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자들이 발로 뛰는 취재 현장의 뒷얘기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사물의 앞면 보다는 뒷면이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기에 기자수첩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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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워도 이런 최악은 생각하지 못했다. " 최근 만난 한 석유화학업계 관계자의 얼굴엔 짙은 근심이 묻어났다. 연초만 해도 적자 폭만 줄여도 다행이라던 그는 "피가 마르는 기분"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중동 사태란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난 업계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나프타 공급이 막히면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최소 가동률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 실제로 LG화학은 전남 여수 산업단지의 2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업계 전반으로 번지는 연쇄 셧다운(가동 중단) 공포도 점점 엄습해오고 있다. 특히 그간 업황 둔화로 대부분 기업이 운영자금과 재고를 최소화해온 탓에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나프타는 '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의 핵심 원료다. 에틸렌은 자동차와 전자, 건설, 섬유, 플라스틱 등 산업 전반에 쓰이는 대표적 중간재다. 나프타 수급 차질이 국내 제조업 전반을 뒤흔들 수 있단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같은 위기는 현실이 되고 있다.
"타사 게임이지만 '붉은사막'이 올해 게임상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퀄리티 좋은 한국 게임이 전 세계를 휩쓴다는 자부심이 업계에 더 필요해요. " 다른 회사의 이 이례적인 응원은 현재 한국 게임 산업이 처한 갈급함을 드러낸다. 빌보드를 점령한 BTS와 오스카를 거머쥔 '기생충'이 K-컬처의 위상을 바꿨듯 이제 게임 산업도 단순한 오락을 넘어 문화적 아이콘으로 거듭나야 할 때라는 공감대가 짙어진 것이다. 한국 게임의 경제적 위상은 이미 독보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24년 국내 게임산업의 수출액은 85억347만달러(약 12조7000억원)로 콘텐츠산업 전체 수출액 140억7543만달러(약 21조원)의 60%를 넘는다. 음악과 방송·영상산업을 합한 수출액보다 2. 7배 많다. 그러나 K-게임이 '고효율 상품'을 만드는 데 치중한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여전하다. 지난해 11월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업 종사자들은 게임 비즈니스 모델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단기적인 수익 목표로 인한 게임 수명 단축'을 압도적 1위로 꼽았다.
서울시 청년안심주택에서 또다시 보증금 미반환 문제가 불거졌다. 공공의 이름을 내건 정책이지만 막상 문제가 발생하자 "민간임대라 개입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문제가 발생한 주택의 청년들은 결국 개인 대출을 받아 다시 살 곳을 찾아야 했다. 마이너스 통장을 뚫고 부모와 지인에게 돈을 빌려 이사했다는 한 청년의 사연은 취재 내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후에도 유사한 피해를 호소하는 제보가 이어졌다. 임대인은 보증보험 가입과 갱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청년들의 보증금은 '언제 돌려받을지 모르는 돈'이 됐다. 청년 '안심' 주택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물론 임차권등기, 경매 배당 등 법적 보호 장치가 존재한다. 의무 위반을 이유로 임대인에게 과태료 처분을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금융 부담 그리고 불안은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에도 청년안심주택 일부 단지에서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서울시는 대대적으로 보증금 선지급과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가고 싶을까요, 복무기간 차이가 2배인데…. " 전북 한 보건의료원에서 일하는 3년차 의과 공중보건의사(공보의) A씨는 최근 의대 후배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말끝을 흐렸다. 자연스럽게 군 복무 얘기가 오갔지만 공보의나 군의관은 선택지에 없는 눈치였다. A씨는 "요즘 의대생들 사이에서는 '복무기간이 육군(18개월)의 2배인데 손해 볼 필요 있느냐'는 분위기가 강해졌다"고 전했다. 지역의료와 군 의료 지탱하는 공보의·군의관 수급은 최근 10년 새 절벽에 몰렸다. 올해 총 의과 공보의는 2010년(3363명)의 약 6분의1 수준인 593명에 그친다. 신규 배치 인원은 98명으로 공보의 단체가 최소한의 지역 보건의료 기능 유지를 위해 확보해야 한다고 제시해 온 '200명' 선이 무너졌다. 의과 군의관도 2013년 662명에서 올해 225명으로 66%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의대생 현역병 입영자는 2020년 150명에서 2025년 1~8월 2838명으로 약 19배 급증했다. 이 같은 기피 현상은 36개월이라는 과도한 복무기간에서 비롯된다.
