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머니투데이 데스크들이 금융, 증권, 산업, IT, 정치, 경제, 사회 및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취재현장에서 갈고 닦은 날카로운 풍자와 비평을 통해 혼란스러운 세상, '중심' 잃지 않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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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이 남한산성에서 내려다본 송파나루와 삼전도 주변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짙은 안개는 어디로 갈지 모를 조선(朝鮮)의 앞날인 것만 같아 최명길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청군에 결사항쟁을 해야 할 지, 치욕을 당하더라도 종묘사직이 살아남기 위하여 항복을 해야 하는 지 시시각각 마음이 흔들린다. "항쟁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요, 항복은 가능한 치욕", "아름답게 죽을 것인가, 더럽게 살 것이가?" 최명길은 항복을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도, 소설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씨가 던진 명제를 놓고 '항쟁과 항복' 사이에서 갈등을 거듭한다. 대의(大義)를 고집하며 청과 싸울 것을 주장하는 김상헌의 우직스런 고집이 차라리 부러웠을까. 김상헌인들 고민과 번민이 없었으랴. 김상헌은 피란처라 더욱 귀한 막걸리 한사발이라도 구하면 꼭 최명길을 찾았다. 최명길을 아끼는 안타까운 마음의 발로였다. 최명길이 왜 항복을 마음 속에 두고 있는지 속 깊은 그의 심사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두 신하사이에서 갈등하
앨런 그린스펀 시절 '선제적 통화정책'으로 명성을 얻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요즘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신용경색을 풀기 위해 금리를 과감히 내린 지 1년도 안돼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충격이 가신 것도, 경제가 다시 활기를 띠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고유가로 경기침체보다 무섭다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을 눈앞에 둔 여건에서다. 너무 '신중한' 조치로 한때 궁지에 몰리기도 한 유럽에선 이제 "벤 버냉키 FRB 의장이 금리인하 조치를 후회하고 있을 것"이라며 안도감 섞인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미국이 지난해 9월부터 올 4월까지 기준금리를 3.25%포인트 낮춘 사이 영국은 0.25%포인트 인하하는 데 그쳤고, 유럽중앙은행(ECB)은 아예 손을 대지 않았다. 한국은행도 FRB에 동조하지 않은 점이 뒤늦게 평가를 받는 분위기다. 정부 교체가 포함된 지난 10개월
얼마전 하나로마트 달걀코너에서 달걀을 고른 적이 있다. 1개에 100원짜리부터 300원이 넘는 것까지 다양했다. 가장 비싼 달걀을 집어들었다. 2배, 3배씩이나 비싼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無생산촉진제/無성장호르몬제/無항생제'라고 찍혀 있었다. 그걸 읽고 나니 다른 달걀 집기가 새삼 겁이 났다. 한방생약제나 소백산 자락 지하 170m 천연암반수를 먹인 닭의 달걀까지 고를 생각은 없었지만 아이들 먹일 건데 '無***'가 찍혀 있지 않은 달걀을 살 수는 없었다. 뭘 먹기가 겁난다. 때론 아는 게 병이 되기도 한다. 하루종일 자기 몸통만한 닭장에 갇혀 알만 낳는 닭은 화를 품게 되고 그 닭이 낳은 달걀도 정상일 리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달걀을 샀는데 이후 달걀을 살 때마다 닭장에 갇힌 닭이 떠오른다. '쇠고기 사태'와 함께 이물질 파동, 조류인플루엔자에 이르기까지 가히 식란(食亂)이라 할 만하다. 검역 과정이 의심스런 정체불명의 중국산이 우리 밥상을
# 점심에 111년된 회사를 만났다. 1897년에 설립됐다. 우리나라에서 최고(最古)로 알려져 있는 두산의 전신인 '박승직 상점(1896년)'이 문을 연 1년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제조회사다. 지금도 설립당시와 같은 상호를 사용하고 있고, 같은 업종을 영위하고 있다. 게다가 장소까지 똑같다. 한 자리에서 111년을 버텨온 것이다. 어떤 회사일까 궁금해하겠지만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회사다. 까스활명수, 후시딘 등으로 알려져있는 동화약품이다. 이 회사의 창업자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수차례 옥고를 치렀다. 일제의 압박으로 회사는 어려움에 처했다. 그런 와중에도 회사내에 서울연통부를 설치, 각종 정보와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일을 했다. 서울연통부는 상해임시정부가 서울에 설치한 비밀 행정부서다. 급기야 부도위기에 처했을 때 이 회사를 인수한 사람도 독립운동가였다. 신간회 간부로 독립운동을 했고, 옥고를 치렀다. 그의 아들도 광복군으로 활동했다. 1944년 일제에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몰락은 아주 사소한 사건에서 시작됐다. 