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자들이 발로 뛰는 취재 현장의 뒷얘기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사물의 앞면 보다는 뒷면이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기에 기자수첩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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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의 포화가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으로 전이될 때 국가 위기관리 능력은 시험대에 오른다.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한국에서 석유 수급은 경제의 혈류와 같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실효성 있는 '시스템적 대응'과 실효성 없는 '개인적 희생 강요' 사이를 위태롭게 오간다. 정부 정책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실효적 조치는 '정부 비축유 스와프(SWAP)' 제도다. 중동발 원유 도입이 차질을 빚을 때 민간 정유사가 해외에서 대체 물량을 확보하더라도 국내 도착까지는 최장 50일이 소요된다. 정부는 이 도입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국가 비축유를 우선 대여하고 사후에 돌려받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통해 원유 수급 기간을 10일 이내로 단축하며 산업계의 생산 차질을 정밀하게 방어했다. 데이터와 물류 시스템에 기반한 '유능한 행정'의 전형이다. 반면 '범국가적 에너지 절감 캠페인'은 실효성 측면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주말 세탁기 사용'이나 '샤워 시간 줄이기' 같은 지침은 1980년대식 계도 행정의 재림으로 볼 수 있다.
"지금은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는 연구 자체가 진료 행위죠. " 최근에 만난 한 종양내과 의사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정밀의료의 시대에 의사는 데이터를 환자처럼 다룬다. 어떤 질병에 무슨 약이 잘 듣는지, 환자에 따른 차이는 얼마나 나타나는지 확인해야 '맞춤 의료'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약을 쓰면서 모이는 의료 데이터는 임상시험과는 다를 수 있다. 신약이 허가받을 때 하는 임상시험은 제약사 주도로 이뤄진다. 성별, 연령, 병력이 다양한 환자를 모두 포함하기 어려워서 효과도, 부작용도 전부 알 수 없다. 반면 사용 과정에 쌓인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는 실사용근거(RWE)는 현실 환경에 실사용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돼 보다 실용적이고, 포괄적이다. 환자의 과거 병력, 진단 결과, 투약 정보, 치료비 등을 총망라하니 치료 효과나 비용 효과성을 판단하기 쉽다. 성별·연령을 불문하고 다양한 '한국인 데이터'가 기반이 되는 만큼 글로벌 임상시험에서는 몰랐던 부작용과 효과를 알아차릴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전자의무기록(EMR)이 대부분의 병·의원에 깔려있고 정부가 행위별 수가 등 비용을 통제하기 위해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우리 집주인이 비거주 1주택자인데, 내가 전세 살고 있는 자기 집에 들어와서 살겠다고 하면 나는 다음 계약 갱신 때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 " 서울에 거주 중인 A씨는 정부가 1주택자에 대한 전세대출 보증 금지와 함께 기존 대출의 만기연장을 불허하는 규제를 검토하는 데 대해 "무주택 실수요자 대출도 조인 상태에서 집 있는 사람들까지 압박하면 결국 나 같은 무주택자들만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역대 대통령들도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려 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뭔가 다르다. '이재명은 합니다'로 대변되는 그의 강력한 추진력과 실행력은 '코스피 5000'을 달성한 후 빠르게 '부동산 정상화'로 옮겨갔고, 현재진행형이다. 부동산과 금융의 '절연'을 선언한 정부는 규제의 단골 타깃이었던 다주택자를 넘어 1주택자까지 겨냥하면서 남다른 화력을 보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세제, 금융, 규제 정상화를 통한 부동산투기 제로 구현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또 반드시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제껏 이 정도로 강력한 조치는 없었단 점에서 '부동산 불패' 신화가 정말 끝날지 일각에서 기대감도 읽힌다.
"일반적으로 대학교의 창업 휴학 허용기간은 2년(4학기)이다. 이후 복학해서 사업과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데 창업자가 학생이라는 이유로 고객 미팅과 주주 간담회를 주말로 미룰 순 없다. 결석이 쌓이면 낙제를 받고, 낙제가 쌓이면 제적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 " 대학교 2학년 때 창업 전선에 뛰어든 한 스타트업 대표는 정부의 '모두의 창업'과 관련해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사업이 현실이 되는 순간 학생 신분과의 충돌이 일어났다"며 "학교에 몇 년 동안 방법을 구했지만 '창업학생을 위한 예외규정이 없기에 방법이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했다. 모두의 창업이라는 말은 듣기에는 따뜻하다. 누구나 기회를 얻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를 약속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구호를 곧이곧대로 믿고 뛰어든 청년의 발밑은 생각보다 훨씬 거칠다. 창업을 권하는 목소리는 넘치지만 창업을 지속할 수 있게 받쳐주는 구조는 비어 있어서다. 이 간극이야말로 지금 정책이 놓치고 있는 현실이다.
