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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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96 건
2014년 4월10일. 경남 창녕 한 야산에서 10대 여학생 시신 1구가 발견됐다. 시신은 시멘트로 채워진 구덩이에 담겨 있었고 전신은 불에 그슬려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숨진 여고생은 한 달 전쯤 가출한 윤모양(당시 15세)으로 확인됐다. 그는 함께 다니던 가출팸에 의해 살해당했는데 가출팸 8명 중 4명이 윤양과 같은 만 14~15세 미성년자였다. 성인인 가해자 4명도 만 24~25세로 젊은 나이였다. 이 사건은 1988년 일본에서 발생했던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과 닮아 있었고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어른들보다 악랄했던 범행 수법━사건은 한 달 전인 2014년 3월1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해 한 고등학교로 전학을 온 윤양은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면서 가해자 A씨와 어울리게 됐다. 윤양은 가출한 A씨를 따라 집까지 나왔고 이후 부산 한 여관에서 A씨 등 가출팸 8명과 함께 지냈다. A씨와 가출팸은 윤양을 모텔에 감금하고 성매매를 강요했다. 윤양은 하루 평균 3
2019년 4월19일. 채팅 앱(어플리케이션)에 마약을 판매한다는 글을 올린 중부지방해양경찰청 서해5도 특별경비단 소속 의경 김모씨가 경찰에 구속됐다. 김씨는 외박을 앞두고 휴대전화 채팅 앱에 필로폰을 판매한다는 내용의 광고 글을 올린 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김씨가 팔려던 것은 '마약'이 아닌 '백반'이었다. 백반은 필로폰과 모양·색깔이 유사하다. 육안으로는 필로폰과 백반을 구분하기 어렵다. 김씨가 체포된 한달 뒤 백반을 마약으로 속여 팔거나 진짜 마약을 판 6명도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로부터 진짜·가짜 마약을 산 5명도 적발됐다. 김씨 수사 과정에서 진짜 마약 공급책들을 잇따라 검거하게 된 것이다. ━'백반'을 '마약'으로 속이고 판매하려다 '덜미'━마약류 특별 단속 중이던 경찰은 김씨가 앱에 올린 판매 글을 토대로 "필로폰 50만원 어치를 구입하겠다"며 위장거래를 시도, 이튿날 외박 중이던 김씨를 붙잡았다. 김씨는 검거 당시 마약으로 의심되는 물건을 지니고 있었으나 진짜 마약은
1970년 4월 8일 오전 6시30분쯤 마른 하늘에 날 벼락이라도 떨어진듯 굉음이 들려왔다. 서울시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자락에 위치한 '와우시민아파트' 15동이 붕괴되는 소리였다. 아파트가 준공된지 4개월 만에 발생한 붕괴 사고였다. 이 사고로 입주민 33명과 인근 판자촌 주민 1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을 입었다. 대형 건물이 많지 않았던 당시로선 큰 피해가 발생한 사고였다. 와우아파트는 1960년대 말 서울시가 추진한 무허가 건축물 정비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시민아파트'였다. 수도권으로 급속히 유입된 인구로 인해 서울 외곽에는 무허가 판자촌이 급증했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정비하기 위해 대규모 철거와 시민아파트 건설을 병행했다. '불도저'란 별명으로 불린 김현옥 서울시장은 이 같은 지시에 따라 산자락에 위치한 국유지를 시민아파트로 탈바꿈 시켰다. 문제는 짧은 공사 기간과 비용이었다. 단기간에 대규모 건설 작업이 이뤄지는 가운데 비용 절감을 위해 시공 과정 전반에
2014년 4월 7일. 대한민국 육군 제28보병사단 포병여단 977포병대대 의무대 소속 윤승주 일병이 선임 병사들의 집단 구타로 사망했다. 윤승주 일병(당시 21세)은 사건 전날인 2014년 4월 6일 의무대 생활관에서 만두 등 냉동 식품을 나눠 먹다가 선임 병사 4명에게 가슴 등을 수십 차례 구타당했다. 계속된 폭행에 쓰러진 윤 일병은 바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다음날인 7일 사망했다. 이 사건은 피해자인 윤승주 일병의 이름을 따 '윤 일병 사건' '윤 일병 사망 사건'이라 불린다. ━"가래침 핥아먹어"…성기에 파스 발라 고문도━처음 군 당국은 "음식물이 기도에 막혀 기도 폐색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건 약 3개월 만인 그해 8월 선임병들의 구타와 고문에 의한 살인 정황이 드러났다. 군 수사 기록에 따르면 윤 일병은 주범 이 모 병장(당시 25세)을 포함해 하 모 병장(당시 22세), 이 모 상병(이하 당시 20세), 지 모 상병 등 선임병 4명에게 폭행 당해 숨졌다.