"여전히 도로가 비포장인데 아무리 차가 좋아도 잘 굴러갈 수 없죠. " 6. 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이 당에 내린 냉정한 평가다. 이른바 '윤 어게인' 노선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대표선수(공천 후보자)들을 제대로 지원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담긴 말이다. 국민의힘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역대 최저치의 정당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소속 의원 전원의 '절윤'(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 결의에도 유권자들은 냉담하다 못해 제1야당에 관심을 좀체 내어 주지 않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윤 어게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 노선을 둘러싼 갈등 전선은 흡사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징계 문제'로 당 지도부와 친한계는 '루비콘 강'을 건넌지 오래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가까스로 후보 등록은 했으나 장동혁 대표와는 건곤일척 관계다. 선수를 이끌 감독(선대위원장) 인선 문제가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다. 공천 과정에선 원칙과 기준없는 '물갈이'란 비판이 비등하다. 고물가, 고환율, 외교·안보 등 산적한 대내외 정책·민생 현안에서도 보수야당의 존재감은 딱히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도 주식 거래량이 급증하면 한국거래소나 증권사에서 전산장애가 자주 발생합니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한국거래소가 거래 시간 연장을 밀어붙이니 걱정입니다. " 최근 여의도에서 만난 증권사 한 관계자는 한국거래소가 주식 거래시간 연장을 급하게 추진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거래소는 정규장 전·후에 프리마켓(오전 7~8시)과 애프터마켓(오후 4시~8시)을 개설하고, 내년 말에는 24시간 거래 체계를 도입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증권업계는 순차적으로 주식 거래시간 연장을 위해서는 준비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체거래소의 등장, 주식 거래 급증 등으로 이미 전산장애가 빈번해진 상황에서 제대로 된 서버 준비와 테스트 없이 주식 거래시간을 연장했다간 전산사고가 급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증시가 급등락하고, 거래량이 급증하자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카카오페이증권 등에서 전산 장애가 발생했다. 지난 9일에는 한국거래소 주식 주문이 지연되거나 거부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수능을 잘 보는 것과 일을 잘하는 것은 다르다. " 정부가 지난해 2월 '국가대표 AI(인공지능)'를 선발하겠다고 밝힌 지 1년이 지났다. AI업계에선 대기업도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자금을 정부가 지원해 국내 AI 생태계가 활성화됐다고 입을 모은다.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까지 대규모 AI모델 개발 노하우를 축적해 글로벌 진출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AI 인재양성도 이뤄진다.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벤치마크 중심으로 평가가 이뤄져 자칫 시험 잘 보는 AI 선발전으로 변질할 수 있다는 우려다. 벤치마크는 AI모델이 특정 문제를 얼마나 잘 푸는지 점수화한 지표로 여러 모델을 비교해 '줄세우기'엔 탁월한 도구다. 그러나 AI모델의 혁신성·효율성, 연구의 난이도까지 평가하진 못한다. 정부도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전문가(35점)와 사용자(25점) 평가를 병행하지만 벤치마크 배점이 총 40점으로 가장 높다. 일각에선 AI가 시험을 잘 보도록 족보(평가문제)를 외우게 하는 '벤치마크 오버피팅' 의혹도 제기한다.
"다시 모이는 인파, 준비는 충분한가. " 15일 찾은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인근 대형 전광판에는 BTS(방탄소년단) 공연 광고가 쉴 새 없이 흐른다. 평소처럼 시민들이 광장을 오가지만, 화면 속에는 '3월 21일 라이브'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전 세계 26만명에 달하는 군중의 광화문 집결이 이제 엿새 앞으로 다가왔다. 도시 전체가 축제의 열기로 들썩이고 있지만, 환호의 이면에는 묵직한 질문 하나가 남는다. '이 많은 인파를 정말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가'다. 대규모 인파 관리는 우리 사회에 각인된 뼈아픈 숙제다. 2022년 이태원 참사 후, 시민들은 밀집된 군중을 마주할 때마다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 일종의 '사회적 트라우마'다. 그때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예상되는 이번 공연을 앞두고 '과연 안전할까'라는 걱정이 가시지 않는다. 그간 정부는 매뉴얼을 정비하고 대응 체계를 강화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매뉴얼의 부피가 커졌다고 위험이 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 참사가 남긴 교훈은 매뉴얼의 부재가 아닌, 현장에서 이를 실행할 '지휘관'과 '소통'의 실종이었다.
