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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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06 건
"배우답게 마지막까지 연기를 하다가 무대에서 쓰러지고 싶다. " 2017년 4월9일 아침 10시58분. 배우 김영애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66세. 고인의 사인은 췌장암에 따른 합병증이다. 고인은 2012년 황달로 병원을 찾았다가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9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다행히 건강이 호전됐다. 완치는 아니었지만, 그는 수술과 치료를 병행하며 드라마 '닥터스', '킬미 힐미', 영화 '변호인', '카트' 등에 출연했다. 2014년 '변호인'으로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영화제 여우조연상도 받았다. 2016년 8월 주말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시작한 고인은 두 달 만에 암 재발 진단을 받았다. 김영애는 제작사와 작가의 만류에도 "드라마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출연을 강행했다. 연말부터는 아예 입원한 상태에서 외출증을 끊어가며 촬영장을 오갔다. 김영애는 2017년 초까지 50회분 촬영을 마쳤다. 촬영일에는 진통제조차 맞지 않았다. 정신이 맑지 않아 정확한 연기를 하는 게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직접 영정사진과 수의로 입을 한복을 고르며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10년 전인 2016년 4월 8일 '서울 관악구 여중생 살인 사건' 범인 김모씨(당시 39세)가 2심 재판에서 징역 40년을 선고받았다. 앞서 김씨는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는데, 항소심 재판부가 10년 가중된 형량을 선고한 것이다. 강도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살인의 고의는 없었던 것 같다"며 강도치사죄로 형량을 정했지만, 2심 재판부는 원심과 달리 김씨가 살해 의도를 갖고 범행한 것으로 봤다. 김씨 형량은 대법원까지 간 법정 다툼 끝에 징역 40년으로 확정됐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을 받아들여 "피고인에게 살인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해 강도살인 등 혐의를 유죄로 본 항소심 결과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돈 받고 열심히 안 해"…조건만남 여중생 살해━김씨에게 살해당한 여중생은 14세 A양이었다. 가출 청소년이었던 A양은 조건만남 성매매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2015년 3월 26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모텔에 A양과 함께 들어가 조건만남 성매매에 나섰다.
2014년 4월7일. 선임 병사들이 후임 병사를 집단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역대 최악의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육군 제28보병사단 포병여단 977포병대대 의무대 소속 윤승주 일병은 한 달이 넘도록 이어진 집단 구타로 인해 향년 2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부검 당시 윤 일병은 종아리, 허벅지의 근육이 터지고 갈비뼈 24개 중 14개가 손상, 장기들은 피가 고이거나 터진 끔찍한 상태였다. ━충격적인 35일간의 가혹행위…쓰러졌는데도 "꾀병 부리지 마" 발로 차━ 윤 일병은 자대 생활을 시작한 그해 3월3일부터 대답이 느리다는 이유로 폭행당했다. 평소 밝은 성격으로 대학교 과대까지 맡았던 윤 일병은 선임들의 윽박지름과 폭행에 말이 어눌해지고 표정이 어두워져 갔다. 그는 매일 같이 주먹 또는 마대자루로 맞아야 했다. 1시간이 넘는 인격모독이 담긴 폭언과 욕설은 기본이었다. 가해자들은 다친 부위를 더 여러 차례 폭행했다. 선임인 하사는 이를 방관하고 오히려 "폭력을 써서라도 군기를 잡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9년 4월6일. 법원은 살인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 항소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이 남성은 이혼 소송 중 별거 중인 아내를 찾아가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특히 그는 딸 눈앞에서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고 엄마를 잃은 딸은 아버지에 대해 엄벌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른바 '구월동 아내 살인' 사건이다. ━생일인 중학생 딸 앞에서 아내 살해━사건은 2018년 7월13일 인천 남동구 구월동 한 주택가에서 벌어졌다. 남편 A씨(당시 48세)는 미리 준비한 흉기로 아내 B씨(사망 당시 40세)를 여러 차례 찔러 살해했다. B씨는 신고받고 출동한 구급대원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과다출혈로 끝내 사망했다. 사건 발생 약 1년 전 B씨는 A씨에게 폭행당해 세 딸과 집을 나갔고 상습 가정폭력을 이유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상태였다. A씨는 아내가 사는 집을 알아낸 뒤 살해 기회를 노리던 중 우연히 딸 C양을 발견하고 인근에서 기다렸다가 B씨가 밖으로 나온 순간 범행을 저질렀다.
