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자들이 발로 뛰는 취재 현장의 뒷얘기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사물의 앞면 보다는 뒷면이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기에 기자수첩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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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초 자원외교 수사가 한창일 때의 일이다. 모 상장사에 대해, 수사당국 관계자가 "또 몰라, 지금 사두면 재미볼지도"라며 농담 섞인 한마디를 던졌다. 압수수색과 해외도피 중인 대표이사 탓에 동전주로 전락한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공교롭게도 2년 뒤 대표이사의 귀국소식에 이 회사 주가는 10배 가까이 상승했다. 물론 그 끝은 상장폐지였지만. 최근 한국항공우주(KAI)를 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5년 전 자원외교 수사와 이번 방산비리 수사 면면이 겹쳐 보이는 탓이다.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수사. 서초동서 날아온 한마디에 주가는 급락한다. 금융당국은 질세라 특별감리 방침을 밝혔다. 분식회계 이슈에 채권 딜러와 애널리스트는 눈길을 거뒀다. 이제 불안한 건 개미들이다. 악재 기사에 '공매도 세력의 앞잡이'라는 등 투자자들의 항의성 메일과 댓글이 달린다. 의혹을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에서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때도 손해 보는 건 타이밍을 놓친 개미들이다. 8월 이후 한국
1954년 5월17일, 열한살 흑인소녀 린다 브라운의 소원이 이뤄졌다. 기찻길 건너 1마일(1.6㎞) 떨어진 흑인 학교가 아닌 집 근처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린다의 꿈을 현실로 만든 건 당시 미국의 연방대법원장 얼 워런이었다. 그는 흑인과 백인을 분리해 학교를 다니게 한 것은 '위헌'이라는 이른바 '브라운 판결'을 끌어내 역사를 바꿨다. 이 판결은 인종차별을 허무는 민권운동의 불을 지폈다. 이 판결없이 반세기 뒤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대한민국 사법부가 새 수장과 함께 새 출발을 한다. 앞으로 6년간 사법부를 이끌 김명수 대법원장은 자신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21일 "국민을 위한 사법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그리는 '국민을 위한 사법부'는 어떤 모습일까. 김 대법원장을 향한 기대와 우려 중에는 '한국형 사법적극주의'가 실현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사법적극주의는 워런 대법원장처럼 기존 판례에 얽매이지 않고 헌법과 법률을 유연하게 해석해
“중국시장을 포기할 수 없지 않습니까. 동남아업체를 인수한 뒤 우회 진출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근 만난 한 드라마업체 대표는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보복 타개책으로 동남아 드라마업체 인수를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한국 제작사가 인수한 동남아업체와 컨설팅 계약을 하고 이 회사가 중국업체와 제작 계약을 해 우회적으로 진출하는 구조다. 현재 중국에선 한한령(한류금지령)으로 한국에서 제작된 콘텐츠 방영뿐 아니라 한국인 스태프의 이름을 자막에 넣는 것까지 자제하는 분위기다. 엔터테인먼트업계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한한령 해제에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과 사드 추가 배치 등으로 한·중 관계가 더욱 냉랭해지면서 기대감은 물거품으로 변했다. 한한령으로 한류가 주춤하는 사이 중국 콘텐츠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한국기업의 강점으로 꼽았지만 중국업체들의 콘텐츠 기획력과 연출력이 급성장한 것. 중국 드라마 ‘인민의 이름으로’는 젊은 인기
삼국지 무제기(武帝紀) 구현령엔 ‘유재시거(唯才是擧)’라는 말이 나온다. 불인, 불효하더라도 재주만 있으면 발탁하겠다는 인사지침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선 ‘재주마저’ 없어도 된다. 청탁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다. 청년들이 공정할 것으로 믿고, 지원하고 싶어하는 대기업과 공기업에서 채용 비리가 관행처럼 장기간에 걸쳐 만연했다. 강원랜드 사장은 자유한국당 의원의 비서관을 경력직으로 채용하라고 실무팀에 지시해 ‘맞춤 채용’을 했다. 심지어 이 회사가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선발한 신입사원 518명 가운데 무려 95%인 493명이 청탁 대상이었다. 네이버는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딸의 인턴을 청탁받아 특혜성 교육을 제공하고 현직 부장판사 자녀를 인턴으로 뽑아줬다. 석탄공사는 2014년 사장의 조카가 청년인턴 지원자 362명 중 321등으로 불합격할 위기에 처하자 자기소개서를 만점으로 고치고, 면접점수를 재작성하도록 시켜 최종 합격시켰다. 정규직 채용시험에서 과락에 해당하자 면접을 통
