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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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06 건
"기체가 고장 났다." 상공을 가르던 미그(MIG) 15기가 기수를 남쪽으로 돌렸다. 곧장 전투기가 뒤따라붙으며 쫓아왔지만 정낙현(당시 24세)은 이들을 따돌리며 남쪽으로 더 거세게 날아들었다. 1960년 8월3일 대낮에 벌어진 갑작스러운 귀순이었다. ━대낮에 벌어진 귀순…"자유가 그리웠다"━1960년 8월3일 오후 12시10분. 북한 공군 소위 정낙현이 미그15기를 몰고 강원 대포리 비행장에 착륙, 대한민국으로 귀순했다. 24살 청년 정 소위는 평안북도 영월 출신으로 북한 공군 76연대 소속이었다. 그는 이날 오전 11시45분쯤 미그 15기를 몰아 원산기지를 출발해 한국으로 귀순했다. 당시 정 소위는 북한 정규 장교가 아닌 북한 조종학교 학생 신분이었다. 러시아의 주력 전투기인 미그기는 러시아를 비롯해 북한·동유럽 ·중국 등에서 공군 주력기로 채택된 바 있다. 이날 원산 비행장을 이륙해 동료 조종사들과 비행 훈련에 나섰던 그는 편대를 이탈한 뒤 "기체가 고장 났다"며 남쪽으로 기수
1990년 8월2일 새벽 시간, 이라크군이 쿠웨이트 국경을 넘었다. 6시간 만에 수도인 쿠웨이트시티까지 함락했다. 침공 일주일 뒤에는 모든 저항을 진압했다. 이내 양국의 합병을 선언하고 쿠웨이트를 이라크의 19번째 주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이듬해 1월17일 미국을 중심으로 다국적군이 공습에 나섰다. 이른바 '걸프전'이다. 다국적군에는 미국, 영국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일부 아랍국가가 참여해 총 34개국이 이라크를 공격했다. 그해 2월 이라크군은 완전히 철수했다. 정치 지도자의 '오판'으로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이 벌어졌다고 평가받는다. 오판의 실마리를 미국이 제공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전쟁 이후 미국이 중동지역과 세계 정치 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했다고 알려졌다. ━전쟁 빚을 또 다른 전쟁으로 갚으려…역풍 불었다━1990년 이라크는 앞서 8년간 벌인 이란-이라크 전쟁 실패로 막대한 국가 부채를 떠안았다. 대외 채무만 600억달러가 넘었다. 전후 복구에도 2300억
43년 전인 1980년 8월1일. 삼청교육대가 설립됐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가 '사회 정화'를 이유로 전국에 있는 군부대에 설치한 기관이다.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인권 침해 사례로 꼽힌다. 삼청교육대의 명칭은 교육 대상자들을 검거하기 위한 군경 합동작전인 '삼청 작전'에서 비롯됐다. 이듬해 1월25일 교육대가 해산되기 전까지 법원 영장 발부 없이 총 6만755명이 체포됐고, 이들 중 3만9742명이 삼청 교육을 받으며 가혹 행위를 당했다. ━신분증 지참 안 했다고 끌려갔다…셋 중 하나는 '無 전과'━1979년 '12·12 사태'를 계기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1980년 5월 비상계엄을 발령하고 국보위를 설치했다. 당시 국보위는 '깡패' 조직을 제거해 민심을 얻으려는 정권 차원의 조치로 '불량배 소탕 계획'을 공표했다. 미리 전과자와 폭력배의 목록을 조사한 이후 작전이 진행됐다. 처음 목표로 삼았던 검거 대상자는 2만여명이었지만, 군대와 경찰 간에 경쟁이 붙어 점차 머릿
1983년 7월31일. 충청남도 공주군에 사는 50대 여성 A씨가 사라졌다. 평소와 다름없이 밭일을 하러 나간 것이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평범한 가정 주부였던 A씨가 집을 나갈 이유가 없었기에, 가족들은 그녀가 곧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A씨는 며칠 후 우성면 용봉리의 소룡골 계곡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특이점이 없었고 멱을 감은 흔적이 발견돼 심장마비에 의한 단순변사로 처리됐다. 당시만해도 시골에서는 여름에 멱을 감다 변을 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당시 아무도 A씨가 살해됐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A씨의 죽음은 그렇게 잊혀져 갔다. 그로부터 약 7개월 후인 1984년 2월21일. 공주에서 또 부녀자 한명이 사라졌다. 이번에도 50대의 여성이었다. 역시 평범한 주부였던 이 여성은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간다며 집을 나선 이후 모습을 감췄다. 두달 후인 4월14일 이 여성 역시 내흥리의 한 야산에서 죽은채 발견됐다. 이번에도 타살 정황이 발견되지 않아 단순 변사사건