2005년 4월 5일. 식목일인 이날 전국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특히 강원도 양양 산불은 강풍을 타고 확산해 낙산사 대웅전을 붕괴시켰다. 심지어 보물 제479호로 지정됐던 낙산사 동종마저 고열에 녹아내렸다. ━순간 최대 풍속 32m/s…소방차마저 불탔다━당시 낙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에 임시 설치된 강원도청 종합상황실은 "낙산사 주변 송림으로 번진 불이 서쪽 일주문을 태운 뒤 대웅전으로 옮겨붙었다"며 "다른 건물들도 위험한 상태"라고 전했다. 스님들과 관광객들은 긴급 대피했고 소방 당국은 진화에 나섰지만 순간 최대 풍속 32m/s에 달하는 강풍으로 인해 불길을 잡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일부 소방차가 화염에 휩싸일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관동팔경 하나인 낙산사는 서기 671년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지불인 건칠관세음보살좌상(보물 1362호)과 신중탱화, 후불탱화, 보물 479호인 낙산사 동종 등 문화유산이 상당했다. 그런데 이 화재로 사적 제495호 낙산사 주요 전각 대부분이 소실됐다.
2021년 4월 4일 뉴욕의 명물로 사랑받던 고양이 '폰즈'가 한순간의 잔인한 폭력으로 생을 마감했다. ━산책길에 마주한 비극…12세 소년의 잔혹한 폭행━2018년 10월에 태어나 당시 3살이 된 고양이 폰즈는 4만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한 SNS 스타였다. 주인 차난 악소르난 씨는 폰즈와 함께 또 다른 반려묘 '김치', 반려견 '두부', 앵무새 '망고'를 키우며 일상을 공유했다. 특히 폰즈는 고양이임에도 불구하고 목줄을 매고 다른 반려동물들과 산책하는 이색적인 모습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사건 발생 당일 평소처럼 악소르난 씨와 함께 뉴욕 브루클린 그린포인트 인근 맥캐런 공원에서 산책을 즐기던 폰즈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비극은 찰나에 찾아왔다. 인근에 있던 히스패닉계 12세 소년이 폰즈의 목줄에 발이 걸려 넘어진 것이다. 가벼운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분노를 참지 못한 소년은 돌발 행동을 보였다. 소년은 폰즈의 목줄을 거칠게 잡아채 공중으로 높이 들어 올린 뒤 콘크리트 바닥을 향해 내동댕이쳤다.
2016년 4월3일. 경북 청송 한 마을에서 농약이 든 소주를 마셔 주민 1명이 숨지고 1명이 치료를 받는 가운데 또 다른 주민이 음독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남성은 마을회관 냉장고에 보관하던 소주에 농약을 탄 혐의로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남성 혈액에선 피해자들과 같은 성분의 고독성 농약이 검출됐다. 경찰은 시신을 부검하고 남성 주거지와 축사 등을 압수수색한 끝에 남성을 유력한 피의자로 특정했지만 남성이 사망하면서 수사를 더 진행할 수 없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 마을회관서 소주 마신 2명 사상…고독성 농약 '메소밀' 검출━사건이 발생한 것은 2016년 3월9일 오후 9시40분쯤이다. 청송군 현동면 눌인3리 마을회관에서 박모씨(당시 63세)와 허모(68)씨가 소주를 나눠 마시다 쓰러졌다. 박씨는 숨졌고, 허씨는 중태에 빠져 병원 치료를 받다가 일주일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이들이 마신 소주와 소주잔에선 고독성 농약인 메소밀이 검출됐다.
2008년 4월2일. 혼성그룹 '거북이' 리더이자 래퍼, 프로듀서였던 터틀맨(본명 임성훈)이 서울 성동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38세. 그의 죽음은 하루 전 '만우절 장난'으로 여겨질 정도로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이었다. 지병을 앓으면서도 무대와 음악을 향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많은 이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 건강 포기한 터틀맨━임성훈이 심장 질환으로 병원 신세를 진 건 사망 3년 전이다. 2005년 4월 3집 '빙고' 활동 중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수술받았다. 당시 담당 의사는 장기 입원하고 30㎏을 감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임성훈은 입원 중 체중 감량에 들어갔지만 체중이 줄자 특유의 굵고 개성 있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같은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재활을 포기한 채 병원을 나왔다. 그렇게 생명 연장 대신 음악을 선택하며 병상에서 완성한 곡이 거북이에게 첫 지상파 1위를 안겨준 히트곡 '비행기'였다.