"요즘은 방산 사업을 하는 게 회의가 듭니다" 얼마 전 만난 방산업체 고위 관계자가 한 말이다. 요즘 방산업계는 이 업 자체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한숨 소리가 들려 온다. 두달 넘게 검찰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대한 수사를 하면서 '방산은 곧 비리'라는 여론의 매를 맞는 것도 모자라, 군과의 불공평한 계약 때문에 이익은커녕 손해만 볼 수 있어 수주에 뛰어들기가 무섭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의무를 행하지 못하면 장기를 내주기로 약속하는 '신체포기각서'를 쓰는 듯한 기분이란다. 방산은 안정적인 사업으로 인식돼왔다. 정부를 상대로 하는 계약이다 보니, 속된 말로 돈을 떼일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군이 주요부품 국산화를 정책으로 세우고, 업체들이 자체 개발에 뛰어들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성능 결함 등으로 인도가 지연되면서 물어줘야 할 '지체상금'이 과도하게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업체 탓이 아닌 경우에도 '지체상금'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방사
투기과열지구와 청약조정대상지역에 대폭 강화된 아파트 청약요건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1순위 자격이 청약통장 가입 1년에서 2년으로 늘었고 전용 85㎡ 이하 아파트는 100% 청약가점제로 당첨자를 뽑아야 하는 등 '주택공급규칙' 개정안이 시행됐다. 당장 청약가점이 낮은 실수요자들의 '청약 포기'가 속출했다. 신축 대신 구축 아파트 매입으로 눈을 돌리는 분위기다. '8·2 부동산 대책' 발표 후 거래가 실종되다시피 한 강남 구축의 호가가 최근 다시 직전 고점 수준으로 오른 것도 이같은 기대감을 반영했다. 문제는 신축도, 구축도 동시에 들썩이기 시작하면 8·2대책의 효과가 무위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점이다. 정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분양가를 제어하면서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공급되는 강남권 단지들은 '로또'가 됐다. 분양가를 인위적으로 낮추도록 하는 것은 신축 단지가 높은 가격에 분양에 성공하면 인근 구축의 가격까지 끌어올려 시장이 과열로 가는 것을 막아주는 효과 때문이다.
“어디 출신이냐 보다 중요한 건 조직에 대한 책임감 아닐까요.” 신임 원장 공모 절차가 진행 중인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직원이 한 말이다. 정부 산하기관장 자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선거에서 공을 세운 정치인을 내려보내는 ‘낙하산’ 인사나 퇴직을 앞둔 공무원들이 거쳐 가는 자리보전용으로 인식돼온 지 오래다. KISA 원장 자리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원장이 교체될 때마다 신임원장의 자질을 두고 논란이 반복돼왔다. 정작 KISA 직원들에게 신임 원장이 낙하산이냐 아니냐, 전문가냐 비전문가냐는 중요치 않아 보인다. 구성원들이 바라는 최우선 덕목은 조직에 대한 책임감이다. 기관의 특수성 때문이다. KISA는 민간과 공공 사이버 보안의 최전방 역할을 한다. 640여명에 달하는 직원들은 사이버전으로도 비화 될 수 있는 디지털 영토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24시간 365일 비상체제로 일한다. 맡고 있는 역할이 가볍지 않음에도 불구 ‘집행권한 없는 정부 산하기관’이란 꼬리표 탓에 업무
"정치가 문화예술의 영역을 침범하면 안 됩니다. 저는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올해 전시나 행사를 위해 한국을 찾은 중국 작가 및 관계자들에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질문이 쏟아졌다. 기다렸다는 듯 매번 같은 맥락의 답변이 돌아왔다. 당위적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 켠은 답답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국내 예술계는 대내외 정치 상황에 크게 휘청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중 문화교류 대부분은 한국의 일방적인 '러브콜'이다. 중국의 서예 거장 치바이스의 국내 첫 대규모 전시 '목장(木匠)에서 거장(巨匠)까지'부터 중국의 80년대생 '바링허우 세대'를 대표하는 신진 화가 쑨 쉰의 첫 개인전까지 라인업도 화려하다. 