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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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오늘(3월 3일) 새벽. 3000억원대 재력가 송모씨(사망당시 67세)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직 서울시의원이 '청부살인'을 요청해 송모씨가 사망한 사건이다. 겉으로는 정의와 도덕성을 내세우고 뒤로는 검은돈의 단맛에 빠졌던 정치인의 이중행태를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미궁에 빠질뻔한 피살 전말━범행 현장은 송씨가 소유한 서울 내발산동의 한 S빌딩. 송모씨의 시신은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잔혹하게 훼손 돼 있었다. 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100m(미터)도 안되는 번화가에서 벌어진 일이다. 사건이 벌어진 저녁까지 송씨가 연락이 닿지 않자 불안해진 아내는 건물 경비원과 함께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그들은 피범벅이 된 채 쓰러진 송씨를 발견했다. 곧바로 경찰이 출동 했지만 이상할 만큼 범행 현장에서 건질 만한 증거가 없었다. 범행에 사용된 둔기 조차 찾을 수 없었고, 출입문에도 강제 침입 흔적이 없었다. 용의자의 흔적이
"우리 가족은 끝났다." 9년 전인 2016년 3월 2일. 대구 서구에 있는 한 주택에서 모녀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살인 용의자는 남편이자 아버지인 박모씨(당시 46세)였다. 평범했던 가장이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범행 후 목숨 끊으려 시도…살아남자 다시 투신━사건 당일 새벽 박씨는 아내(40)와 딸(15)을 흉기로 살해했다. 이후 오전 11시20분쯤 강원 정선군 한 도로에 빌린 승용차를 세워두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약 4시간 뒤 현장을 지나가던 인근 공사장 인부들은 박씨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다. 숨이 끊어지지 않았던 박씨는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원주시 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러나 박씨는 응급실에서 치료받던 중 의료진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오후 8시30분쯤 병원 8층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려 숨졌다. 경찰이 조사를 위해 가족과 함께 사는 집으로 찾아가면서 단순 변사자로 처리될 예정이었던 박씨는 살인사건 용의자가 됐다. 거실에는
'비키니 데이' 모르고 들으면 '비키니 수영복을 입는 날'로 착각할 만한 단어다. 하지만 일본에선 미국의 수소 폭탄 실험으로 23명이 방사능에 피폭되는 비극적인 사고를 기억하는 날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내에서 원자·수소 폭탄 등 핵 반대와 반전 운동까지 확산된 의미 있는 날이기도 하다. 일본 도쿄에선 이를 기리는 박물관도 마련 돼 있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갈등이 격화되던 1954년 3월 1일. 태평양 한 가운데 마셜 제도 공화국의 '비키니 환초'에선 미국의 수소 폭탄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흔히 산호섬으로 불리는 환초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지형이다. 미국은 당시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바다 한 가운데, 사람도 없어 폭파 실험을 진행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 날도 폭파 실험이 진행됐다. 폭파 지점에서 160km(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던 일본의 참지잡이 선박 '제5후쿠류(the Fifth Lucky Dragon)호'까지 영향이 미쳤다. 배에는 23명의 선원이
2023년 2월28일 오후 5시 40분쯤. 인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30대 남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인천 일대에서 대규모 전세사기 범행으로 구속된 일명 '건축왕' 피해자였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최근 직장을 잃은 데다 전세사기 피해로 7000만원을 반환받지 못한 상황에서 대출 연장이 되지 않아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내용이 담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명 '빌라왕' '건축왕' 등의 명칭으로 소개된 전세 사기 일당의 만행으로 인해 A씨 외에 피해자 중 총 4명이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전세 사기 일당은 수백명의 피해자와 수백억원대의 피해 금액을 냈음에도 재판 중 감형받거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전세사기 당한 후 생활고…스스로 목숨 끊은 피해자만 4명━ 피해대책위에 따르면 A씨가 임차한 빌라는 2011년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 전세금을 변제받을 수 있는 기준은 6500만원으로, A씨는 7000만원에 전세금을 임차해 변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2015년 2월 27일. 