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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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96 건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 왕국간 충돌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독일·오스만제국 등은 오스트리아 편에(동맹국), 영국·프랑스·러시아(협상국)와 미국 등은 세르비아 편에 서면서 초유의 세계 전쟁이 벌어졌다. 독일이 항복한 1918년 11월11일까지 만 4년간 유럽과 중동, 아시아까지 휘말린 결과 군과 민간을 합쳐 양 진영에서 총 3800만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20세기는 1914년에 시작했다"고 할 정도로 20세기 세계질서를 규정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6월 사라예보 울린 총성━1914년 유럽 각국의 민족주의가 커지던 시기, 세르비아의 민족주의도 팽창일로였다. 세르비아인은 발칸 반도 전역에 퍼져 있었는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통치하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해 6월 28일 오스트리아 제국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 부인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군사훈련을 참관하기 위해서다. 마침 이날은
2011년 7월27일. 칠흑 같이 어두운 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단꿈에 젖어 있어야할 시간에 산사태로 인하대학교 학생 10명을 포함해 모두 13명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은 최악의 산사태 중 하나로 꼽힌다. ━봉사활동 갔다가…"굉음과 함께 순식간에"━2011년 7월 27일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에서는 폭우가 쏟아졌다. 7월26일부터 28일까지 수도권과 강원도 지방에 3일간 집중 호우가 내린 기간이었다. 이 기간 아이디어 뱅크 회원들은 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강원도 춘천시 상천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아이디어 뱅크 발명 캠프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2003년에 정식 등록된 인하 대학교 교내 동아리인 발명 동아리 아이디어 뱅크는 해마다 여름 방학을 이용해 초등·중등·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발명 캠프를 진행해 왔다. 봉사활동 종료를 하루 앞둔 27일 새벽 0시21분. 인하대 학생들은 단잠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폭우로 강원도 춘천 소양강댐 근처에서 산사태가
"서울이 바다가 됐다" 2011년 7월26일. 서울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져 내렸다. 오후부터 300㎜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오후 4시35분께 서대문구 남가좌동 흥남교 교각 아래에서는 폭우에 고립된 시민 6명이 구조됐다. 집중 호우로 산과 계곡에 갇힌 시민 38명이 공포에 떨다 구조됐다. 비는 자정이 넘어 27일까지 이어졌다. 오전 8시53분쯤. 서울 서초구 우면동 우면산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로 인해 우면산 인근 형촌마을 120세대 중 60세대가 고립됐다. 이 사고로 신세계 그룹 고학서 고문(당시 신세계 회장)의 아내 양명숙 여사가 주택 지하에 있다가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남태령 전원 마을 등에서 우면산 산사태로 인해 1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강남 물난리·출근길 교통대란 일으킨 2011년 우면산 산사태━ 시민들은 출근길 교통대란에 발을 동동 굴렀다. 집중 호우로 인해 도로 곳곳이 침수됐고 지하철 1호선 오류역, 분당선 선릉역
23년 전인 2000년 7월25일.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을 출발한 에어프랑스(AF) 소속 콩코드 4590편이 화염에 휩싸이며 한 호텔로 추락했다. 이륙 88초 만이었다. 이 사고로 승객 100명과 승무원 9명, 호텔 직원 4명 등 총 113명이 사망했다.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비극적인 사고는 세계 최초 초음속 여객기로 유명했던 콩코드의 종말을 가져왔다. ━활주로 떨어진 부품 밟고 타이어 '펑'…이륙하자마자 화염 휩싸였다━콩코드 AF 4590편은 사고 당일 오후 3시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으로 향할 예정이었지만, 고장 난 장치를 수리하다 늦어져 오후 4시42분쯤 이륙했다. 당시 활주로에는 약 5분 먼저 이륙했던 미국 콘티넨털 항공 DC-10의 엔진 덮개에서 티타늄 스트립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AF 4590편은 이를 알지 못한 채 활주로를 내달렸다. 결국 스트립을 밟고 지나간 AF 4590편의 왼쪽 랜딩기어 앞바퀴 타이어에는 구멍이 나고 말았다. 터진 타이어 파편이
