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중앙대학교 박범훈 총장을 만났다. 얘기를 나누던 중 일본에서는 물리학 화학 생리학 등 기초 분야에서 노벨 수상자가 많이 나오는데 우리는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원인을 박 총장에게 물었다.
그의 진단은 명쾌했다. 일본에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센몬바카'(せんもんばか·專門馬鹿)다.
"일본에는 '센몬빠가'라는 말이 있어요. 한 번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앉아 있으면 전쟁이 나도, 나라가 망해도 자기 연구에만 몰두하는 그런 사람을 말합니다. 그 정도로 한 분야에 심층적으로 바보스럽게 몰두하고 연구를 하는 것이죠."
우리말로 '전문바보' 쯤으로 해석할 수 있는 '센몬바카'는 자연산(自然産)이다. '전문바보'는 사회환경과 국민의식, 교육 등의 합작품이다.
사회여건이 만들어졌을 때 '전문바보'는 밤이 밤인 줄 모르고, 낮이 낮인 줄 모르고 '바보'처럼 뛰며 자생(自生)한다. '전문바보'는 말이 없다. 실력과 실적으로 말할 뿐이다. 그래서 위기에 더 강하다.
'전문바보'는 양식(養殖)할 수가 없다. 인위적으로 만들래야 만들 수도 없고, 돈으로 살 수도 없을 뿐더러, 길들여지지도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전문바보'가 없을까. 왜 없겠는가. 지금도 연구실에서, 일터에서 코피 터지게 연구와 일에 골몰하는 '전문바보'가 있다.
다만 이들의 존재감이 없어 보이는 것은, 우직하게 연구에만 매달리거나,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열심히 하거나, 얼마든지 더 벌 수 있음에도 수입이 낮은 일에 열성을 쏟는 이들에게 우리가 '진짜 바보' 취급하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 사회는 지금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어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지만 '돈과 출세'가 대부분 가치에 앞서 있다. 인문과학과 기초과학은 경시되고, 인재는 법대로 몰리고, 수학천재가 멀쩡한 얼굴을 뜯어고치는 의사가 되는 후진국형 구조가 그렇다.
IT벤처기업 사장이 기술개발로 시장에서 승부를 내기보다, M&A나 엔터테인먼트 사업 진출 등으로 주가 올리는 데 열을 올리는 풍조도 마찬가지다. '돈과 출세'가 지금 이 사회 최고의 가치관이어서 그렇다. '전문바보'가 태어나기 힘든 풍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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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등 일반 조직에서도 조그마한 성과를 잘 포장하는 사람, 별것 아닌 능력을 부풀려 생색내는 사람, 능수능란하게 줄타기를 하는 사람이 조직 내 소식에는 귀를 닫고 연구와 일에 열중하는 사람보다 더 인정받고, 빨리 출세한다는 인식이 더 강해졌다. '전문바보'가 살기 어려운 풍토다.
세계가 금융위기에 빠져있다. 국제공조로 위기를 넘기고 있지만 또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몰라 두렵다. 일본도 내수와 수출 부진으로 위기를 맞고 있으나, 엔화가치의 상승에 힘입어 해외 금융기관을 매입하고 IMF 지원을 늘리는 등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실적과 실력으로 말하는, 그래서 위기에 더 강한 '센몬바카'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야구에서, 축구에서 일본을 이겼다고 좋아할 때가 아니다. 우리도 '전문바보'들이 자생할 수 있는 사회, 기초과학과 인문과학이 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남이 기침하면, 몸살을 앓고 쓰러지는 허약체질을 개선하고, 위기에 더욱 강한 사회와 국가를 만드는 첫 단추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