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총 995 건
1999년 12월 20일. 대구 수성구의 한 주택가에서 50대 여성 홍모씨가 자신의 집 거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시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기괴했다. 마치 장례를 치르기 전 '염'을 한 것처럼 손과 발이 정교하게 묶여 있었고, 얼굴은 청테이프와 비닐로 감싸져 있었다. 여전히 범인이 누군지 밝혀지지 않은 채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은 '대구 청테이프 살인사건'이다. 2014년 12월 19일로 공소시효(25년)가 만료됐다. ━김장 김치를 담그던 날, 방문한 '귀한 손님'…수상한 매듭━사건 현장은 강도가 침입한 듯 어지럽혀져 있었지만, 정작 사라진 귀중품은 없었다. 범인은 증거 인멸을 위해 보일러를 최대로 올리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이는 시신 부패를 촉진해 사망 시간을 혼동하게 하려는 치밀한 수법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정확한 사망 원인이나 시각도 추정이 어려웠다. 직접 적인 사망 원인은 결박으로 인한 질식사로 추정되는데, 머리를 둔기에 맞은 흔적도 있었다. 경찰이 주목한 핵심 단서는 '커피잔 두 개'다.
5년 전인 2020년 12월 19일 밤, 윤모씨(당시 27세)는 자신의 늦은 귀가와 카드 연체, 과소비 등을 지적하는 세 살 연상 친누나와 갈등을 빚었다. 당시 두 사람은 인천 한 아파트에서 3개월가량 함께 살고 있었다. 함께 사는 기간에 누나의 잔소리는 처음이 아니었지만, 이날 남매의 싸움은 말다툼에서 끝나지 않았다. 거친 욕설을 내뱉은 윤씨는 "나한테 잔소리 그만하라"며 "부모님 행세하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동생의 적반하장 태도에 참다못한 누나는 "네 행실을 지방에 계신 부모님께 알리겠다"고 말했다. 이 말에 격분한 윤씨는 부엌에서 흉기를 들고 와 누나를 여러 차례 찔러 살해했다. 천륜을 거스른 윤씨는 죄책감보다 자신의 범행이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먼저 느꼈다. 이에 그는 누나의 시신을 캐리어 가방에 넣고 아파트 옥상 창고에 보관했다. 범행 열흘째가 되던 2020년 12월 28일 새벽, 윤씨는 캐리어 가방을 렌터카에 옮겨 실은 뒤 인천 강화군 삼산면 한 농수로에 가방을 던져 시신을 유기했다.
2018년 12월18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생 친구 10명은 '우정 여행'을 떠났다가 참변을 당했다. 이들은 강원 강릉시 펜션에 투숙했다가 숨지거나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3명이 사망했고 7명은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 옮겨져 길게는 32일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펜션 가스보일러 배기가스가 객실 내부로 유입돼 일산화탄소 농도가 짙어지면서 질식에 이르렀다. 사고는 인재(人災)였다. 보일러 시공부터 관리까지 총체적으로 부실하게 이뤄져 빚어진 일이었다. ━"입에 거품 문 학생들 쓰러져"…일산화탄소 중독━2018년 12월17일, 수능을 마친 고3 절친 10명은 서울역에서 강릉역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 '우정여행' 인증을 남겼다. 수능이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체험학습을 신청한 뒤 여행길에 올랐다. 인증샷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는데 이 게시물은 하루가 지나 추모 공간이 돼버렸다. 학생들은 펜션에 투숙한 다음날인 18일 오후 숨지거나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발견됐다. 펜션 관계자가 처음 발견했을 때 학생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고 일부는 구토를 한 상태였다.
작년 오늘인 2024년 12월17일. 일면식도 없는 동갑내기 남성을 살해하고 시신의 지문으로 6000만원 대출까지 받은 양정렬(당시 31세)이 강도 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양정렬이 극악무도한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생활고'였다. ━돈 구할길 없어지자 '살인계획'. 사망 사실 은닉하기도━양정렬은 범행을 저지르기 1년 반 전인 2023년 6월. 다니던 직장을 휴직한 이후 무직 상태로 생활해 왔다. 금융기관으로부터 7200만원 상당의 대출을 받게됐고 대출원리금을 납부하기 위해 지인들로부터 수차례 돈을 빌려왔다. 하지만 더 이상 돈을 구할 길이 없어지게 되자 불특정인을 상대로 금품을 강취해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김천시 한 모텔에서 숙식을 했고 휴대 전화로 '자살로 위장한 타살', '제주노부부 살인사건', '대한민국 살인마', '목 옆 기절' 등을 검색하며 저항할 경우 살해하기로 했다. 범행 전 필요한 범행 도구를 검색하고 시신 유기에 필요한 물품 등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등 살인계획을 치밀하게 짰다.
