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치니 억하고" 한줌 재로 뿌려진 아들…아버지는 허공에 오열했다[뉴스속오늘]

"탁치니 억하고" 한줌 재로 뿌려진 아들…아버지는 허공에 오열했다[뉴스속오늘]

전형주 기자
2024.01.14 05:30
[편집자주]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박종철 열사의 영정. /사진=뉴시스
박종철 열사의 영정. /사진=뉴시스

"남영동에서 시나이(사나이)가 깨졌습니다."

"보따리(조작 사건) 하나 터진 것 개지고 소란 떨 것 있네" - 영화 1987 中

1987년 1월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서울대생 박종철(1964~1987)이 숨졌다. 그는 전날 밤 경찰에 불법 연행돼 폭행과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학내 서클 '대학문화연구회'에서 알게 된 선배 박종운(사회학과 81학번)과 친하게 지냈다는 것.

박종운은 당시 1984년 결성된 '민주화추진위원회'에 가담한 혐의로 수배돼 은거 중이었다. 경찰은 박종철을 고문해 박종운의 소재를 파악하려 했다. 그러나 박종철은 박종운의 소재와 행방을 끝까지 함구했다.

경찰은 박종철을 물이 가득 찬 욕조에 처박았다. 10시간 동안 물고문과 전기 고문을 반복했다. 박종철이 갑자기 숨을 안 쉬자 중앙대학교병원 내과 전문의 오연상을 불러 심폐소생술을 시켰지만, 박종철은 이미 숨진 상태였다.

경찰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영화 '1987'에서 박처원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장을 연기한 배우 김윤석. / 영화 '1987' 스틸컷
영화 '1987'에서 박처원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장을 연기한 배우 김윤석. / 영화 '1987' 스틸컷

경찰은 박종철의 죽음을 쇼크사로 은폐하려 했다. 박종철이 숨진 날 저녁 7시30분쯤, 최환 서울지검 공안부장을 찾아가 다짜고짜 조사받던 학생이 죽었는데 화장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최 부장검사는 고문이 있었음을 직감했다. 경찰에 박종철의 시신을 보존 및 부검할 것을 명령하고 잠적했다.

그러는 새 이튿날인 15일 중앙일보가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의 2단 기사를 내보내면서 박종철의 죽음은 세상에 알려졌다. 이 기사를 쓴 신성호 기자는 당일 아침 당시 검찰청 공안4과장과 차를 마시다 "경찰들 큰일 났다. 그 친구 대학생이라지? 서울대생이라며"라는 말을 듣고 취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가혹행위는 없었다"며 해명에 나섰다.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박종철의 시신을 부검했더니 사인에 이를 만한 손상은 없었다며, 고문은 절대 안했다고 강조했다. 경찰 수사관이 박종철을 신문하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게 경찰 설명이었다.

"철아, 잘 가그래이…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1987년 6월항쟁 당시 서울 종로거리에서 한 여성 시위 참가자가 전경에게 꽃을 건네고 있다. /사진제공=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87년 6월항쟁 당시 서울 종로거리에서 한 여성 시위 참가자가 전경에게 꽃을 건네고 있다. /사진제공=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그러나 대공분실로 왕진을 갔던 의사 오연상은 경찰의 해명과 정반대의 증언을 내놨다. 그는 조사실 바닥에 물이 흥건했고, 박종철은 이미 숨져 있었고, 복부 팽만이 심했고, 폐에서는 수포음이 들렸다고, 자신이 본 대로 언론에 알렸다.

부검의였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장 황적준도 박종철의 사인을 심장마비로 해달라는 경찰의 협박과 회유를 뿌리치고 경부(목) 압박에 의학 질식사라는 의견을 밝혔다.

경찰은 유족의 허락도 없이 벽제화장터에서 박종철의 시신을 화장했다. 유골은 16일 오전 임진강에 뿌려졌다.

"철아, 잘 가그래이…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는 흩날리는 유분에 대고, 허공에 대고 목 놓아 울었다.

가해 경찰관들 구속됐지만…이한열 열사 사망

1987년 6월항쟁 당시 서울 종로거리 한 차도에서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는 중이다. /사진제공=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87년 6월항쟁 당시 서울 종로거리 한 차도에서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는 중이다. /사진제공=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종철의 죽음에 민심은 들끓었다. 경찰은 마지못해 19일 박종철에 대한 고문 사실을 인정하고, 고문치사에 가담한 경찰관 2명을 구속했다. 이후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된 경찰관들이 가해자가 더 있다고 폭로하면서 경찰관 3명이 추가로 구속됐다.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경질됐으며, 고문치사를 은폐하려고 한 혐의로 구속됐다.

야당과 재야는 박종철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각계 인사 9000여명으로 '박종철군 국민추도회'를 꾸렸다. 그해 3월3일에는 고인의 49재에 맞춰 '고문추방 국민대행진'을 벌였다.

그리고 그해 6월9일, 연세대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6월 항쟁에 불을 댕겼다. 그 결과 대통령 직선제가 성취됐고, 국민은 노태우를 선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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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주 기자

안녕하세요. 스토리팀 전형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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