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살에 떠난 '팝의 황제'…음악으로 남은 그의 메시지 [뉴스속오늘]

반백살에 떠난 '팝의 황제'…음악으로 남은 그의 메시지 [뉴스속오늘]

채태병 기자
2023.06.25 06:00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이랜드뮤지엄 주최로 열린 '셀럽이 사랑한 가방·신발' 전시회에서 고(故) 마이클 잭슨의 패션 아이템이 전시돼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이랜드뮤지엄 주최로 열린 '셀럽이 사랑한 가방·신발' 전시회에서 고(故) 마이클 잭슨의 패션 아이템이 전시돼 있는 모습. /사진=뉴스1

"Michael Jackson, king of pop, dead at 50" (마이클 잭슨, 팝의 황제, 50세에 사망)

14년 전인 2009년 6월 25일, CNN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마이클 잭슨의 부고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CNN은 "우리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의 홈비 힐스 구역에 있는 마이클 잭슨의 자택에서, 그가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이후 UCLA 메디컬 센터에서 숨진 것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1958년 8월 미국 인디애나 게리에서 철강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마이클 잭슨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조셉 잭슨에게 음악 교육을 받았다. 조셉은 마이클을 포함한 자기 아들들의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것을 깨닫고, 이들로 'The Jackson 5'라는 그룹을 만들었다.

마이클 잭슨은 6세 때 그룹의 리드 보컬로 합류했다. The Jackson 5는 1970년 한 해 동안 4개의 곡을 빌보드 팝 차트 1위에 올리는 대기록을 세우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이들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 비틀즈'라고 불리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리드 보컬이었던 마이클 잭슨은 형제 중에서도 최고의 화제성을 자랑했다. 이후 마이클 잭슨은 솔로 활동에도 나섰고 1972년 'Ben'이란 곡으로 다시 빌보드 정상에 올랐다.

성공 가도 이어간 마이클 잭슨…'팝의 황제' 등극
공연 중인 마이클 잭슨의 모습. /AFPBBNews=뉴스1
공연 중인 마이클 잭슨의 모습. /AFPBBNews=뉴스1

마이클 잭슨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4개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정규 5집 'Off the Wall'과 6집 'Thriller', 7집 'Bad', 8집 'Dangerous' 등을 통해 마이클 잭슨은 자타공인 팝의 황제 자리에 올랐다.

1982년 발매된 그의 Thriller 앨범은 약 6600만장이 팔려 세계 역대 최다 판매 앨범이 됐다. 이 기록은 4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당시 미국의 팝 시장은 백인 가수들이 주도하고 있었는데, 마이클 잭슨은 흑인으로서 미국 음악계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자신의 음악으로 세계의 인종차별 문제에 경종을 울리며, 대중문화를 매개로 사회 갈등을 봉합시키려는 노력에도 나섰다.

마이클 잭슨은 'Black or White', 'Earth song', 'We Are the World' 등 노래를 발표해 인종 갈등, 환경 문제, 전쟁과 평화 등 다양한 주제의 메시지를 던졌다.

이런 활동의 일환으로 그는 1999년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이자 휴전국인 대한민국을 방문해 공연을 펼치며 "한반도 통일이 이뤄지면 (다시 내한해) 기념 공연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에 이어 팝의 상징이 된 마이클 잭슨은 1990년 미국 백악관으로부터 'Artist of the Decade'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 밖에도 그는 13번의 그래미상, 26번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수상 등의 대기록을 남겼다.

두 번의 '아동 성추행' 연루…각종 루머에 시달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AP=뉴시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AP=뉴시스

1993년 월드 투어 중이었던 마이클 잭슨은 고소장을 받았다. 에반 챈들러는 마이클 잭슨이 자신의 13세 아들을 유원지 네버랜드에서 성추행했다며 고소에 나섰다.

마이클 잭슨 측은 고소 1년 전인 1992년 LA에서 공연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거리에서 에반 챈들러에게 가벼운 도움을 받았고, 이에 보답하고자 에반 챈들러 부자를 자기 집에 초대했다고 밝혔다. 이후 마이클 잭슨은 아들과 친해져 공연장과 네버랜드에 함께 방문해 놀았을 뿐이고 문제가 될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팝의 황제란 위치에 있었던 마이클 잭슨은 이 사건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그는 주변의 조언에 따라 에반 챈들러 부자에게 2200만달러(약 286억원)를 주고 합의했다. 이후 캘리포니아 산타바버라 검찰청은 "마이클의 범죄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사건을 마무리했다.

2003년 마이클 잭슨은 두 번째 아동 성추행 사건에 연루됐다. 당시 영국 기자 마틴 배셔가 240일간 마이클 잭슨과 동행하며 촬영한 TV 프로그램이 방영됐는데, 이 방송에 출연한 한 소년의 인터뷰가 충격적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

암 투병 중이었던 소년은 프로그램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마이클 잭슨과 한 방에서 잤다"고 말했다. 마틴 배셔는 이에 대해 마이클 잭슨에게 질문했고, 그는 "아이들과 자는 게 왜 이상한가? 그것을 성(性)적으로 보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본 일부 심리학자와 의사 등이 마이클 잭슨과 소년의 관계가 부적절해 보인다며 산타바버라와 LA의 아동보호 관련 당국에 "조사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결국 당국은 관련 조사에 돌입했고 마이클 잭슨은 2004년 4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2005년 2월부터 6월까지 법정 공방이 벌어졌고, 마이클 잭슨은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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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태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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