전트'를 손에 넣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제 보안은 더 이상 인력과 시간의 싸움이 아니라, 방어 체계를 '지능형'으로 재설계해야 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토스의 위력은 단순히 수조 개에 달하는 파라미터 규모에만 있지 않다. 공격의 전 과정을 스스로 판단·수행하는 '자율적 자동화 공격체계'를 구현했다는 점에 있다. 과거의 AI가 인간이 정한 범위에서 취약점을 찾는 도구였다면, 미토스는 시스템의 논리적 허점을 스스로 추론하고, 코드를 직접 작성·실행하며, 실패 원인을 분석해 재공격하는 공격의 주체가 되었다. 인간 보안 전문가의 복잡한 사고 과정을 통째로 복제한 자율형 공격 엔진이 탄생한 것이다. 이제는 AI가 만드는 변칙적, 맥락적인 위협을 방어측 AI가 얼마나 정확하게 탐지·예측·차단 하느냐가 승부처다. 공격자가 AI라는 첨단 무기로 무장한 상황에서 인간의 판단과 경험에만 의존하는 수동적인 방어체계는 '총 앞에 선 나무방패'와 다를 바 없다.
정부 주도로 향후 5년간 150조 원 규모로 조성되는 '국민성장펀드'가 닻을 올렸다. AI, 반도체, 로봇 등 미래 전략 산업에 대규모 모험자본을 공급해 국가적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하지만 이처럼 거대한 정책 자금이 움직일 때마다 자본시장과 국민들 사 이에서는 늘 근본적인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수익이 나는 사업이라면 왜 민간이 아닌 정부가 나서는가?" 혹은 "민간이 외면할 만큼 수익성이 없다면 왜 국민의 세금을 쏟아붓는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이다. 정책금융은 '시장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존재한다. 정보 비대칭이 크고, 투자 회수 기간이 너무 길어 민간 자본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마중물을 부어 물꼬를 트는 것이 정책의 역할이다. 여기서 흔히 발생하는 오해는 정책금융이 공익을 앞세워 수익성을 도외시해도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수익이 기대되지 않는 분야에 자금을 넣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보조금'에 불과하다. 수익성 없는 투자는 정책금융의 정당성을 해치고, 자본 시장에서 효율적 자원 배분의 왜곡을 초래하며,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금 한국의 원화 스테이블 코인 논의는 묘할 정도로 답답하다. 정치권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금융권도 검토에 들어갔으며, 산업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출발선 앞에서 몸을 풀고 있는데, 정작 출발을 알리는 총성은 울리지 않는다. "조금 더 논의하자", "조금 더 검토하자"는 말만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그 사이 세계는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 버렸다. 스테이블 코인은 단순한 가상자산이 아니다. 결제와 송금, 디지털 자산 거래, 실물자산 토큰화(RWA), 글로벌 커머스를 이어붙이는 새로운 금융 고속도로다. 문제는 그 도로의 중앙선을 이미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 점령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달러는 사실상 '디지털 기축통화'처럼 움직인다. 이 흐름이 굳어질수록 원화는 글로벌 디지털 경제에서 점점 존재감을 잃을 가능성이 커진다. 더 심각한 장면은 따로 있다. 우리가 규제에 대한 논의를 반복하는 사이, 원화는 해외에서 먼저 디지털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KRWQ다. KRWQ는 블록체인 기업IQ와 스테이블코인 프로토콜 Frax가 해외에서 발행한 원화 연동 스테이블 코인으로, Base 네트워크 기반의 다중체인 구조까지 구현했다.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면 관리적으로 편한 면은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일상 속에서 점점 더 두 성을 구분하고 있는 사회속에서 살아간다. 공항 보안 검색대에서 남자는 남성이, 여자는 여성이 보안 검사하는 것이 보편화 되고, 화장실 청소도 나뉘어 관리되고 있다. 어느 대학에서는 남녀공학으로 변경하려다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까지 남녀를 나누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 성을 단순히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범주로만 인정하지 않고 다양한 성 정체성이 존재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데 만약 성에 따라 해당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대응하기란 간단하지 않다. 모든 상황에서 동일 성의 사람만이 특정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면 사회는 원활하게 돌아갈 수 없다. 이런 대응이 인권을 존중하는 해결책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더 단순한 사실 하나가 간과되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거의 같은 생물학적 존재이다. 해부학적으로도, 생리학적으로도 차이는 거의 없다.
