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년 전인 2002년 6월 22일, 당시 33세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은 홍명보가 페널티킥(PK)을 차기 위해 골대 앞에 섰다.
슈팅하기 전 호흡을 고르는 홍명보의 옆에서 이집트의 자말 주심은 휘슬을 입에 갖다 댔다. 홍명보의 맞은편에는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의 수문장 이케르 카시야스가 상기된 표정으로 '2002 국제축구연맹(FIFA) 한국·일본 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Fevernova)를 노려봤다.
자말 주심이 휘슬을 불자, 홍명보는 망설임 없이 공을 향해 달려간 뒤 인사이드 슈팅을 시도했다. 홍명보의 발을 떠난 피버노바는 골대 왼편의 그물망을 출렁이게 했다. 오른쪽으로 몸을 날린 카시야스는 골대 반대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을 바라봐야만 했다.
홍명보의 골로 대한민국과 스페인의 승부차기는 5대 3으로 한국이 승리했다.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 진출을 확정한 순간이었다.

한·일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대다수의 국민은 "개최국으로서 홈 어드밴티지를 활용해 역대 최고의 월드컵 성적을 거둘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
대표팀 역시 전례가 없는 장기 합숙 훈련으로 만전의 준비에 나섰고, 신문과 방송 등 여러 매스컴에서도 대표팀이 앞선 대회와 다른 성적표를 받을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실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끈 당시 대표팀은 월드컵 시작 전인 2002년 3~5월 동안 A매치 3승 3무 1패라는 좋은 성적을 냈다. 유일한 패배인 프랑스전(2002년 5월26일, 2대 3)에서도 우승후보로 꼽히는 팀과 대등한 실력을 보였다. 당시 프랑스의 공격수 다비드 트레제게는 "직접 경험해 보니 한국은 16강 이상의 전력"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 전문가부터 팬들까지 한국 대표팀이 4강에 진출할 것이란 예측은 하지 못했다. 그만큼 한국 축구와 세계 축구의 격차는 커 보였다.
하지만 전국민적 응원을 받은 태극 전사들은 기적과도 같은 성적을 냈다. 한국은 월드컵 D조에서 폴란드를 2대 0으로 꺾고, 미국과 1대 1 무승부를 거둔 뒤 포르투갈을 1대 0으로 제압해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이어 16강전에서 이탈리아와 맞붙은 한국은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2대 1로 이겼다. 크리스티안 비에리에게 선제골(전반 18분)을 내줬으나 설기현의 동점골(후반 43분), 안정환의 골든골(연장 후반 12분)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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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전에서 한국은 스페인을 맞아 0대 0으로 정규 시간과 연장전을 마친 뒤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전 끝에 4강행 티켓을 따냈다. 승부차기에서 한국의 키커 5명(황선홍, 박지성, 설기현, 안정환, 홍명보)은 모두 득점에 성공했다.

한국 대표팀의 4강 진출이 확정된 뒤 한반도는 태극 전사들을 응원하는 붉은 악마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서울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밤새도록 온 국민의 환호와 기념 세리머니가 이어졌다.
심지어 응급 환자를 다루는 대형 병원의 응급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장례식장 등에서도 기쁨과 감탄의 아우성이 계속해서 새어 나왔다. 시민들은 4강 진출 다음날까지 직장과 학교 등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외쳤다.
히딩크호의 한·일 월드컵 여정은 아쉽게 4강에서 마무리됐다. 준결승에서 독일(0대 1)에게, 3·4위전에서 터키(2대 3)에 패하면서 한국 대표팀의 최종 성적은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히딩크호의 이 같은 기록은 20여년이 흐른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소속으로 월드컵 4강에 진출한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이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감독이 됐다. 한국 정부는 히딩크 감독의 공로를 인정해 2002년 명예국민증을 수여했다. 명예국민인 히딩크 감독은 무비자로 한국 방문이 가능하며, 본인이 희망할 경우 별도의 심사 없이 즉시 한국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의 명예국민은 단 4명이다. 히딩크 감독 외에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본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와 마가렛 피사렛 수녀, 제주 근대화에 공헌한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사제가 그 주인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