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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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96 건
46년 전 오늘 제 11호 태풍 '주디'가 남부지방을 강타했다. 이날 시민들을 대피시키기에 여념 없었던 8명의 헌병들은 갑작스러운 산사태로 꽃다운 목숨을 잃었다. 전판수·윤병옥 하사, 박기석·서안식·김영식 병장, 나상경·장경민 상병, 이남호 일병 등 헌병 8명은 1979년 8월 25일 폭우를 동반한 태풍 '주디'(Judy)가 남부지방을 강타했을 당시 마진터널에서 비상근무를 섰다. 1949년 개통한 진해 마진터널은 왕복 2차로로 갓길이 없다. 1985년 장복터널 개통 전까지 마산과 진해를 잇던 유일한 터널이었는데 태풍 주디가 강타했던 밤, 남부지방을 가로지르는 2번 국도가 침수되자 수많은 시민들이 마진터널로 모여들었다.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려는 시민들만 약 3000여명에 달했고, 차량 200여대가 몰리며 극심한 교통체증을 유발했다. 설상가상으로 통신도, 전기도 끊겼다. 이때 고(故) 전판수 하사 등 군인 8명은 터널을 오가며 도보통행자 안내와 교통정리에 나섰고, 터널이 붕괴될 조짐을
2년 전 오늘, 세계의 이목이 일본 후쿠시마 앞바다에 집중됐다. 2023년 8월 24일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 예정 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오후 1시부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1차 방류를 시작한다고 예고했다. 이에 일본과 인접한 대한민국과 중국 등이 강하게 반발했고, 한국에선 전국의 환경단체들이 동시 집회를 개최해 일본의 결정을 규탄하기도 했다. 오염수는 2011년 3월 12일 동일본 대지진 때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문에 생겨났다. 쓰나미 여파로 원전이 침수돼 냉각 시스템이 정지되며 온도 급상승에 따른 폭발이 발생했고, 이후 원자로에서 녹아내린 핵 연료와 물이 접촉하면서 오염수가 만들어졌다. 원전에서의 정상적 방류가 아닌 사고로 녹아내린 발전소에서 오염수를 처리해 바다로 내보내는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국제 사회의 반발에도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하며 첫 방류를 강행했다. ━ 매일 460톤씩 내보내
2003년 8월 23일 아동 성추행범으로 수감 중이던 존 지오건 전 신부가 교도소에서 피살당했다. 존 지오건 전 신부는 1991년 엉덩이를 만지는 등 수영장에서 10세 소년을 강제 성추행한 혐의로 2002년 2월 9~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이 사건은 지오건이 휘말린 100여개가 넘는 사건 중 단 하나에 불과했다. 지오건은 신부 생활을 하는 30년 동안 아동 130여명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1962년 사제 생활을 시작한 지오건은 보스턴 대교구에서 사제로 재직하며 이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오건은 한부모 가정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소년들을 범죄 대상으로 삼았다. 학교 생활이나 친구 관계에서 소외되거나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소년들이 범죄 대상이 되기도 했다. 취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아동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신뢰관계를 쌓은 뒤 종교 활동을 빙자해 범행을 저질렀던 것. 한 희생자는 지오건 신부가 아이스크림을 사주면서 차로 집에 태워다줬는데 이
1972년 8월 22일(이하 현지시간). 존 보이토위츠(John Wojtowicz)가 공범 두 명과 함께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체이스 맨해튼 은행을 털려다 인질극까지 벌이게 됐다. 14시간 동안 경찰·FBI와 대치한 끝에 이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이날 은행 업무가 끝나기 직전인 오후 2시55분쯤 보이토위츠(당시 27세)는 살바토레 나투릴레(당시 18세), 로버트 웨스틴버그(당시 20세)와 함께 산탄총과 38구경 권총, 소총 등을 들고 체이스 맨해튼 은행으로 향했다. 보이토위츠는 은행에 들어와 창구 직원에게 "이건 당신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This is an offer you can't refuse.)라는 쪽지를 건넸다. 영화 '대부'의 유명 대사 "난 그 녀석이 거절하지 못할 만한 제의를 할 거야"(I'm going to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이들은 영화 '대부'를 보고 은행 강도 범행을 계획했고, 여러 차