"아쉬움이 있는 게 사실이죠. " 고(故) 김창민 감독 사망 사건을 두고 한 경찰관은 이같이 말했다. 부실 수사 논란에 내부 감찰이 진행 중인 사안인 만큼 더 말을 보태지는 않았지만, 이번 사건을 둘러싼 답답함은 고스란히 읽혔다. 김 감독은 지난해 10월20일 새벽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 경기 구리의 한 음식점을 찾았다가 화를 입었다. 소음 문제로 옆자리 일행과 시비가 붙었고,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단 폭행을 당했다. 바닥에 쓰러진 뒤에도 식당 안팎으로 끌려다니며 폭행이 이어졌다. 이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11월7일 뇌사 받정을 받았고, 장기 기증 이후 숨졌다. 가해자 일행은 6명이지만 초기 수사에서 입건된 건 1명뿐이었다. 경찰은 입건된 1명에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고, 이후 불구속 송치했다. 유족의 항의로 보완수사가 이뤄졌지만 추가 피의자 특정과 영장 재청구까지 4개월이나 걸렸다. 상해치사 혐의로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다시 청구됐지만 이마저도 법원에서 기각됐다.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고 봐서다.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터질 때마다 기업들은 비슷한 대책을 내놓는다. 시스템을 고도화하겠다, 점검을 강화하겠다, 모니터링을 보완하겠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늘 빠지는 질문이 있다. 그 시스템을 실제로 돌리고 로그를 읽으며 이상징후를 초기에 잡아낼 사람이 충분하냐는 질문이다. 이제 보안사고는 장비가 없어서 일어나는 시대가 아니다. 솔루션은 이미 웬만한 기업에 다 들어가 있다. 문제는 운영이다. 정보보호는 기술보다 운영에 가깝고 운영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25 정보보호 공시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분석 대상 757개 기업의 평균 정보보호 전담인력은 11. 2명이다. 정보기술 인력 대비 정보보호 전담인력 비중도 평균 6. 7%에 그친다. 기업들이 AI(인공지능) 전환과 디지털 전환을 말하지만 그 기반을 지키는 인력은 생각보다 얇다. 업종별 격차는 더 크다. 정보통신업의 평균 정보보호 전담인력은 25. 4명, 금융 및 보험업은 22. 8명이다. 반면 건설업은 3. 4명,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은 2.
"이런 표는 처음 봅니다. " 정부의 자동차 정책 공론화 과정에 참여해 왔던 한 자동차업계 인사가 오는 10일 IPO(기업공개) 수요예측을 앞둔 채비라는 회사의 증권신고서를 보고 한 말이다. 증권신고서는 채비 측이 대기환경보전법상 보급 목표를 토대로 만들었다. 하지만 법에는 차량 판매대수가 언급조차 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채비 측은 여러가지 가정을 자체적으로 정해서 회사의 IPO 가치를 산정했다. 국내 전기차 신차 판매량이 2025년부터 매해 똑같이 유지된다는 자체 가정을 바탕으로 법에서 목표로하는 전기차 비율을 곱해 전기차 시장규모를 정한 것. 정부와 소통해 왔던 전문가조차 처음 보는 내용이 IPO 기업가치의 기준이 된 배경이다. 기자는 최근 채비 측이 전제로한 시나리오가 10%포인트만 빗나가면 채비가 2028년에 목표로 한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가 반토막난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채비는 보도 이틀 후부터 세 차례 정정을 거쳐 공모가 산정 기준인 2028년 추정 EBITDA를 10% 낮췄다.
인공지능(AI)을 신약 개발에 접목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국내 업계는 한껏 고무됐다. 'IT 강국' 경쟁력이 신약 개발에 더해지면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이에 'AI 신약'을 표방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했고, 자본시장 역시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현재, 국산 AI 신약은 당초 기대와 달리 제한적 성과에 그치고 있다. 반면, 글로벌 무대에선 AI로 발굴한 후보물질이 인체 대상 임상에 진입하며 일부는 임상 2상까지 도달했다. 국내는 여전히 전임상이나 초기 임상 단계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술수출 역시 초기 후보물질 중심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같은 격차는 기술력만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국내 기업들도 후보물질 발굴 역량은 확보했지만, 이를 실제 신약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한계가 드러났다. 병원과 기관별로 데이터가 분절돼 있고 표준화도 부족했다. 결국 개발 속도와 임상 진입에서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업계가 국가적 차원의 데이터와 인프라 구축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이는 배경이다.