2005년 7월 30일 오후 MBC를 보던 시청자들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음악 방송에 나온 인디 밴드 멤버들이 느닷없이 무대 앞으로 나오더니 바지를 벗고 성기를 노출하는 초대형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당시 프로그램은 생방송 중이었고 이들의 성기 노출 모습은 전파를 타고 전국에 고스란히 방영됐다. 이들의 기행은 국민적인 충격을 준 것뿐 아니라 인디밴드 전체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성기 노출하더니 '폴짝폴짝'…7초간 전국 생중계━18년 전이던 오늘 MBC에서는 음악 프로그램 '음악캠프'가 방송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녹화가 아닌 생방송이었다. 당시는 인디 밴드가 조금씩 주목받는 때였고 MBC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이들을 소개하는 코너를 진행하고 있었다. 사고 당일에는 인디 밴드 럭스가 공연에 나섰다. 럭스는 자신들만 무대에 서면 허전해 보일 것을 우려해 다른 인디밴드 동료들을 불러 함께 공연을 펼쳤지만 이 선택은 독이 됐다. 간주가 흘러나오고 있을 무렵, 광대 분장
1981년 7월29일 다이애나 스펜서가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차기 왕위 계승 예정자와 막 20세가 된 신부는 세기의 결혼을 올렸다. 6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으며 50개국에 생중계로 중계됐다. 생전 이혼했기 때문에 '비(妃)'라는 명칭을 떼야 하지만 아직 다이애나 비(Diana, Princess of Wales)로 불리고 있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자리에서도 서민 곁에서 낮은 자세로 베풀었기에 그렇다는 평이 많다.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 왕실의 전통과 품격을 상징하는 존재로 사랑받았다면, 다이애나 비는 보수적인 왕실에 변화를 가져온 파격과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英세자빈 된 유치원 교사…아들 학교 운동회서 '맨발 달리기'━다이애나 비는 명문 스펜서 백작 가문의 자제였다. 고등학교를 중퇴해 상류층 아이들이 다니는 핌리코의 유치원에서 시간제 보조 교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찰스 황태자와 만났다. 결혼부터 파격이었다. 전통 결혼 서약에서 "남편에게 순종하겠다(obe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 왕국간 충돌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독일·오스만제국 등은 오스트리아 편에(동맹국), 영국·프랑스·러시아(협상국)와 미국 등은 세르비아 편에 서면서 초유의 세계 전쟁이 벌어졌다. 독일이 항복한 1918년 11월11일까지 만 4년간 유럽과 중동, 아시아까지 휘말린 결과 군과 민간을 합쳐 양 진영에서 총 3800만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20세기는 1914년에 시작했다"고 할 정도로 20세기 세계질서를 규정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6월 사라예보 울린 총성━1914년 유럽 각국의 민족주의가 커지던 시기, 세르비아의 민족주의도 팽창일로였다. 세르비아인은 발칸 반도 전역에 퍼져 있었는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통치하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해 6월 28일 오스트리아 제국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 부인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군사훈련을 참관하기 위해서다. 마침 이날은
2011년 7월27일. 칠흑 같이 어두운 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단꿈에 젖어 있어야할 시간에 산사태로 인하대학교 학생 10명을 포함해 모두 13명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은 최악의 산사태 중 하나로 꼽힌다. ━봉사활동 갔다가…"굉음과 함께 순식간에"━2011년 7월 27일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에서는 폭우가 쏟아졌다. 7월26일부터 28일까지 수도권과 강원도 지방에 3일간 집중 호우가 내린 기간이었다. 이 기간 아이디어 뱅크 회원들은 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강원도 춘천시 상천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아이디어 뱅크 발명 캠프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2003년에 정식 등록된 인하 대학교 교내 동아리인 발명 동아리 아이디어 뱅크는 해마다 여름 방학을 이용해 초등·중등·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발명 캠프를 진행해 왔다. 봉사활동 종료를 하루 앞둔 27일 새벽 0시21분. 인하대 학생들은 단잠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폭우로 강원도 춘천 소양강댐 근처에서 산사태가