2020년 8월 21일(이하 현지시간). 살인 13건, 강간 13건 등 모든 범행을 인정한 미국 전직 경찰관 조셉 제임스 디앤젤로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970~8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를 두려움에 떨게 한 연쇄살인마 '골든 스테이트 킬러'가 법의 심판을 받는 순간이었다. ━낮엔 경찰, 밤엔 살인마…끔찍한 '이중생활'━디앤젤로의 범행은 1974년부터 1986년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이뤄졌다. 절도 및 강도 120여 건과 더불어 최소 13명을 살해하고 50명 이상을 강간했을 것이라 추정됐다. 디앤젤로는 경찰과 범죄자로 이중생활을 한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 1973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경찰관으로 일한 그는 살인, 강간 등 중범죄를 반복해 저질렀다. 디앤젤로는 1974년부터 1년여 동안 캘리포니아 북부 센트럴밸리에서 절도 및 강도 120건과 살인 1건을 저질렀다. 1975년 9월 디앤젤로는 앞서 이미 여러 차례 침입했던 세콰이어대 클라우드 스넬링 교수 집에 다시 침입해 그의
"미국 역사상 최악의 직장 내 총기 난사 사건" 미국 오클라호마 에드먼드 지역에서 1986년 8월 20일(현지시간) 발생한 우체국 총격 사건에 대한 외신의 한 줄 평이다. 당시 에드먼드 우체국에서 근무하던 44세 남성 패트릭 셰릴(Patrick Sherrill)은 본인의 직장에서 총기를 난사, 1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직장 동료 14명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셰릴이 현장에서 사망함에 따라 정확한 범행 동기는 알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경찰은 총격 사건에서 생존한 우체국 직원의 진술 등을 토대로, 셰릴이 범행 전날 상사로부터 크게 질책받았던 게 범죄의 도화선이 됐던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탄 든 권총 3정 준비해 출근…건물 문 잠근 뒤 총격━ 셰릴이 어떤 잘못 때문에 상사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다. 일부 조사 보고서는 셰릴을 문제가 많았던 직원으로 표현했지만, 또 다른 보고서에선 셰릴이 상사로부터 억지 비난을 받던 시간제 노동자였다고 적
2013년 8월 19일(이하 현지시간). 절단 장애인 육상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무대에 올라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장애인 최초 올림픽 출전…남아공 육상 스타의 추락━양쪽 종아리뼈가 없는 상태로 태어난 피스토리우스는 생후 11개월 때 양쪽 다리 무릎 아래를 절단했으나, 어린 나이에 달리기 재능을 발견해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자 육상 국가대표 선수로 뛰게 됐다. 양 다리에 날(블레이드) 모양 의족을 착용한 채 질주해 '블레이드 러너'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던 피스토리우스는 2004 아테네 패럴림픽 T44(절단 및 기타 장애) 200m 금메달,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 T44 육상 100m·200m·400m 3관왕에 오르며 남아공 육상 스타가 됐다. 장애인 선수 최초로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 은메달을 획득하는 기록을 세우는가 하면, 절단 장애인 육상선수 최초로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육상 400m에 출전해 비장애인 선수
49년 전 오늘 1976년 8월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안에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벌어졌다. 북한군이 저지른 최악의 도발 중 하나로 평가된다. 북한군이 유엔(UN)군 초소 근처에서 미루나루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유엔군사령부 경비병들을 공격해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하고 한국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 미군 사병 4명 등 총 9명에게 부상을 입힌 사건이다. 이 일로 공동경비구역이 남과 북으로 갈리게 됐다. 원래는 군사정전위원회 관계자들이 구역 안에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지만 이 사건 이후 충돌 방지를 위해 군사분계선을 표시하게 됐다. 이후 개인적으로 북한군을 만나거나 말을 거는 것도 금지됐다. ━"더 치면 죽여 버린다" 협박하더니 도끼 휘두른 북한군━1976년 8월18일 당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엔 유엔군과 북한군 초소가 서로 섞여 있었다. 북한군이 유엔군 조율 없이 남측에 5개 초소를 만든 탓에 유엔군 초소가 북한군 초소에 둘러싸인 모습이었다. 유엔군은