2019년 4월 6일. 이혼 소송으로 별거 중인 아내를 찾아가 딸 앞에서 잔인하게 살해한 남성 A씨(당시 48세)가 2심에서도 중형을 선고받았다. 평소 가정폭력을 일삼았던 A씨는 아내가 딸들을 데리고 집에서 나간 뒤 이혼과 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하자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A씨는 아내를 찾아내 이웃들과 딸 앞에서 흉기로 마구 찔러 살해했다. 그날은 딸의 생일이었다. ━생일 맞은 딸 앞에서 아내 살해…도주했다 자수━A씨는 결혼생활 내내 아내와 딸들에게 상습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참다못한 아내는 2017년 세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간 뒤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아내가 재산분할 소송도 제기하자 살해를 결심했다. 하지만 아내가 사는 집을 알지 못했던 그는 2018년 7월 13일 하교하는 딸을 뒤따라갔다. 결국 A씨는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있는 아내의 집을 찾아냈고, 근처에서 아내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당시 A씨는 저녁에 집에 있던 아내가 밖으로 나오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리채
2021년 4월 5일. 한 20대 청년 신상이 전 국민에게 공개됐다. 신상 공개 결정은 살인 혐의로 구속된 지 하루 만에 나온 것으로 잔혹한 흉악범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조치였다. 이 남성은 60대 여성과 그의 20대 딸 2명을 잇달아 살해한 이른바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 가해자 김태현이다. ━딱 세 번 만났을 뿐인데…연락 피하자 스토킹 ━김태현은 피해자인 세 모녀 중에서 큰딸 A씨를 온라인 게임으로 만나 2020년 11월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듬해 1월 초에는 서울 강북구 한 PC방에서 실제 만남을 갖고 같이 게임을 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한 차례 더 만났고 같은 달 23일에는 다른 지인 2명까지 4명이 저녁 식사를 했다. 이때가 이들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이 자리에서 작은 마찰이 생긴 것이다. 당시 김태현과 다른 이들 간 말다툼이 벌어졌다. 자리에 있던 일행을 비롯해 A씨 역시 김태현 연락을 차단했다. 평소 김태현이 힘들다고 푸념할 때면 A씨는 따뜻하게 위로해 줬다고
2023년 4월 4일. 원로 가수 현미(본명 김명선)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85세. 이날 오전 9시37분쯤. 현미는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쓰러져 있는 현미를 발견한 팬클럽 회장 김모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이후 현미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건강했던 현미는 김씨가 잠깐 세탁소 심부름을 다녀오는 5분여 사이 부엌에서 쓰러진 후 세상을 떠났다. ━북에 남겨둔 두 여동생 향한 그리움… '이산가족' 아픔 절절━1938년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태어난 현미는 유년 시절을 평양에서 보냈다. 일찍이 노래와 춤에 재능을 보인 현미는 평양보통학교 재학시절 학생 대표로 김일성에게 헌화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8남매 중 셋째였던 현미는 6.25 전쟁 발발 이후 1951년 1·4 후퇴 당시 부모님, 다섯 남매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 바람에 피난 직전 할머니 집에 맡겨졌던 두 여동생과는 헤어지게 됐다. 현미는
2008년 4월3일. 초병살해, 군용물강도살인, 초병상해, 군용물강도상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영국(36)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20세 두 군인을 차로 친 뒤 흉기로 찔러 그중 한명을 사망케 한 조씨는 다량의 군 무기를 훔쳐 달아났다. 조씨는 살인과 더불어 테러를 저지를 수 있을 정도의 무기 탈취를 저지르고 수개월 전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것이 밝혀졌음에도 이후 "살해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재판부의 판결에 따라 15년 감형을 받았다. ━실탄 하나만 사라져도 부대 발칵 뒤집히는데…해병대 총기 탈취 벌어져━ 사건은 사형 선고 4개월 전인 2007년 12월6일 벌어졌다. 이날 오후 5시30분쯤, 최전방 지역인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황산도 초소에서는 전역을 2개월 앞둔 이 모 병장과 입대 7개월 차였던 박 모 일병이 경계 근무 후 부대로 복귀 중에 차량에 치였다. 두 군인을 친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앞면에는 '캥거루 범퍼'라는 범퍼 보호대가 달려 있었다. 범퍼 보호대를 한
