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
세상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인지 판단할만한 여유도 없습니다. 시사에 대한 지식인들의 평론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세상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인지 판단할만한 여유도 없습니다. 시사에 대한 지식인들의 평론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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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금융계에서 핀테크가 큰 화두다. 이론상으로 인터넷강국 한국은 자본시장 개방으로 훈련된 금융이 합심하면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핀테크 작품을 만들 조건을 갖췄다. 그러나 현실은 한국의 IT는 금융을 모르고, 금융은 리스크 관리와 규제의 틀 속에서 안주하고 있다. IT강국 한국은 옛말이고 SNS에서 스마트폰에서 모두 중국에 밀린다. 거기다 이젠 세계 IT업계의 새로운 대세인 핀테크에서는 중국과 비교하면 규모와 다양성에서 게임이 안 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핀테크의 본질은 금융혁명이다. 지점도 직원도 통장도 없는 사이버 금융기관이 모바일을 통해 비용 제로로 서비스하는 금융사회가 핀테크의 미래다. IT업계는 신사업이고 전통 금융회사들에는 개미지옥이다. IT업계는 이미 들어간 고정비인, 서버 위에 금융메뉴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이다. 이는 그간 정부가 만든 법의 보호막 속에서 수수료와 이자를 앉아서 먹는 금융시장 구조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핀테크는 사회 전반의 금융비용을
간통죄가 대다수의 지지 속에 별다른 저항 없이 폐지되었다. 한국여성민우회를 비롯한 진보 여성계도 자기성결정권의 시대에 간통죄는 부적합하다며 폐지를 지지했다. 이들은 간통죄는 실제 효과도 없고, 가정이나 여성을 보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여성에게 불리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간통죄 폐지가 정말 여성들에게 유리한지는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간통죄 폐지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자기성결정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성결정권’은 개인이 성행위를 누구와 어떻게 할지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는 권리를 말한다. 따라서 이번 간통죄 폐지는 개인이 성적 욕구를 자유롭게 실현할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간통죄는 기혼자들의 성관계는 배우자하고 이루어질 때만 정당한 것이라는 사회적 의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성관계에서도 사회적 책임을 고려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간통죄 폐지는 따라서 사회적 관계나 책임 없이 성적인 욕구만으로도 성관계를 할 수 있다고 허용하는 것으로 볼
역사적으로 볼 때 어느 사회든 법을 위반하는 사례, 특히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사적인 이득을 취하는 부정부패가 없을 수는 없는 듯하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여서 부정을 저지른 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연일 언론을 뜨겁게 달군다. 또한 그러한 사건 뒤에는 어김없이 소위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선언이 비장하게 들려온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이 둘의 동행은 마치 잘 짜놓은 각본처럼 이루어져왔다. 지금도 딱 그러한 형국이다. 범법행위를 진화론적으로 접근하면 법을 위반하는 것이나 그러한 위반을 막으려는 사람들의 행위는 꽤나 당연해 보인다. 본래 법이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 개인은 가능한 한 규범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한 개인의 위반행위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사회는 이러한 범법행위를 제재하는 것이 필수다. 말하자면 무임승차자를 없애려는 장치들을 마련할 필요가 생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걷는 상상을 해보자. 방향도 분간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 대응하는 방법은 단 두 가지다. 다른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길을 따라가거나 자신의 판단을 믿고 홀로 나아가는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들도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면 자신의 신념만을 붙잡고 가는 수밖에 없다. 이제 타인의 소리는 잡음이 된다. 귀를 막고 자신의 내면만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한다.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면 신념은 확신으로 바뀌고 그렇게 확신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는 강한 연대를 형성한다. 바야흐로 신념과잉의 시대다. 모든 게 불확실한 환경에서 자신의 신념만을 붙잡고 가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말이다. 미국대사에게 테러를 가한 사람은 한·미 군사훈련이 한반도 긴장의 원인이라는 신념으로 일을 벌였다. 특정 정치집회가 종북성향을 띤다는 판단으로 고등학생이 황산테러를 가한 것은 또 어떠한가. 한 지방자치단체장은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 가는 데가 아니다’라는