"서울이 바다가 됐다" 2011년 7월26일. 서울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져 내렸다. 오후부터 300㎜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오후 4시35분께 서대문구 남가좌동 흥남교 교각 아래에서는 폭우에 고립된 시민 6명이 구조됐다. 집중 호우로 산과 계곡에 갇힌 시민 38명이 공포에 떨다 구조됐다. 비는 자정이 넘어 27일까지 이어졌다. 오전 8시53분쯤. 서울 서초구 우면동 우면산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로 인해 우면산 인근 형촌마을 120세대 중 60세대가 고립됐다. 이 사고로 신세계 그룹 고학서 고문(당시 신세계 회장)의 아내 양명숙 여사가 주택 지하에 있다가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남태령 전원 마을 등에서 우면산 산사태로 인해 1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강남 물난리·출근길 교통대란 일으킨 2011년 우면산 산사태━ 시민들은 출근길 교통대란에 발을 동동 굴렀다. 집중 호우로 인해 도로 곳곳이 침수됐고 지하철 1호선 오류역, 분당선 선릉역
23년 전인 2000년 7월25일.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을 출발한 에어프랑스(AF) 소속 콩코드 4590편이 화염에 휩싸이며 한 호텔로 추락했다. 이륙 88초 만이었다. 이 사고로 승객 100명과 승무원 9명, 호텔 직원 4명 등 총 113명이 사망했다.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비극적인 사고는 세계 최초 초음속 여객기로 유명했던 콩코드의 종말을 가져왔다. ━활주로 떨어진 부품 밟고 타이어 '펑'…이륙하자마자 화염 휩싸였다━콩코드 AF 4590편은 사고 당일 오후 3시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으로 향할 예정이었지만, 고장 난 장치를 수리하다 늦어져 오후 4시42분쯤 이륙했다. 당시 활주로에는 약 5분 먼저 이륙했던 미국 콘티넨털 항공 DC-10의 엔진 덮개에서 티타늄 스트립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AF 4590편은 이를 알지 못한 채 활주로를 내달렸다. 결국 스트립을 밟고 지나간 AF 4590편의 왼쪽 랜딩기어 앞바퀴 타이어에는 구멍이 나고 말았다. 터진 타이어 파편이
1915년 7월 24일,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오대호 역사상 최악의 참사가 일어났다. 승객과 선원 약 2500여명을 태운 이스트랜드호가 침몰하면서 승객 844명과 선원 4명 등 총 848명의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이 중에는 가족 전원이 숨진 사례도 22건이나 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회사 창립 5주년을 맞아 가족들까지 데리고 와 회사 야유회에 가려던 웨스턴 전기회사의 직원들은, 승객이 모두 탑승하자마자 기울어진 배에서 끔찍한 사고를 겪고 말았다. ━사고 11년 전에도 기울어졌던 배…구명조끼가 독 됐다━ 1902년 미시간주에서 만들어진 이스트랜드호는 당시 오대호에서 여객선 겸 화물선으로 맹활약했다. 그러나 1904년과 1906년, 1912년 세 차례에 걸쳐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스트랜드호 측은 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최대 승선 인원을 3000명에서 2570명으로 줄이는 등 노력했으나, 1912년 일어난 타이태닉호 침몰 사고로 인해 의도치 않은 위기를 맞게 됐다
2006년 7월 23일. 우리나라와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일이 발생했다. 프랑스 출신 기술자로 서울 서래마을에 거주하던 장 루이 쿠르조(당시 40세)가 집 냉동실을 뒤지다 수건과 비닐에 싸인 신원 불명 영아 시체 2구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면서다. 여러 의혹이 제기되며 엉뚱한 소문까지 돌았지만, 이후 유전자(DNA) 분석 결과 쿠르조와 그의 부인 베로니크 쿠르조가 영아들의 친부모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 수사당국 DNA 검사 결과를 무시하면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내가 아기들 엄마입니다"…뒤늦게 범행 시인한 아내━사건 초반에는 필리핀인 가정부 등 주변 인물들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베로니크는 3년 전 받은 자궁 적출 수술을 이유로 용의선상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사건 접수 5일만인 같은 해 7월 28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DNA 분석 결과를 토대로 영아들 친부로 쿠르조를 지목했다. 여론은 그가 범인일 수 있다며 들썩였다. 이 시점에 쿠르조는 자국인 프랑스로 돌아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