반면 한국 작가들의 중국 전시는 여전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올해만 해도 국공립 미술관 전시부터 민간 단체 차원의 계약까지 수십 건에 달하는 행사가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올 7월 중국 전시를 위한 모든 준비를 끝내고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세계약사연맹(FIP) 서울총회가 지난주 막을 내렸다. 대한약사회는 행사 종료 후 "서울 총회에 94개국 해외약사와 약학자 1803명, 한국약사와 약학자 750여명이 참가했다”며 자축했지만, 거액의 비용을 들여 홍보부스에 참여한 제약사들은 반응이 달랐다. FIP 서울총회는 시작 전부터 논란이 많았다. 대한약사회가 제약사에게 요청한 FIP 서울총회 후원 홍보부스 비용이 너무 고가였기 때문이다. 대한약사회가 공개한 FIP 서울총회 후원 홍보부스 비용은 △다이아몬드 플러스 5억원 이상 △다이아몬드 2억원 이상 △플래티넘 1억원 이상 △골드 5000만원 이상 △실버 3000만원 이상 △브론즈 2000만원 이상 △실버스톤 1000만원 이상 등이었다. 국내 학술대회 행사 부스비용이 200만원~300만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FIP 서울총회 행사부스 비용은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국내외 제약사들은 ‘고가 홍보부스’임에도 불구하고 해외 약사들에게 자사 제품과 회사 브랜드를
지난주 애플의 신형 아이폰 공개 며칠 전 ‘한국 네티즌, 아이폰8(아이폰X 지칭)은 한국산이라고 강력히 주장’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중국 인터넷포털에 올라왔다. 제목만 봐도 반한감정을 부추기는 의도가 의심됐다. "아이폰X 부품의 상당수가 한국산이라는 점 때문에 한국인들이 아이폰X에 'Made in Korea'를 새겨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게 기사의 요지다. 아이폰X를 분석하는 일부 한국 네티즌의 농담 섞인 반응을 침소봉대했다. 기사에는 댓글만 3000개 넘게 달릴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한국은 단오절도, 자동차, 비행기도 자신들이 발명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도 한국인이라고 하지 왜?” 등 조롱이 대부분이었다. 중국을 대표하는 관영매체 인민일보 기사다. 중국의 관영 언론은 중국 공산당이 운영한다. 중국 정부가 나서 반한감정을 부추긴 꼴이다. 중국이 관영 매체를 동원해 한국을 모욕하는 건 이제 일상처럼 됐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양국 관계에 금이 간 이후 연일 한
"전세계적으로 학교폭력 대책 중 가장 효과가 없다고 알려진 방법이 처벌 위주 정책이다." 홍현주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 기자와 대화에서 처벌로만 학교폭력을 해결하려는 우리나라 정서를 꼬집었다. 이제껏 징계와 처벌 위주로 만든 대책이 효과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답은 '회복'에 있다고 말한다. 빠른 변화와 숫자에만 집중한 각종 대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학교가 사법기관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을 정도로 잘잘못을 따지고 징계 내리는 데에만 열중한다. 부산 학교폭력 가해 학생은 끔찍한 일을 저질렀지만 아직 중학생이다. 치료와 교육을 통해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크다." 물론 큰 공분을 산 가해 학생을 정신과 치료와 상담이 필요한 대상으로 보려는 시각 자체가 어딘가 불편하다. 화가 가득한 사회에 누구도 섣불리 나서서 가해 학생들을 치료하자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재발 방지에 엄벌주의는 답이 아니다. 하지만 누가 이런 말을 듣고 싶겠나? 오히려 뭇매 맞기
"글로벌 플레이어답지 못하다." 최근 메모리사업부 매각을 추진 중인 도시바의 M&A(인수합병) 협상 태도에 대한 업계의 지적이다. 지난 13일 도시바는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을 본격적인 협상에 대한 양해각서(MOU) 체결 대상자로 결정하면서도 이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다른 컨소시엄과의 협상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약혼은 당신과 하지만 더 좋은 결혼 상대가 나타난다면 얼마든지 갈아타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황당해 보이는 이 매각의 협상 방식이 빈축을 산 것은 도시바가 이미 상대방의 '뒷통수'를 친 전례가 있어서다. 지난 6월 당초 '한미일 연합'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쓰나카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이 지난달에 다시 미국 웨스턴디지털(WD) 측 등과도 협상 중이라고 밝혀 인수전을 원점으로 되돌린 게 대표적이다. 당시에도 우선협상자 선정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대목이 빌미가 됐다. 실제로 이번 13일 이사회가 열리기 하루 전까지도 가장 유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