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석유가격 급등으로 우리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기도 했지만 대규모 토목공사 수주를 발판으로 고속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게 해준 기회의 땅.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태동한 지역이자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였지만 지금까지 지역분쟁과 종교적인 충돌로 인해 세계인의 눈에 화약고로 비쳐질 땅. 중동지역에 대한 이미지는 우리에게 이처럼 가까우면서도 멀다.
중동은 이미 아시아(5456억달러)와 유럽(1570억달러)에 이은 우리나라 제3위 교역권(1540억달러)일 정도로 경제적 교류가 많지만 여전히 우리 중소기업들에는 낯설고 두려운 미지의 지역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대기업들은 현지법인을 통해 시장조사를 손쉽게 하는 데 비해 자원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들은 적합한 사업파트너를 물색하는 데서부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동은 외국인, 외국 자본에 대한 규제가 많은 편이다. 세무나 회계 관련 규제도 까다롭고 고위층 중심의 인맥도 중요한 편이어서 많은 기업들이 중동 진출에 애를 먹는다.
하지만 시장진출이 어렵다는 점은 우리 기업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개척할 만한 먹거리가 무궁무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중동의 경우 유럽과 아프리카로 자연스럽게 나아가기 위한 일종의 관문시장이기에 반드시 공략해야 하는 이유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달 초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4개국 순방길에 100여명의 경제인이 동행해 비즈니스외교를 펼친 일은 중동에 대한 우리 중소·중견기업들의 목마름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가 몸담은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도 지난 8일 카타르과학기술단지(QSTP)와 LOI(협력의향서)를 체결해 여기에 힘을 보탰다.
KIAT가 여러 중동권 국가 중에서도 카타르를 산업기술협력 파트너로 주목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카타르는 전체 면적이 경기도 정도(1만1521㎢)에 불과한데다 인구도 겨우 200여만명 정도인 작은 나라다. 그마저도 인도인과 네팔인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자국민 인구수는 전체의 약 12%인 28만명 수준이라고 한다. 기술도 인재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잠재력은 많다. 카타르는 천연가스와 원유 등 풍부한 에너지자원 개발에 힘입어 2014년 기준 1인당 GDP가 자그마치 9만4744달러에 육박하며 GDP 성장률이 매년 6~7%를 상회할 정도로 고성장하는 중이다. 1999년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등 중동 내 아랍권 국가들 중에서는 비교적 개방적이라는 점도 우호적인 조건이다. 또한 최근 3년간 GDP의 2.7~2.8%가량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면서 기술혁신에도 매우 의욕적인 모습을 보인다.
카타르는 현재 ICT(정보통신기술), 정보보안, 헬스케어, 신재생에너지 육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2022년 카타르월드컵 인프라를 안전하고 친환경적으로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은 터라 녹색기술 및 보안산업에 눈독을 들인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가 강점을 가진 분야다.
KIAT와 QSTP가 맺은 LOI는 아직은 작은 시작이지만 그동안 건설과 에너지 중심이던 양국의 협력분야를 제조업 전반으로 확대하는 초석이 놓였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KIAT는 카타르 내의 기술수요를 구체적으로 파악한 뒤 국내기업 및 연구소들과 연계해 현지에서 즉시 통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KIAT가 공공기관의 지위를 활용해 중동진출에 필요한 현지 네트워크를 선제적으로 확보한다면 국내 기업들이 관련 시장을 선점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중동시장은 여러모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시장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 했다. ‘탈 석유’ 시대, ‘포스트 오일’ 시대에 대비해 산업다각화를 시도하는 중동을 바로 알고, 우리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진출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KIAT도 기업들의 효과적인 현지 공략을 지원하는 ‘항로’의 역할을 해내도록 현지 진출 상세 지도를 만들어 나가는 데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