2017년 12월 16일. 서울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서 신생아 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4명의 신생아가 심정지를 일으킨 뒤, 80여 분 만에 전부 사망한 이 사건은 대한민국 의료계와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의료 사고가 아니라, 병원의 운영, 의료인의 윤리적 책임, 그리고 정부와 사회의 대응 체계의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2시간 동안 신생아 4명 잇따라 심정지…사망 원인은 프루디균 감염·패혈증━가장 먼저 심정지가 온 아이는 이 병원 NICU(신생아 집중치료실) 인큐베이터에서 6주째 입원하고 있던 김모군이었다. 김군은 16일 오후 5시44분부터 6시4분까지 1차 심폐소생술(CPR)을 받았고 오후 8시12분부터 10시10분까지 2차 심폐소생술을 받다가 숨졌다. 이후 입원 3주째였던 안모양, 5주째의 백모군, 9일째 김모양이 심정지 후 심폐소생술을 받다가 숨졌다. 숨진 신생아는 모두 미숙아였지만 기저질환은 없었다.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시트로박터 프룬디균 감염과 그로 인한 패혈증이었다.
'사망자 326명' 1970년 12월 15일 새벽, 제주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남영호'가 전남 여수 남동쪽 약 35㎞(킬로미터) 해상에서 침몰했다. 이 사고로 탑승자 338명 중 326명이 사망했다. 남영호는 전날 오후 5시 제주도 남제주군 서귀항에서 승객 200여명과 연말 성수기용 감귤을 싣고 출항했다. 서귀항을 출발해 성산항을 거쳐 부산으로 가는 남영호는 성산항에서 승객 100여명과 화물을 추가로 실었다. 연말 감귤 운송 물량이 몰려 화물칸을 넘어 갑판까지 감귤 상자를 쌓았다. 승선 정원 초과는 물론 화물 허용 적재량도 4배 가량 초과했다. 성산항을 출항할 당시부터 선체가 약 15도 기울어 있는 상태였다. 14일 밤 8시 10분 남영호가 부산을 향해 재출항한 지 약 5시간 뒤 사고가 발생했다. 15일 새벽 1시 15분쯤 강풍이 우현 측면을 세차게 때리면서 갑판 위에 적재돼 있던 감귤 상자 상당수가 좌현 방향으로 쏠렸다. 과적 상태에서 선체 중심을 무너뜨리는 직접적인 요인이 됐다. 남영호는 급격히 좌현으로 기울었고 무게 중심을 잃으면서 침몰했다.
43년 전 오늘인 1982년 12월14일. 서울 호암산 기슭에서 20대 여성이 청산가리를 먹고 고통 속에 죽어갔다. 이 여성에게 청산가리를 건넨 사람은 아마추어 사진작가 이동식(당시 42세). 유달리 '죽음'에 집착했던 이씨는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여성 모습을 사진에 담고자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에 잡히자 "예술 사진을 찍은 것뿐"이라는 주장을 펼친 그는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넝마주이에서 '사진광' 된 이동식━1940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난 이동식은 14세 때 서울로 상경해 15년간 폐지와 고철 등을 주우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넝마주이로 살며 특수절도 등으로 세 차례나 옥살이한 이씨는 30대 중반 뒤늦게 사진에 취미를 붙였다. 보일러 배관공으로 일하며 사진작가 꿈을 키운 이씨는 피 흘리며 죽어가는 닭 사진으로 공모전에 입상했다. 이후 유수의 공모전에서 10여 차례 입상하면서 1982년 한국사진작가협회에도 가입했고 개인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배관공 월급보다 몇 배 비싼 외국산 카메라를 살 만큼 사진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이씨는 곧 아이디어 고갈로 공모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됐다.
2018년 12월13일. 오전 2시 12분경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지하철 2호선 선릉역에서 23세 여성이 21세 여성을 흉기로 수차례 찌르는 흉기 사건이 벌어졌다. 피의자 A씨는 3년간 온라인 게임 속에서 B씨에게 남자 행세를 하며 '게임 속 남자친구'로 활동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A씨가 여성인 것을 알고 B씨가 결별을 통보하자 말다툼 뒤 범행을 저질렀다. B씨는 흉기에 여러 차례 찔렸으나 병원으로 이송돼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3년 간 남자인 척…신체부위 촬영 사진·영상 유포 협박도━ A씨는 2015년 4월 온라인 게임 '서든어택'에서 함께 플레이한 B씨에게 자신을 남성이라고 속이고 교제했다. 두 사람은 직접적인 만남 없이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만남 중 B씨는 A씨의 요구에 따라 특정 신체 부위가 촬영된 사진과 동영상을 전송했다. B씨는 2016년 7월, 자신의 만나자는 요구에 A씨가 수차례 거부하자, 만남을 회피한다는 이유로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이에 A씨는 B씨의 신체 일부가 담긴 사진·동영상을 유포한다고 협박했다.