중소기업인에게 기업의 성장은 마냥 반가운 일은 아니다. 경제단체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규제는 94개 늘고, 대기업이 되면 규제가 329개로 증가한다.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 커지면 각종 세제·금융 지원에서 제외되고 다양한 규제에 직면한다. 기업이 성장하면 책임과 규제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성장에 따른 규제의 무게가 지나치게 무겁다. 규제의 쓴맛과 혜택의 달콤함을 맛본 기업들은 중견기업으로 성장을 꺼리고 '피터팬'으로 남는다. 보호 중심 정책에 자생적 역량을 쌓지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최근 '규제개혁위원회'가 대통령 직속 기구인 '규제합리화위원회'로 격상됐다. 다양한 분야의 경제·산업계 전문가와 정책 담당자들이 참여하는 위원회 구성도 눈길을 끈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구조라는 점에서 정부가 규제 문제를 핵심 경제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규제는 시장 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문제는 규제의 존재가 아니라 과도하거나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부분이다.
지난달 강선우 무소속(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체포동의요구서 '오기' 논란 당시의 일이다. 한 경찰 간부는 한숨을 내쉬면서 "검찰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1차 책임은 경찰에 있지만 사실상 '복붙'(복사하고 붙이기)한 검찰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요구서 초안 격인 구속영장 신청서에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기재된 것이 알려지면서 경찰의 수사 역량이 도마 위에 올랐던 때다. 경찰은 당시 온라인 기사 등을 참고해 사실이 아닌 내용을 구속영장 신청서에 기술했다. 검찰도 제대로 된 확인없이 관행적으로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고 이는 체포동의요구서 형태로 다시 검찰, 법무부를 거쳐 국회에 제출됐다. 국회가 체포동의요구서를 접수하지 않는 방식으로 시간을 버는 사이 '경찰→검찰→법원→검찰→법무부'의 프로세스가 다시 작동된 후에야 논란은 일단락됐다. 오기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여권 일각에선 검찰의 이른바 '복붙' 행정이 제도화된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는 민주당 강경파가 공소청의 예외적 보완수사권까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근거한다.
"어제 리터당 1750원에 주유했습니다. " "저는 1740원대에 넣었어요. " 최근 한 업계 관계자와 가진 식사 자리에서 오간 대화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간 전쟁이 벌어진 후부터는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게 됐다. 물론 결국은 "기름값은 왜 이렇게 빨리 오르는 거냐"는 푸념으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정유업계에서도 이미 책임 공방이 한차례 오갔다. 정유사와 주유소가 서로를 향해 '빌런'이라고 지목하면서다. 주유소업계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기름을 먼저 공급하고 가격은 나중에 확정하는 사후정산제를 문제로 꼽고 있다. 정유사 입장에서는 일부 주유소가 가격 상승을 예상하고 물량을 비축하면서 가격이 더 빠르게 뛰는 것처럼 보인다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는 표현처럼 중동 정세에 따라 움직이는 유가는 한국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다. 하지만 그 때마다 우리가 대응하는 방식은 '빌런 찾기'에 집중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정부가 유류세 인하 카드를 꺼냈지만 소비자 가격에 즉각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 공방이 벌어졌다.
"금융위원회가 갑자기 왜 지분을 규제하는 방안을 법안에 넣겠다고 하는거지요?" 금융위가 가상자산거래소의 대주주 지분을 제한하는 규제를 디지털자산기본법 정부안에 포함한 일이 알려진 뒤 업계 관계자들이 기자에게 쏟아낸 질문이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지분 규제에 금융위의 의중을 알고 싶다는 것이다. 해답은 얼마 후 이억원 금융위원장의 입에서 나왔다. 이 위원장은 지난 1월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디지털자산기본법으로 거래소 인가제가 도입되면 영구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지위를 부여하게 된다"며 "공공 인프라적 성격이 강해지기 때문에 이에 걸맞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소유 지분을 규제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의 설명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우선 가상자산거래소는 공공재가 아니다. 정부의 지분규제는 사유재산 침해라는 위헌적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가상자산거래소는 이용을 위해 수수료를 내야 한다. 가입을 막을 수도 있고, 한정된 가상자산을 사기 위한 경쟁도 이뤄진다. 공공재의 조건인 비배제성과 비경합성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법조계·학계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