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프타 대란이 남긴 경고[기자수첩]

나프타 대란이 남긴 경고[기자수첩]

김지현 기자
2026.03.25 05:50
LG화학 여수공장 전경 /사진=뉴스1
LG화학 여수공장 전경 /사진=뉴스1

"아무리 어려워도 이런 최악은 생각하지 못했다."

최근 만난 한 석유화학업계 관계자의 얼굴엔 짙은 근심이 묻어났다. 연초만 해도 적자 폭만 줄여도 다행이라던 그는 "피가 마르는 기분"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중동 사태란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난 업계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나프타 공급이 막히면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최소 가동률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 실제로 LG화학(314,000원 ▲24,000 +8.28%)은 전남 여수 산업단지의 2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업계 전반으로 번지는 연쇄 셧다운(가동 중단) 공포도 점점 엄습해오고 있다. 특히 그간 업황 둔화로 대부분 기업이 운영자금과 재고를 최소화해온 탓에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나프타는 '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의 핵심 원료다. 에틸렌은 자동차와 전자, 건설, 섬유, 플라스틱 등 산업 전반에 쓰이는 대표적 중간재다. 나프타 수급 차질이 국내 제조업 전반을 뒤흔들 수 있단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같은 위기는 현실이 되고 있다. 이들로부터 합성수지를 공급받는 국내 중소 플라스틱 업체들은 공급 축소나 중단 통보를 받으며 직격탄을 맞았다. 원가 급등과 납기 지연이 겹치며 경영난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석유화학 기업들에 수출 대신 내수 공급을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비축분이 바닥난 상태에서 국내 수요를 맞추기도 어렵단 토로가 쏟아진다.

나프타 수급 대란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나프타를 대부분 외부에서 조달하고 있다. 평시엔 문제가 없으나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되는 순간 공급망은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자원이 무기화된 시대에 안정적 수급을 담보할 수 있는 전략 없인 같은 위기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정부 차원의 나프타 비축 정책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온다. 원유나 액화천연가스(LNG)처럼 나프타 역시 정부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저장탱크를 확충해야 한단 지적이다. 아울러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수입선 다변화와 대체 공급원 발굴도 시급하다. 무엇보다 나프타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한국 제조업이 휘청일 수 있단 사실이 이번 사태로 확인됐다. 실효성있고 지속 가능한 정부의 대책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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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기자

안녕하세요. 산업1부 김지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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