2011년 12월12일 새벽 5시40분쯤, 인천 옹진군 소청도 남서쪽 74㎞ 해상. 해양경찰 레이더에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 두 척이 포착됐다. 해경이 7박8일 일정으로 소청도 해역에 투입돼 불법조업을 감시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해경은 곧바로 단속에 나섰다. 3005함 대원 16명이 고속단정 2척에 나눠 타 현장으로 출동했다. 어선 2척 중 요금어 15001호(66t급)에 접근, 정선 명령을 내렸다. 중국인 선원들은 쉽게 투항하지 않았다. 해경에게 손도끼, 갈고리, 낫, 쇠파이프 등을 휘두르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청호 경장과 대원 8명이 어선에 올라 이들을 제압했지만, 선장 청다웨이(당시 42세)는 조타실 문을 걸어 잠근 채 끝까지 버텼다. 결국 이 경장이 앞장섰다. 섬광탄을 투척해 출입문을 부순 그는 망설임 없이 조타실로 진입했다. 그런데 그 순간 무언가가 이 경장의 옆구리를 관통했다. 선장 청다웨이가 휘두른 흉기였다. 뒤따라 진입한 이낙훈 순경도 흉기에 복부를 찔렸다. 이 경장과 이 순경은 인천 인하대병원으로 이송됐다.
1969년 12월 11일. 강릉을 출발해 김포로 향하던 대한항공 YS-11기가 돌연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향했다.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돼 북한으로 끌려간 것이었다. ━조종사 위협한 북한 공작원 조창희━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을 태운 YS-11기는 비행 도중 권총을 든 북한 공작원 조창희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았다. 1960년대는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로 북한은 남한에 대한 무력시위 및 첩보 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었다. 조창희는 강원 속초 출신 한국인으로 육군에 입대해 17년동안 복무했다. 이후 육군 헌병 준위로 제대했는데 제대 후 북과 접선해 한창기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간첩 활동을 해왔고, 북한 지령을 받아 항공기 납치 월북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창희는 제대 후 변변치 않은 생활로 인해 북에 포섭된 것으로 알려졌다. 권총을 소지한 채 비행기에 탑승한 조창희는 비행기 앞쪽 좌석에 앉아있다가 이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장실로 진입해 조종사를 권총으로 위협했고, 항로를 변경시켜 북한 함흥 인근 선덕 비행장에 강제 착륙시켰다.
2021년 12월10일, 경찰 신변 보호를 받던 성폭행 피해자 집에 택배원으로 가장한 남성이 찾아왔다. 몇 차례 초인종이 울렸고 당시 집에 있던 피해자 모친은 별다른 의심 없이 문을 열었다. 문밖에 서 있던 남성 손엔 택배 대신 '전기 충격기'가 들려 있었다. 남성은 전기 충격기로 피해자 모친을 제압 곧바로 흉기로 목을 찔러 살해했다. 피해자 동생이 뒤늦게 모친 비명을 듣고 뛰쳐나왔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남성은 동생 목을 흉기로 찌르고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쳤다. 남성의 이름은 이석준(26). 사건 나흘 전 피해자를 납치·성폭행한 혐의로 입건돼 경찰조사를 받은 피의자였다. 경찰은 그가 긴급체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귀가시켰는데 이석준은 이 틈을 타 범행을 저질렀다. ━"내가 사람을 몇 명이나 묻었는데"━이석준과 피해자 A씨는 2021년 8월 한 온라인 게임을 통해 알게 됐다. 이석준은 그해 10월 가족과 불화로 가출했다는 A씨에게 "내가 일 때문에 어차피 방을 구하려고 했는데 지낼 곳이 없으면 같이 지내자.
2016년 12월 9일. 안양에서 호프집 여주인을 살해하고 도주한 40대 중국 국적 A씨가 징역 13년을 선고받았다. 범인이 죗값을 받은 건 무려 19년만이었다. ━살인 후 "내가 불법체류자다" 자진 신고한 까닭━사건은 1997년 4월 11일 새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0대였던 중국 동포 A씨는 경기 안양시 만안구 한 호프집에서 술에 취해 소란을 피웠다. 만취한 A씨가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자 40대 여주인 B씨는 "정신 차리고 이제 나가라"고 항의했다. A씨는 B씨가 자신을 내보내려고 하자 부엌에 있던 흉기로 B씨를 무참히 살해한 뒤 도망갔다.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맥주병, 유리잔, 탁자 등 사건 현장에 남은 지문을 통해 금세 A씨를 용의자로 특정할 수 있었다. 경찰은 사건 바로 다음 날 A씨 주거지를 급습했는데, A씨는 이미 도주하고 없었다. 심지어 한국 땅을 밟고 있지 않았다. 알고 보니 A씨는 1991년 밀입국한 중국 동포로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다. 한국에서 전기설비공사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