오전 9시 30분께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의 단독주택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범인인 전씨(당시 75세)는 총기를 보관하던 파출소에서 사냥용 엽총을 반출해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자신의 친형(86)과 형수(84)를 총으로 쏴 살해했다.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구대 경찰관에게도 사격을 가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전씨는 3명을 죽인 뒤 자신도 총기로 쏴 생을 마감했다. ━70대 남성, 형 부부 등 3명 살해 후 자살━ 사건의 최초 신고자는 형 전씨부부의 며느리였다. 며느리는 신고 전화에서 "작은 아버지(범행을 저지른 전씨)가 부모님(형 부부)을 총으로 쐈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그는 집 2층에서 뛰어내려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는 이강석 경감(소장)과 이모 순경이 신고를 받고 약 4분여만에 도착했다. 이들은 방탄복·방검복도 입지 않고 권총없이 테이저건만 소지한 상태로 진입을 시도했다. 이 경감과 안면이 있던 범인은 경고사격으로 1발을 쏜
2014년 2월 26일 오후 9시20분.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지하주택에 살던 박모씨(60)와 박씨의 장녀 김모씨(35), 차녀(32)가 숨진 채 발견됐다. 세 모녀는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등지게 됐다. 이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대한민국 사회복지 제도의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이 사건으로 '벼량끝 계층'에 대한 복지정책에 비난이 쏟아졌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빈곤층의 실상을 더 이상 사회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분출됐다. ━뭐가 그리 죄송했기에...70만원 남기고 떠난 세 모녀━세 모녀가 발견된 지하 1층 방 창문은 청테이프로 막혀 있었고 방문도 침대로 막아진 채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시신은 일주일 정도 방치된 것으로 보였다. 집 주인 임모씨(73)는 경찰에서 "일주일 전부터 TV소리만 나고 인기척이 없어 의심스러워 경찰에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박씨는 12년 전 남편을 잃었다.
1998년 2월24일 오후 12시 30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241GP 3번 벙커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그 곳에서 판문점 경비대대 소대장 김훈 중위가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은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군 당국은 즉각 "김 중위가 자신의 권총으로 머리를 쏴 현장에서 자살했다"고 발표한다. 사건 발생 2시간 만에 이뤄진 초고속 발표였다. △대원들 전부 알리바이가 있는 점 △살해 동기가 없는 점 △타살의 증거가 없는 점을 이유로 '자살'이라고 단정지었다. 북한군의 소행이 아니라는 점도 명확히 했다. 김 중위는 육군사관학교 52기 졸업생인 엘리트 장교였으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아버지는 3군 부사령관을 지낸 예비역 육군 중장이었다. 당시 김 중위의 육군사관학교 동기들은 김 중위에 대해 "찡그리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매사 긍정적이었다"라고 기억했다. 유족들은 "자살할 동기가 없다"며 의문을 제기했고 재조사를 요구하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순직
20년 전인 2005년 2월 22일. 배우 이은주가 25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도시적인 차가움과 따뜻한 감성을 고루 갖춘 대체할 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진 2000년대 초중반을 대표했던 여배우였다. 한창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20대 여배우의 요절은 연예계를 넘어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도시적인 차가움, 신비로운 분위기 '이은주'━2005년. 당시만 해도 연예인의 극단적 선택 소식은 생소했다. 1996년 가수 김광석, 가수 서지원 정도였다. 2003년에는 홍콩 영화배우 장국영이 호텔에서 투신 자살했다. 연예인들이 세상을 떠난 소식이 들릴때마다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특히 이은주는 당시 어린 나이임에도 연기파 배우로 최정상에 있었기에 충격이 더했다. 사망 후 평소 고인이 우울증을 앓아왔다는 사실도 밝혀져 안타까움을 안겼다. 그의 유서에는 "엄마 사랑해. 내가 꼭 지켜줄 거야"라는 내용이 담겼다. 손예진은 영화 연애소설에서 이은주와 함께 출연해 친한