1915년 7월 24일,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오대호 역사상 최악의 참사가 일어났다. 승객과 선원 약 2500여명을 태운 이스트랜드호가 침몰하면서 승객 844명과 선원 4명 등 총 848명의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이 중에는 가족 전원이 숨진 사례도 22건이나 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회사 창립 5주년을 맞아 가족들까지 데리고 와 회사 야유회에 가려던 웨스턴 전기회사의 직원들은, 승객이 모두 탑승하자마자 기울어진 배에서 끔찍한 사고를 겪고 말았다. ━사고 11년 전에도 기울어졌던 배…구명조끼가 독 됐다━ 1902년 미시간주에서 만들어진 이스트랜드호는 당시 오대호에서 여객선 겸 화물선으로 맹활약했다. 그러나 1904년과 1906년, 1912년 세 차례에 걸쳐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스트랜드호 측은 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최대 승선 인원을 3000명에서 2570명으로 줄이는 등 노력했으나, 1912년 일어난 타이태닉호 침몰 사고로 인해 의도치 않은 위기를 맞게 됐다
2006년 7월 23일. 우리나라와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일이 발생했다. 프랑스 출신 기술자로 서울 서래마을에 거주하던 장 루이 쿠르조(당시 40세)가 집 냉동실을 뒤지다 수건과 비닐에 싸인 신원 불명 영아 시체 2구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면서다. 여러 의혹이 제기되며 엉뚱한 소문까지 돌았지만, 이후 유전자(DNA) 분석 결과 쿠르조와 그의 부인 베로니크 쿠르조가 영아들의 친부모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 수사당국 DNA 검사 결과를 무시하면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내가 아기들 엄마입니다"…뒤늦게 범행 시인한 아내━사건 초반에는 필리핀인 가정부 등 주변 인물들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베로니크는 3년 전 받은 자궁 적출 수술을 이유로 용의선상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사건 접수 5일만인 같은 해 7월 28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DNA 분석 결과를 토대로 영아들 친부로 쿠르조를 지목했다. 여론은 그가 범인일 수 있다며 들썩였다. 이 시점에 쿠르조는 자국인 프랑스로 돌아간
2011년 7월 22일 오후 3시 25분.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정부청사에 큰 폭발음이 들렸다. 사제폭탄을 이용한 테러였다. 총리실을 비롯한 여러 부처의 건물이 파손됐고 7명이 사망, 19명이 다치는 피해가 났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범인은 유유히 자리를 떠 오슬로 북서쪽 30km의 한 섬으로 향했다. 노르웨이의 집권당이던 노동당의 청년캠프 행사가 열리던 우퇴이아 섬이다. 육지와 연결된 다리가 없이 배가 유일한 탈출수단이던 섬에서 범인은 캠프 참가자 한 명 한 명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대테러부대가 출동, 진압에 나선 끝에 범인은 투항했다. 그러나 한 시간 반 가량 총기 난사로 수백명이 죽거나 다친 참사가 벌어진 뒤였다. 전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노르웨이 테러 사건이다. ━대체 누가, 이슬람? 틀렸다━노르웨이 당국과 세계는 처음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를 의심했다.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벌어진 지 10년, 서방과 이슬람권 갈등도 지속됐다. 하지만 범인은 뜻밖에 노르웨
2년 전인 2021년 7월 21일,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인 Hot 100 Chart(핫100)에 자신들의 다섯 번째 1위 곡 'Permission to Dance'를 새겨 넣었다. BTS는 2020년 9월 1일 노래 'Dynamite'로 한국 가수 최초 핫100 차트 1위에 올랐다. 이후 약 1년 동안 'Savage Love', 'Life Goes On', 'Butter' 3개의 곡으로 핫100 정상을 차지했다. Permission to Dance는 앞서 7주 연속 핫100에서 1위를 기록했던 Butter를 밀어내고 정상에 올랐다. 빌보드를 점령한 자신들의 곡을 또 다른 자신들의 노래로 바꿔놓은 것이다. BTS보다 먼저 빌보드 핫100에서 자신의 1위 곡을 자기 노래로 경신한 가수는 불과 13개 팀뿐이다. 1964년 그룹 '비틀즈'가 최초로 이 같은 기록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테일러 스위프트(2014년), 더 위켄드(2015년), 저스틴 비버(2016