발단은 대학생들과의 불화였다. 1965년 앙토니 대학 기숙사 학생들은 여학생과 남학생이 서로의 건물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프랑스 대학은 대부분 국립이라 결정권은 정부에 있다. 하지만 정부는 철부지들의 터무니없는 요구라며 철저히 무시했다. 프랑스 젊은이들의 가슴에 드골은 권위주의, 권력, 보수주의의 상징으로 거부감이 쌓여 갔다. 드골은 드골대로 자유분방함으로 흘러가는 당시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점점 더 젊은이들과 접촉하는 것이 불편했고 그래서 만남을 피했고 소통은 단절됐다. 소소한 시위가 계속되던 중 1968년 3월에 파리대학(소르본대학)의 분교가 위치한 파리 교외 낭테르에서 구속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가 확산될 것을 우려한 대학 학장은 5월2일 대학 폐쇄 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시위는 오히려 파리 시내 한복판으로까지 퍼져나갔고 경찰들은 강경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연일 계속되면서 결국 정부가 한발 물러섰다. 광우병 위험성이 있는 30개월 이상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미국과 재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정부의 입장 선회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놓고 빚어진 정부와 국민의 갈등도 다소 누그러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앞선다. 그러나 여기에 오기까지 정부와 국민 모두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이 뜻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답답해 했고, 국민은 국민대로 정부가 국민의 뜻을 외면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 과정에서 시위에 참가한 많은 사람이 연행됐고, 경찰 진압 과정에서 다쳤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으로, 취임 100일 만에 한·미관계를 다시 '시험대'에 올려놓아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사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건은 노무현 정부가 남긴 숙제였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 양국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원만히 매듭되도록 하려면 이 숙제부터 해결해야
외교와 통상은 양립이 힘든 부분이다. 한 쪽은 친선과 우호를 말해야하고 다른 쪽은 얼굴을 붉히더라도 자신의 이익은 챙겨야 한다. 속된 말로 `불알’ 친구와 사업상 친구간에 터놓을 수 있는 깊이와 폭은 다를 수밖에 없다. 1998년 외무부와 상공부의 통상기능을 외교통상부로 묶어 놓을 때부터 이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당시 가까웠던 한 외교관은 “자신이 창녀같다”고 냉소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파티석상에서는 온갖 교태 섞인 미소를 보이다가 뒤돌아 서 갈 때는 정색하며 술값이 빼꼭히 적힌 긴 계산서를 내밀어야 할 신세라는 한탄이었다. 때문에 외교부내에서 통상분야는 아직도 제 자리를 못 찾고 떠도는 ‘섬’ 같은 존재이다. 이러한 모델의 원조는 미국이다. 냉전 종식이후 90년대초 미국이 채택한 이른바 '상업 외교(Commercial Diplomacy)'가 그 오리지널이다. 소련 붕괴로 팍스아메리카나를 연 미국의 새로운 '세계 경영 전략'이었다. 부연하면 미 기업이 외국 시장을 개방시켜 국부
1996년인가 싶다. 월드컵대회를 놓고 한국과 일본, 양국은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였다. 당시 우리나라 분위기는 월드컵을 유치하지 못하면 무슨 큰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과열된 분위기였다. 마치 월드컵 유치에 국운을 건 듯 했다. 신문 방송 등 언론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유치의 타당성을 앞다퉈 보도했고, 선정적이기까지 했다. 일본은 달랐다. 월드컵 유치를 둘러싼 사회 분위기가 우리보다 성숙했고, 유연했다. 월드컵 본선 진출을 한번도 하지 못한 한을 월드컵 유치로 풀겠다는 그들의 열망은 수차례 출전한 우리보다 뜨겁고, 간절했음에도 그들은 냉정했다. 일본의 보수언론인 요미우리신문의 사설이 단적인 사례다. 요미우리는 월드컵 유치를 놓고 과잉경쟁으로 치닫는 양국 관계를 우려하며, 일본이 월드컵 유치를 한국에 양보할 것을 주장했다. 지역매체인 도쿄신문도 비슷한 논지의 사설을 싣고, 양국의 우호 분위기 조성을 촉구했다. 한국의 월드컵 유치만을 주장한 한국 언론과 사뭇 달랐다. 당시 한국 언론