1970년대 석유가격 급등으로 우리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기도 했지만 대규모 토목공사 수주를 발판으로 고속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게 해준 기회의 땅.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태동한 지역이자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였지만 지금까지 지역분쟁과 종교적인 충돌로 인해 세계인의 눈에 화약고로 비쳐질 땅. 중동지역에 대한 이미지는 우리에게 이처럼 가까우면서도 멀다. 중동은 이미 아시아(5456억달러)와 유럽(1570억달러)에 이은 우리나라 제3위 교역권(1540억달러)일 정도로 경제적 교류가 많지만 여전히 우리 중소기업들에는 낯설고 두려운 미지의 지역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대기업들은 현지법인을 통해 시장조사를 손쉽게 하는 데 비해 자원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들은 적합한 사업파트너를 물색하는 데서부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동은 외국인, 외국 자본에 대한 규제가 많은 편이다. 세무나 회계 관련 규제도 까다롭고 고위층 중심의 인맥도 중요한 편이어서 많은 기업들이 중동 진
연초부터 고용시장에 꽃샘추위가 매섭다. 지난 1월 15~29세 청년실업자가 39.5만명에 달했다. 공식 청년실업률은 9.2%지만 체감실업률은 21.8%로 체감청년실업자가 107만명이나 된다. 청년실업자 100만명 시대에 접어들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대학 인문계열 졸업생의 취업률은 1995년 62.6%에서 지난해 45.9%로 낮아졌다. 최근에는 2014년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인문사회계열 취업률이 25.1%로 보도된 바 있다. 체감청년실업률 21.8%는 위험수위다. 그리스·스페인·포르투칼 등 남유럽국가들이 청년실업 대란으로 사회불안, 국가디폴트, 디플레이션의 망령에 쫓기는 현실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심화되는 청년실업 문제는 결국 적극적인 성장전략으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최근 방한한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의 주장처럼 투자 중심의 성장정책이 해법이다. 그런 점에서 제조업부문의 지속적 투자 부진은 심히 우려스럽다. 1980년대 12.7%던 투자증가율은
홍동백서, 어동육서야!! 틀리면 조상에게 죄라도 짓는 것처럼 한바탕 소란을 피운다. 명절에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면 늘상 부닥치는 문제다. 요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난리다. 그리고 그 핵심은 혁신이다. 그런데 현 교육체계에서 혁신은 이루기 어려워 보인다. 사전을 찾아보니 공부란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며, 학문이란 한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히는 것이라 했다. 차이는 무엇일까? 공부를 한자로 쓰면 ‘쿵푸’(功夫)로 계속 연마한다는 뜻이다. 태권도의 이미지다. 그런데 쿵푸에는 ‘왜’라는 요소가 없다. 학문은 바로 이 ‘왜’를 현실에 기초해 쉽고 논리적으로 일반화하는 작업이다. 지금의 우리는 단지 공부에 능할 뿐 학문에 익숙지 못하다. 최근 출간된 한 원로 수학자의 책(풍수화)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아직 전통적인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오직 소수의 양반만이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과거를 통해 출세가 보장되었다. 양반들만이
‘21세기 자본’에서 저자 피케티가 핵심으로 주장하는 것은 부유국가들의 부의 불평등이 역사상 가장 심했던 19세기말~20세기 초반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의 축적은 성장률과 자본수익률의 관계에 의해 좌우된다고 한다. 성장률이 떨어지는 반면 자본수익률이 이를 웃돌 때 부의 집중과 불평등은 더욱 심화된다고 한다. 21세기 세계의 경제성장률은 1~1.5%, 자본수익률은 역사적인 평균 4~5%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부의 집중과 그에 따른 불평등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어떤 경우도 과도한 부의 불평등은 바람직하지 않다. 20세기 동안 국민소득 대비 총자산(부)의 비율이 가장 낮았던 때는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다. 전쟁의 충격도 있지만 자본을 규제하는 다양한 세제 및 금융정책 덕분이었다. 최고 세율이 94%까지(영국) 치솟았던 누진세의 도입은 자본규제의 대표적인 방법이었다. 자본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지만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의 역할도 함