"이것은 한 인간의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 될 것입니다." 1969년 7월20일 오후 4시17분 40초. 인류가 역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한 순간이 기록됐다. 나흘 전 우주로 쏘아 올린 '아폴로 11호'에 탑승한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달에 발을 디딘 뒤 지구로 이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그의 말대로 '위대한 도약'으로 남은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은 향후 우주 과학 기술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고, 우주 경쟁의 주도권은 소련에서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 vs 소련…'우주 경쟁의 시대'━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 '기선제압'에 성공한 건 소련이었다. 소련은 1957년 10월4일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를 성공시켰다. 지금까지 과학기술 분야에서 소련을 압도하고 있다고 믿었던 미국 사회는 '스푸트니크 쇼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큰 충격에 빠졌다. 당초 미국 정부는 '국제지구물리관측년(IGY)'(1957년 7월1일~
1965년 7월19일 오전 0시35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국 하와이 한 요양원에서 90세로 운명했다. 12년간 장기 집권하다 대통령직에서 하야한 뒤, 한 달 만에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도망치듯 하와이로 망명한 지 5년이 좀 더 지난 시점이었다. 그의 유해는 그해 7월23일 미 공군수송기에 실려 김포공항으로 운구됐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렀다. 당초 유족들은 "국장으로 예우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야당인 민주당과 학생, 시민단체들이 반대했다. 이에 정부가 상대적으로 격이 낮은 국민장을 결정했으나 유족들이 다시 이를 거부했다. 나흘이 지난 7월27일 서울 정동교회에서 영결식을 한 뒤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광복 이후 떠오른 '우익 지도자'…초대 대통령 되다━1895년 스무살의 이승만은 배재학당에서 공부했다. 이때 근대 학문을 배우고 독립운동에 힘썼다.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이 주도한 독립협회에 참여해 활동했다. 강연과 신문 논설로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이후에
1989년 7월 19일.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출발해 필라델피아로 비행 중이던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DC-10기 후미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기체 2번 엔진이 굉음을 내며 폭발한 것. 순식간에 296명이 탄 항공기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며 조종 불능상태가 돼버렸다. 부기장은 조종간을 쥐고 요동치는 기체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조종실 시스템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기장이 직접 조종에 나섰으나 마찬가지였다. 비행기는 오른쪽으로 더 기울어졌고 서서히 고도가 낮아지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베테랑 조종사들의 기지로 기체는 아이오와주 수시티 공항에 겨우 비상 착륙했지만 착륙 직후 화염에 휩싸이며 파괴됐다. 이 사고로 296명 중 185명이 생존했지만 111명이 목숨을 잃어, 유나이티드 항공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항공 사고로 남게 됐다. ━이륙 1시간 만에 터져버린 엔진…구원투수처럼 등장한 일등석 탑승객━ 사고가 발생한 1989년 7월 19일 오후 2시쯤, 232편은 28
"수영 한 번 하자" 빨간 모자를 쓴 교관이 말했다. 그 한마디에 충남 공주사대부고 학생 80명이 뒷걸음질로 물이 목까지 올라오는 바다에 들어갔다. 구명조끼도 입지 않았다. 학생 23명은 바닥이 움푹 파인 갯골에 휩쓸렸다. 교관은 물에 빠진 학생들을 쳐다보기만 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학생들은 인간띠를 만들어 4~5명씩 짝을 지어 친구 여러 명을 구했다. 그러나 김동환, 이병학, 이준형, 장태인, 진우석군(당시 모두 17세) 5명이 실종됐고 사건 다음 날 이들은 숨진 채 발견됐다. 예정된 인재라고 평가받는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 이후 전국의 해병대 캠프를 비롯한 수련 활동의 안전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에 정부의 공식 인증을 받지 않은 청소년 수련 프로그램은 전면 금지됐다. 7월18일은 '연안안전의 날'로 지정됐다. ━생존학생 진술 "허우적대는데 교관은 호각만 불어"━ 2013년 7월18일, 공주사대부고 학생 197명이 참여한 사설 해병대 캠프의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