1999년 8월. 지구촌은 '새 천년' 밀레니엄을 준비하며 들뜬 분위기였다. 프랑스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가 1999년 7월 지구가 종말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해프닝으로 끝나면서 분위기는 더 고조됐다. 그러던 8월17일. 현대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자연재해 중 하나로 꼽히는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튀르키예 서부 이즈미트에서 발생한 지진이다. ━7.8 지진, 1만8000명 사망...피해 규모 34조5000억원━1999년 8월17일 새벽 3시. 튀르키예 서부 이즈미트에서 7.8의 지진이 발생했다. 45초간 진행된 지진의 희생자 규모는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로 막대했다. 매몰 현장에서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포착돼 안타까움을 샀다. 아이는 목숨을 구했지만 엄마는 사망한 상태였다. 결국 이 사고로 1만8000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물적 피해는 당시 250억달러(한화 약 34조5000억원) 규모로 추정됐다. 가늠하기 힘든 피해 규모다. 세계은행은 이 지진으로
1977년 8월 16일. '로큰롤의 황제'라고 불리던 미국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사망했다. 향년 42세. ━공식 사인은 심장마비, 실제로는 변비?…7개월간 8000여개 약 처방받아━엘비스 프레슬리는 1977년 8월 16일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의 저택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공식 사인이 심장 마비였지만 엘비스의 주치의였던 조지 니코플러스 박사는 앨비스의 진짜 사인이 '만성변비'라고 주장했다. 부검 당시 몸 안에 4개월 묵은 숙변이 있었으며 대변량만 20kg이 넘게 나왔다고 한다. 그는 변비가 주요 사인으로 고려될 정도로 생전 건강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약물 의존도가 높았다. 2년 동안 수면제만 1만9000회를 처방받을 정도로 수면제를 달고 살았다. 이는 하루 20번, 매달 600번이 이상 복용할 수 있는 수치다. 수면제 외에도 마지막 7개월 동안 최소 8805개의 알약, 주사제를 처방받았다. 혈액에서는 아편
51년 전 오늘 1974년 8월15일,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이다. 당시 지하철 1호선은 1970년대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근대화를 상징하는 첨단 교통수단이었다. 수도 서울의 명물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서울역부터 청량리역까지 9개역을 5분 간격으로 운행했다. 이후 1호선은 서울을 넘어 경기 연천과 인천, 충남 천안·아산까지 연결됐고 없어서는 안 될 도시철도로 자리잡았다. ━서울 인구, 전차만으론 역부족…"역사의 죄인 되지 않겠다" 지하철 건설 본격화 ━서울 지하철 건설이 처음 논의된 건 일제 강점기 때다. 1920년대 서울 인구가 100만명을 넘어서자 전차와 버스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1930년대 일제는 본격적인 지하철 건설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일제가 철근·시멘트 등 건축자재를 전부 전쟁용으로 사용해 중단됐다. 그러다가 광복을 맞았고 한동안 수면 아래 있던 지하철 건설 계획은 1960년대 들어 본격적인 경제성장을 이루
2003년 8월 14일. 남편에게 살해당한 뒤 간첩이란 누명을 썼던 수지김(본명 김옥분)씨 유족이 정부와 살인범 윤태식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로써 유족은 사건 발생 16년 만에 조금이나마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었다. 당시 정부는 윤태식이 살인범이란 걸 알고도 피해자 김씨를 간첩으로 몰았다. 윤태식은 정부 보호를 받으며 벤처 사업가로 변신해 아침 방송에도 출연했다. 정부와 윤태식 공작에 김씨는 간첩으로 둔갑했고, 십여년이 흐른 뒤에야 모든 진실이 밝혀졌다. ━아내 목 졸라 살해…"제 아내가 북한 간첩" 주장━1952년생 김씨는 가족 생계를 위해 버스 안내원, 공장 직원, 유흥 접객원 등으로 일했다. 이 과정에서 '수지 김'이라는 가명을 썼다. 그는 홍콩 남자와 결혼하면서 홍콩으로 이주했으나 곧 이혼했다. 이후 국내 기업의 홍콩 주재원이었던 윤태식을 만났다. 김씨와 윤태식은 1986년 결혼했다. 그러나 윤태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주먹을 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