"보완수사권 없으면 검사가 힘들어지나요? 오히려 편해지는 거죠. "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검찰이다. 그래도 이재명 대통령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니 든든한 마음이 들지는 않느냐고 하자 한 간부급 검사가 초연하게 말했다. 이런 답이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했다. 냉소적인 반응에 잠시 충격을 받았다. 보완수사권이 존폐 논란은 현재로선 큰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검사들 의지대로 되지도 않을 일이라고도 했다. 또다른 검사는 "보완수사권 주지 마라"는 반응도 보였다. '될 대로 돼 보라지' 하는 심술, 심술을 넘어선 체념과 냉담도 읽힌다. 실제 일선 검찰청의 상황은 암담하다. 당장 휘몰아치는 일을 소화할 사람도 부족해 조만간 사라질 조직을 아쉬워할 여유도 없다. 간부급 검사는 "지금 당장은 일할 검사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최근 많은 검사가 무력감을 느끼는 지점이다. 현재 검사들은 평시 대비 3분의 2 정도 업무에 투입돼 있다.
요즘 게임업계의 화두는 단연 펄어비스의 '붉은사막'이다. 단순히 7년 만의 신작이어서가 아니다. AAA급 콘솔게임으로 처음부터 북미·유럽시장을 겨냥해 공들여 만들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붉은사막'의 성과에 따라 대한민국 게임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기대가 너무 컸을까. '붉은사막'에 대한 평가는 출시 초반 흔들렸다. 출시 직전 전문가 평단인 메타크리틱에서 기대이하의 점수를 줬고 펄어비스 주가는 바로 하한가로 주저앉았다. 출시 직후에도 스팀에서 복합적인 평가를 받자 국내 커뮤니티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붉은사막'은 출시 나흘 만에 업계 추산 손익분기점인 판매량 300만장을 넘었다. 이어 12일 만에 400만장을 돌파했다. 스팀에선 동시접속자 27만명으로 펄어비스 자체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유저들의 평가도 초반 '복합적'에서 현재 '매우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붉은사막'의 초기평가와 주가흐름이 부진했던 것은 국내 유저의 불신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게임이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니 주식도 게임출시 직후 일단 팔았다가 잘되는 걸 확인한 후 되사는 경향을 보인다.
"궁금한 건 뭐든지 질문해유. " 지난달 31일 더본코리아의 주주총회가 끝난 후 백종원 대표가 기자들을 불러모았다. 기자들과 소통 시간을 갖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였다. 그만큼 처음에는 가벼운 이야기로 대화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대화가 지난해 불거졌던 여러 사건들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백 대표의 반응은 사뭇 달라졌다. 몇몇 질문에는 예민한 표정이 스쳤고,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배어있었다. 할 말이 많이 쌓였던 모양이었다. 발언 속도가 하도 빨라지다보니 그의 말을 받아 치는 손가락이 얼얼해질 정도였다. 그는 "욕을 하도 먹어서 그런다"며 이해를 구했다. 더본코리아의 사업 방향을 설명할 땐 소신이 묻어났지만 대중의 시선을 언급할 때는 평소의 그와 다르게 정제된 언어를 많이 사용했다. "제 얘기 공감하쥬? 그래놓고 이상하게 쓸라구?" 특유의 화법을 섞어가며 부연 설명을 반복했다. 지난 1년간 더본코리아를 둘러싸고 쏟아졌던 논란들을 떠올리면 그의 반응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지난해 더본코리아가 당한 고발 건수는 160건이다.
"모두 허탈해 하죠. " 최근 기자와 만난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 소속의 복수 여권 관계자들이 입을 맞춘 듯 한 말이다.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에 반대했지만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푸념이었다. 정부·여당은 디지털자산기본법에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율을 20%로 제한하고 예외적으로 34%까지 허용하는 내용을 담기로 가닥을 잡았다. 법안 제정을 실무적으로 맡은 의원과 보좌진, 자문단의 강한 반대에도 정부의 강경한 규제안을 수용한 당 지도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정부 논리는 이렇다. 가상자산거래소는 공공 인프라여서 소수 대주주 개인의 리스크가 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분 분산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당에선 가상자산 시장 성숙기에 가해지는 전형적인 사후 규제라며 반대한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위헌성'을 문제 삼고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 등 대체 수단을 제안했다. 돌이켜 보면 법안 논의 초기 단계엔 지분 제한 문제가 테이블에 아예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