1988년 4월 1일 오후 5시 50분쯤. 서울시 성동구 광장동에서 강동구 천호동 방면으로 가던 시내버스가 천호대교 남단 200m 지점에서 난간을 들이받고 한강으로 추락했다. 당시 버스는 승객 54명을 태우고 있었는데 이중 19명이 사망하고 35명이 부상을 입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다리 난간 8개 부수고 강물로 떨어져…승객 대다수가 학생━이날 수도교통(현 송파상운) 572번 시내버스는 천호동 방면으로 운행하던 중 앞서 달리던 차를 추월해 1차선을 시속 약 100km로 달렸다. 이때 갑자기 왼쪽 앞바퀴가 터지면서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다가 중앙선을 넘었다. 운전기사가 핸들을 놓치면서 제동하지 못했고 다리 난간 8개를 부수고 약 20m 아래 강물로 떨어졌다. 버스가 수심 2~3m의 강바닥에 곤두박질치면서 차체 앞 부분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고 이때 승객 여러 명이 사망했다. 또 이 충격으로 일부는 튕겨져 나갔고 남은 승객들 다수는 의식을 잃은 채로 버스 안에서 뒤엉켜 익사했다.
1970년 3월 31일. 승객 등 129명을 태운 일본항공(JAL) 여객기가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이날 오전 7시33분쯤 도쿄 하네다 공항을 출발해 후쿠오카 이타즈케 공항으로 향하던 일본항공(JAL) 351편, 이른바 '요도호'가 일본도와 권총, 폭탄 등의 무기를 가진 괴한 9명에 의해 납치됐다. ━쿠바 대신 북한행 택한 납치범들…"연료 없다" 기지 발휘한 기장━납치범들은 일본 공산주의 동맹 '적군파'(赤軍派) 조직원이었다. 적군파는 1970년대 활동한 일본의 좌파 테러단체로, 폭력제일주의를 주장했다. 납치범들은 기장을 위협해 공산주의 국가인 쿠바의 아바나로 가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 국내선이었던 비행기로는 중·단거리 운행만 가능했고, 쿠바까지 갈 수 있는 연료도 없었다. 이를 알게 된 납치범들은 "북한 평양으로 가자"며 목적지를 바꿨다. 북한에서 일본 공산혁명을 위한 군사훈련을 하고 이곳을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기장은 "이 비행기는 국내선이라 북한까지 갈 연료가 없다"고 둘러댔다.
'탕탕탕탕탕탕' 1981년 3월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 C. 힐튼 호텔에서 오찬을 마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돌아가기 위해 리무진에 올라타려던 순간, 여섯 번째 총알이 그의 폐를 관통했다. 암살을 시도한 존 힝클리 주니어(당시 26세)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그는 "배우 조디 포스터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범행했다"고 주장했으며 정신이상 판정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1. 7초에 총알 6발…대통령 덮친 총격━사건 당일 오후 2시27분쯤 레이건 대통령은 호텔에서 나와 리무진으로 향했다. 대통령 전용 출입구와 주차된 리무진까지는 불과 9m 짧은 거리였기에 대통령과 경호원들은 방탄복을 입지 않고 이동했다. 경찰은 사전 검문을 통해 안전이 확인된 이들만 접근을 허용했다. 하지만 인파가 몰리면서 검문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 들어왔다. 힝클리도 실탄 6발이 장전된 권총을 숨긴 채 군중 속에 있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호텔 밖으로 나오자 한 기자는 질문을 던지려 했다. 기자가 "Mr.
2017년 3월29일. 인천 연수구 한 동네에서 10대 청소년 2명이 8살 초등학생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 발생했다. 주범 김양(당시 17세)은 한때 의사를 꿈꿨을 만큼 머리가 좋았다. 어려서부터 인체해부학에 관심이 많았고, 중학교에서는 줄곧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모범생에 가까웠던 김양이 어쩌다 극악무도한 살인마가 됐을까. ━김 "사냥하러 나간다", 박 "전리품을 내게줘"━ 김양이 괴물로 변한 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다. 공부에 흥미를 잃고 우울증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결국 고교를 자퇴한 그는 집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더욱 사회와 단절됐다. 인터넷과 SNS(소셜미디어)에서 기괴한 대화를 즐겼고, 인육을 먹는 내용이 나오는 드라마에 몰입해 갔다. 의사를 꿈꾸던 김양 내면의 괴물은 이렇게 성장했다. 공범 박양(당시 19세)과도 2017년 1월 SNS를 통해 만났다. 김양과 박양은 사건 전날부터 당일 새벽까지 4차례에 걸쳐 2시간10분 동안 통화를 했다. 사건 당일 김양은 모친 옷과 선글라스로 변장한 셀카와 함께 "사냥하러 나간다"는 메시지를 박양에게 전송했으며, 박양은 "전리품(시신 일부)을 내게 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