최근 특별한 강연이 있었다. 일본 최초의 마이크로파이낸스(소액금융) 유니콘, '고조앤컴퍼니(Gojo & Company)'를 이끄는 신태준 대표를 초빙한 자리였다. 자이니치(재일한인) 3세로서 일본과 한국 어느 쪽의 국적도 취득하지 않고 난민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신태준 대표는 기회의 평등을 위해 12년 전 도쿄에서 창업해 현재 6개국에서 200만명 이상의 중저신용자들에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어로 처음 강연해본다는 그였지만 유창한 한국어 구사가 돋보였다. 신 대표의 조부모는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하에 놓였던 1940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국적은 조선이었다. 이후 광복을 맞아 조선이라는 국적은 사라지고 재일 조선인들은 무국적자가 됐다. 부모가 그 지위를 물려받았고 신 대표도 태어나면서 무국적자가 됐다. 신 대표는 의도적으로 무국적 상태, 즉 난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난민 여행 증명서로 20~30개국에 출장을 다녔고, 입국 심사를 받을 때마다 두 번 중 한번은 별실에서 수 시간 동안 신원 확인 절차를 거쳤다.
1926년, 서울 단성사의 스크린 위로 800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된 흑백 무성영화 '아리랑'이 상영됐다. 3·1운동의 고문 후유증으로 미쳐버린 청년 '영진'의 이야기였다. 일제의 눈을 피해 숨죽이며 영화를 보던 조선의 관객들은 흐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실성한 영진이 바로 자신이며, 식민지 조선의 초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은 식민지 조선의 집단 정동(情動)을 점화했다. 2026년, 서울 광화문 광장의 무대 위로 3년 9개월 만에 방탄소년단이 돌아왔다. 경복궁을 배경으로, 광화문 월대를 무대로 아리랑을 불렀다. 세계에서 모여든 4만 명의 관객이 아리랑을 함께 불렀다. 100년 만의 아리랑은 기쁨과 희망이 섞인 인류 보편의 멜로디로 세계시민의 정동을 파고드는 노래가 되었다. 아리랑은 본래 하나의 노래가 아니다. 정선, 진도, 밀양, 상주 등……. 저마다의 삶과 정서가 녹아든 수십 가지 변주가 있다. 민요 선율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후렴을 공유하지만, 가사와 음정은 천차만별이다.
증기기관이 농업 사회를 산업 사회로 바꿨듯, 디지털 기술은 20세기 후반 인류 문명의 시공간 제약을 허물고 소통 방식과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이 격변을 디지털 혁명이라 부른다. 단순한 기술혁신이 아니라 정보의 생성, 저장, 유통 방식이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경제·사회·문화의 판이 새로 짜였다. 디지털 혁명의 첫 번째 결실은 디지털 컨버전스다. 따로 작동하던 방송·통신·인터넷이 디지털을 매개로 하면서 경계가 무너졌다. TV로 보던 영상, 전화로 나누던 대화, PC로 검색하던 정보가 하나의 기기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스마트폰 한 대로 영상 시청, 검색, 결제가 가능해지자,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디지털 컨버전스의 핵심은 연결과 결합에 있다. 기능이 묶이면서 편의성과 효율이 업그레이드됐다. 하지만 연결과 결합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기업은 디지털 기술을 효율적 도구로만 쓰는 것을 넘어, 업무 프로세스와 조직 운영체계 속으로 흡수해야 했다. 그 내부화 과정이 디지털 전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