하루에만 '전국 35건'의 산불 발생. 2023년 4월 2일 전국에 35건의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건조한 날씨 탓에 이튿날까지 전국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했고 서울과 충남 홍성, 당진을 비롯해 전남 함평, 순천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다. 피해 면적은 서울 여의도(290ha)의 12.8배 규모인 약 3700ha(헥타르, 1119만2500평). 최근 역대급 규모인 4만ha를 태운 경남 '의성·안동 산불'이 특정 지역에 집중된 것과 달리, 당시엔 전국이 몸살을 앓았다. 대한민국 서부를 강타한 이 산불은 뼈아픈 기록을 남겼다. 산림청이 1986년 산불 관측을 시작한 이래로 100ha(약 30만평)가 넘는 규모의 산불이 전국에서 5건 이상 동시 발생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큰 산불이 전국에서 발생하다보니 대응하기도 더 까다로웠다. 홍성과 함평 등에 산불 대응 3단계가 동시에 발령됐다. 4일 내린 비로 산불이 모두 꺼졌는데, 전국 10여 곳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다. 피해가
2012년 4월 1일 밤 10시 32분쯤. 경기 수원시 팔달구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귀가하던 여성 A씨(당시 28세)를 조선족 오원춘(당시 42세)이 막아섰다. 오원춘은 A씨를 집으로 끌고 가 성폭행하려 했고, A씨는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112에 전화해 범행 장소를 알렸다. 그러나 경찰은 위급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전화를 먼저 끊었고, A씨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범행 다음 날 붙잡힌 오원춘이 "신고 전화가 끊긴 뒤에도 A씨는 6시간 동안 살아있었다"고 진술하면서 경찰의 부실 대응 논란이 일었다. ━납치 18분 만에 신고…경찰 "부부싸움 같은데"━휴대전화 부품 공장에서 일하던 A씨는 범행 당일 퇴근하고 집에 가던 길이었다. 일요일이라 마을버스가 일찍 끊긴 탓에 집까지 걸어가야 했다. 오원춘은 자신의 집 앞을 지나던 A씨를 발견하고 "돈을 줄 테니 성관계하자"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하자 집으로 끌고 갔다. A씨는 납치 18분 만에 경기지방경찰청 112신고센터에 구조를 요청했다
8년 전인 2017년 3월 31일 밤 11시20분쯤(한국시간)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 바다를 지나던 화물선 '스텔라 데이지'(Stella Daisy) 호가 한국 선사(주식회사 폴라리스쉬핑)에 긴급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에는 "긴급 상황, 본선 2번 포트 물이 샌다, 포트 쪽으로 기울고 있다" 등 내용이 담겼다. 선사 측은 이를 정부에 보고했고, 외교부는 다음 날인 4월 1일에 "한국인 8명이 탑승한 화물선이 남대서양 해역에서 연락 두절됐다"고 발표했다. 스텔라 데이지 호는 길이 311.89m, 선폭 58m, 적재중량 26만6141t 규모의 초대형 광석운반선(Very Large Ore Carrier)이다. 사고 당시 배에는 한국인 선원 8명과 필리핀 선원 16명이 탑승해 있었다. 외교부는 주우루과이대사관을 통해 사실관계 확인에 나서면서 선원 구조 작업을 위해 우루과이 당국에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우루과이와 브라질 등 국가가 인원과 장비를 보내 수색 작업에 나섰다. 수색
"조디 포스터를 감동시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1981년 3월 30일(현지시간). 26세 청년 존 힝클리 주니어가 배우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받기 위해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오후 2시25분쯤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 D.C. 워싱턴 힐튼 호텔에서 오찬을 마친 뒤 리무진으로 향했다. 호텔에는 대통령 전용 출입구가 있었고, 이곳에서 주차된 리무진까지는 9m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다. 짧은 거리였기에 레이건 대통령도, 미국 비밀경호국 요원들도 방탄복을 따로 입지 않은 채 이동했다. 앞서 경찰은 주변 검문 검색을 통해 안전이 확인된 이들만 접근하도록 했으나, 대통령을 보기 위한 인파가 몰리면서 일부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이들이 뒤섞였다. 그 중엔 암살미수범인 존 힝클리 주니어(당시 26세)도 있었다. 출구에 레이건 대통령이 등장하자 기다리고 있던 AP통신 마이크 푸첼 기자는 대통령을 불러 질문을 던지려 했다. 푸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