금융의 자유화나 국제화 수준에 있어서 우리보다 못하다고 여겨온 금융후진국 중국이 순식간에 국제금융 분야에서 이미 우리를 추월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을 그들의 금융권으로 편입하려는 작업을 공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의 집 일로 치부하고 눈만 껌벅거리는 듯한 정부당국의 위기감 상실 증세를 주시하다보면 자연히 나라가 불쌍하다는 느낌에 한탄을 금할 길이 없다. 현재 한국 중국 일본 중 자국통화에 의한 무역결제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일본으로 30% 수준이다. 한국과 중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3% 미만이었으나 불과 몇 년 사이에 중국이 17% 수준으로 비약적인 도약을 한 반면에 한국은 아직도 3% 미만을 유지한다. 게다가 한국 원화에 의한 중국 및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결제 비중은 2%에도 못 미치는 형편이다. 우리 TV드라마나 ‘강남스타일’ 등 한류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인기가 있는 것에 비하면 세종대왕님이 새겨진 원화의 인기는 그야말로 형
그동안 현 정부가 행정력을 집중해 온 젊은이들의 기업가정신 함양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을까? 박근혜 정부 출범 3년을 맞아 이를 가늠할 기업가정신 지수 평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GEDI(The Global Entrepreneurship and Development Institute)가 최근 130개국을 대상으로 개인의 창업활동에 대한 태도와 열망 및 각종 제도와 통계 등을 종합 평가한 ‘2015년 국가별 기업가정신 지수 순위’를 발표해 눈길을 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세계 다른 나라와 비교해 우리나라 기업가정신 지수 순위가 다소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5년 우리나라 기업가정신 지수는 조사대상 130개국 중 28위를 기록, 지난 2014년 32위, 2013년 37위 보다 조금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가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젊은이들의 기업가정신 발현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많은 정성을 들여 온 결과로 여겨진다. 획기적인 개선
‘세계의 공장’, 중국은 이제 잊어야 한다. 미국이 금융위기 이후 QE(양적완화) 시리즈를 통해 푼 돈은 대략 3.9조달러인데 지금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3.9조달러다. 세계의 달러가 중국으로 모인 것이다.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전 세계의 명품과 소비재를 구매하는 ‘세계의 지갑’이다. 중국 돈이 말을 하는 시대가 왔다. 전 세계 명품의 28%, 전 세계 면세점매출의 47%를 소비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연간 1억1500만명이 해외여행을 간다. 한국에도 지난해 610만명이 다녀가 한국에 유커 바람을 일으켰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강제로 상하이를 점령한 유럽은 조차지역인 와이탄에 유럽식 거리를 만들고 입구에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라는 간판을 써붙였다. 중국인을 개와 같은 급으로 보았다. 하지만 175년이 지난 지금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은 서로 중국관광객을 VIP로 모시기에 혈안이 돼 있다. 상전벽해다. 제조대국 중국이 세계의 투자자로 변신했다. 중국이
다시 복지논쟁이 뜨겁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지난 복지논쟁은 주로 복지서비스를 공급하는 방식의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복지제도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증세문제가 주된 쟁점이 되었다. 한편에서는 더 이상 증세는 어려우니 있는 복지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과잉복지로 국민이 나태해 진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다른 한 편에서는 증세하지 않으면 복지확대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당장 증세계획부터 세우라는 것이다. 이렇게 극단적인 두 주장 사이에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정치적 토론은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OECD국가들 중 거의 꼴등에 가까운 복지수준을 또 깎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증세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또 현 단계에서 증세 없이 복지확대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복지감축도, 당장의 복지증세도 아니다. 이보다 복지증세를 어렵게 하는 요인들을 찾아내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복지증세에 대한 저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