수출입은행의 차기 행장 인선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지난해 8월 이 은행 노조가 재정경제부와 청와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창립 30년 동안 한 번도 자행 출신 은행장을 가져보지 못했다"는 게 요지였다. 전문성을 갖춘 자행 출신 인사도 많은 만큼 이번에는 내부인사를 발탁해 달라는 요구였다. 이는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관료 출신이 다시 수장을 맡았다. 수출입은행은 설립목적만 보면 민간 금융회사라기보다 공공기관에 가깝다. 외환은행의 수출입 금융업무를 넘겨받아 76년 세워진 수출입은행은 '수출입과 해외투자 및 해외자원개발에 필요한 금융을 공여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대외경제협력을 촉진한다'는 게 법상 부과된 최우선과제다. 이 때문인지 은행장의 제청기관(현재 기획재정부)은 이른바 '낙하산 인사'를 당연시해왔고, 창립 이래 내부에서 승진한 경우는 단 1차례도 없었다. 정부가 수출입은행의 공적인 기능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다면 '낙하산'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새 정부는
"의사들이 권위적인 이유에 대해 아는가?" 얼마전 한 노 교수(의대)로부터 이같은 질문을 받았다. 의사들은 학교 다닐때 공부를 잘 했고, 좋은 대학을 나왔고, 사회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고, 돈도 많이 벌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그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다음과 같은 두가지 이유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우선 의사들은 일을 하면서 항상 지시를 하는 존재라는 점을 들었다. 환자들에게 항상 무엇을 하라, 하지말라며 지시하고 명령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권위적인 자세가 몸에 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사회에 나와서 맨밑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데 의사들은 환자라는 상대적 약자와 계속해서 만나면서 껍데기를 깰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의사들은 뭐랄지 모르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얘기였다. 두번째 이유는 더 재미있다. 의사들은 대부분 실제로 자신의 실력보다 훌륭한 의사를 생각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같은 생각을 하
이명박(MB) 대통령은 '하면 된다'의 사람이다. 그는 잡곡 살 돈도 없어 술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인 술지게미로 하루 두 끼 배를 채워야 했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낮에 일할 수 있는 야간상고나마 등록금이 든다며 그가 동지상고에 진학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는 등록금을 면제 받기 위해 3년내 주·야간 통틀어 1등을 고수해야 했다. 이태원에서 막일 할 땐 '대학 중퇴자'라도 되고 싶단 생각에 불면제 '안나뽕' 맞아가며 독학으로 고려대에 진학했다. 진학 후엔 새벽에 6번 시장 쓰레기를 모아 버리는 일을 하며 대학을 마쳤다. 시위 주동자로 구속된 전력 때문에 취업이 어렵자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썼고 청와대 민정 담당 비서관을 만나 담판을 벌였다. 현대건설에 입사한 뒤엔 5년만인 29세에 이사 직함을 달았고 35세에 사장, 46세에 회장이 됐다. 퇴사 후엔 정계로 진출해 의원으로, 서울시장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다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 대통령은 국정 운영 스타일
10년전쯤으로 기억된다. 속칭 '빨간 마후라'라고 불리는 음란 동영상이 인터넷을 타고 급속히 전파되면서 온나라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던 때가. 처음에 입소문을 타고 전파되던 이 동영상은 급기야 컴팩트디스크(CD)로 구워져서 손에서 손으로 빠르게 퍼졌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 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느려서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내려받는데 한계가 있었다. CD로 재유통된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이 동영상을 본 성인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여느 음란 동영상과 달리, 이 동영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10대'였던 탓이다. 몸에 걸친 것이라곤 목에 두른 빨간 마후라밖에 없는(그래서 이 동영상을 '빨간 마후라'라고 불렀다) 한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성행위를 하고 있었고, 상대남자 역시 한눈에 봐도 청소년임을 짐작케할 정도로 앳띤 얼굴이었다. '빨간 마후라'가 온나라로 번져갈 즈음,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의 추적끝에 잡힌 동영상 주인공들은 예상대로 '10대'였다. 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