2024년 2월20일. 그룹 서울시스터즈 출신 가수 방실이가 향년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방실이는 인천 강화군의 한 요양병원에서 별세했다. 사인은 뇌경색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7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17년간 투병생활을 해왔다. ━1980년대 원조 걸그룹 멤버...솔로 전향 후에도 연이어 히트━방실이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여가수다. 강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82년 미8군 부대에서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비정규직이었지만 '방실이와 두 여자', '글래머걸스' 등 여러 그룹을 결성해 율동을 하면서도 시원한 가창력을 선보였다. 본격적으로 가수를 시작한 것은 1985년 박진숙, 양정희를 만나 '서울시스터즈'를 결성하면서부터다. 서울시스터즈는 한국 원조 걸그룹이자 당시에는 국내 유일의 여성 트리오로 큰 사랑을 받았다. 서울시스터즈 활동으로 방실이는 무명시절 없이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서울시스터즈는 데뷔곡으로 '첫차'를 발표하고 무대에 섰는데 시원한 가창력에 신나는 리듬으로
2018년 2월 19일.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김보름, 노선영, 박지우로 구성된 한국 대표팀이 8개팀 가운데 7위에 머물면서 탈락했다. 이 종목은 3명이 팀을 이뤄 400m 트랙을 6바퀴 돌아 마지막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기록으로 순위를 매긴다. 하지만 경기 운영면에서 최악의 팀워크를 보이며 충격을 안겼다. 마지막 바퀴에 접어들자 대표팀의 김보름과 박지우는 앞으로 치고 나갔고 노선영은 크게 뒤처져 홀로 결승선을 끊게 됐다. 이 경기를 두고 김보름과 박지우가 동료를 버리고 '왕따 주행'을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김보름 "노선영 체력 떨어져 격차" 웃으며 인터뷰...논란 일파만파 ━경기 후 김보름 "마지막에 (노선영의) 체력이 많이 떨어지면서 격차가 벌어졌다"고 웃음기를 머금은 채 말하는 인터뷰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논란이 됐다. 노선영 선수가 뒤처진 것을 패인으로 꼽는 듯한 이 발언은 공개적으로 '왕따 주행'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난
2006년 2월 18일 오후. 전날 서울 용산구 집 앞에서 사라진 초등학생이 경기 포천시 한 창고 옆 공터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실종신고 후 약 16 시간만이다. 아이 목 주변에는 흉기로 찌른 듯한 자국이 있었고 온몸은 불에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이른바 '용산 초등학생 성폭행 살인사건'이다. ━집 앞 100m 거리 비디오 가게 갔다가 사라진 A양━실종 당일인 그해 2월 17일 A(당시 11세)양은 '비디오를 반납하고 오라'는 부모 말에 오후 6시53분쯤 집을 나섰다. 약 7분 뒤인 오후 7시쯤 A양은 집에서 100m가량 떨어진 비디오 가게에 들러 테이프를 돌려주고 나왔고 이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A양 실종 다음 날인 18일 오후 2시 15분쯤이 경찰에 '포천시 군내면 농기계보관창고 옆 논바닥에서 불에 탄 여자아이 시신이 있다'는 112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차마 시신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목에는 흉기에 찔린 흔적이, 시신은 불에 심하게 태워져 얼굴 형체
11년 전 오늘, 2014년 2월17일. 설렘 가득한 대학 신입생 환영회 밤에 최악의 참사가 일어났다. 스무살 꽃다운 청춘들이 모인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지붕이 무너지면서 10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다쳤다. 지붕이 폭설을 견디지 못해 벌어진 대형 참사였는데 경찰 수사를 통해 부실 자재 사용, 부실공사, 제설작업 미비 등 문제점이 속속 드러났다. ━쩍쩍 소리 나더니 V자로 동시에 갈라져━ 그날 밤 부산외국어대 학생 560여명이 모인 리조트 체육관에선 신입생 환영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신입생이 주인공인 자리여서 갓 스무살 된 청춘들이 대부분이었다. 밤 9시5분쯤 무대 뒤편 지붕에서 '쩍쩍' 소리가 나더니 지붕 왼쪽과 오른쪽이 'V'(브이)자 형태로 동시에 무너졌다. 막을 새도 없이 붕괴가 시작된지 13초 만에 완전히 무너져 학생들을 덮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로 10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다쳤는데 사망자 10명 중 9명이 부산외대 학생이었다. 나머지 1명은 이벤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