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경험과 통찰을 깊이 있게 전합니다. 생생한 이야기와 진솔한 답변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제공하는 뉴스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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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0일 GS자산운용이 출범했다. 내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올들어 간판을 건 운용사 10개 중 한 곳이다. 그러나 GS자산운용을 단순한 신생 운용사로 치부해선 곤란하다. 재계 6위 GS그룹이 야심차게 준비한 첫 금융사이기 때문이다. 김석규 GS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사진)은 14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시장에서 잘못 가치가 매겨진 자산을 찾아 이를 매매해 차익을 추구하는 게 자산운용업"이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석 투자를 통해 성과를 이뤄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공격적인 목표나 화려한 전략을 내세우기 보다는 확고한 운용철학을 고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현재 많은 운용사들이 고유의 투자철학을 고수하기 보다는 '마케팅용 투자철학'을 내세우고 있다"며 "피델리티나 템플턴, 뱅가드와 같이 투자에 대한 한결같은 철학을 마탕으로 운용사를 꾸려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GS운용이 지닌 경쟁력도 바로 CEO에서 말단 직원
"지난 25년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나눔과 투명 경영원칙을 고수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 원칙은 끝까지 지켜낼 것입니다" 오는 15일자로 창립 25주년을 맞는 국내 벤처 1호기업 비트컴퓨터 조현정 회장의 소회다. 비트컴퓨터는 소프트웨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1983년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조 회장이 자본금 450만원으로 청량리 인근호텔 객실에서 창업한 회사다. 벤처기업 1호, 소프트웨어 전문회사 1호, 대학생벤처 1호 등 비트컴퓨터에 늘상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이 회사는 창사이래 줄곧 국내 의료정보 SW분야에서 1위를 달리며 이 분야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아왔다. 사실 25년이란 업력은 부침이 심한 IT벤처분야 뿐 아니라 소위 '굴뚝기업'의 기준으로 봐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그것도 연평균 25% 성장해 323배 가량 성장했다. ◇"생태계가 좋아야 우리도 성장한다" 이같은 장수 비결에 대해 조 회장은 "처음부터 정도경영과 투명경영 원칙에 충
"이봐, 얼른 일어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유명한 한마디과 함께 서울시 월계동 인덕대학의 아정홀에서 연극연습이 시작됐다. 폭염의 날씨에도 20여 명의 배우들은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다음달 5일 서울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 오를 정주영 회장의 일대기 연극 '성공을 넘어'를 위해서다. 작품의 극본과 연출을 맡은 장두이(56·인덕대 방송연예과 부교수)씨는 "여름휴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주영 회장에게 푹 빠져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정 회장은 일제 말기부터 어려웠던 60년대 경제상황을 헤쳐나간 현대사의 역사적 인물입니다. 순전히 한 사람의 경제인에게 초점을 맞춰 연극으로 집중 조명한 것은 아마 처음일겁니다." 주최측인 선행칭찬운동본부의 의뢰를 받고 일주일만에 대본을 썼다는 그는 무거운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재미있게 그려내려고 했다. "정 회장의 자서전 네 권을 읽으면서 연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이 시대의 눈으로 보면 이해가 불가능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말이 제게 딱 맞는 것 같아요." 1997년부터 모바일 게임시장을 개척한 김병기(45·사진) 지오인터랙티브 대표는 초창기 게임업계에 뛰어들 당시 일화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계 최대 컴퓨터 관련 전시회인 COMDEX에 참가하려고 라스베가스행 비행기를 탔어요. 그런데 우연하게 제 옆자리에 미국 모바일 게임업체인 EA모바일의 프로듀서가 타고 있더라고요. '이때다' 싶어서 사업을 설명하고 전시회에도 오게 만들었죠. 비행기에서 대충 이뤄진 대화가 인연을 되어 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습니다." 마음속에는 온통 회사 생각뿐이라는 김 대표는 서강대 컴퓨터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서 12년 동안 근무했다. 소프트웨어 분야를 접하게 된 것은 1994년 미국 피츠버그 경영대학원에서 연수하면서 부터였다. 이후 사업기획부를 거쳐 소프트사업팀에서 3년 동안 일하면서 조금씩 사업에 대한 꿈을 키웠다. "저희 어머님이 저 때문에 두 번 앓아누우셨는데 대학
"내 인생은 자전거와 닮았다. 열심히 밟지 않으면 멈출 수밖에 없었기에 쉬지 않고 달렸다. 그렇게 먼 길을 넘어지기 싫어 달리고 또 달렸더니 여기까지 왔다." 만화가 이현세(54·사진)는 2년 전 출간된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다. 1982년 '공포의 외인구단'을 그릴 당시 스물여덟이었던 그는 '까치'와 함께 갑절로 세월을 먹었다. 그간 인생의 페달을 꾸준히 밟아온 그는 지난달 학습만화 '세계사 넓게 보기'를 출간했고, 골프만화 '버디'로 드라마화 판권계약을 맺는 등 지금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주최로 지난 5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27살 까치, 100년 콘텐츠를 꿈꾼다' 워크숍에서 그는 "사람들은 제2의 전성기라고 하는데, 지금까지는 연습게임이었고 이제 시작인 것 같다"면서 싱싱하게 살아있는 눈빛을 뿜어냈다. "왜 만화를 그리는지, 어떤 만화가 재미있고 사업이 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거겠죠. 자신이 정말 즐겁게 그릴 수 있고,
2008년 7월 9일 뉴욕타임즈에는 '독도'광고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1년 전 워싱턴포스트에도 이 같은 일이 있었다. 일본의 위안부 만행을 알리는 광고가 게재됐던 것. 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 통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이 광고 뒤에는 워싱턴 위안부 범대위 간사를 맡았던 애너벨 박(박소현·40)의 노력이 있었다.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는 제11회 한인차세대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그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대해 묻자 "나이와 국적을 초월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한국의 위안부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애썼다는 사실이 매우 감동이었다"며 눈을 반짝였다. "한국인 뿐 아니라 중국이민자들, 미국인들도 참여해 기금을 모았습니다. 70~80세의 할머니들도 영어를 못해도 일일이 번역을 해가면서 열정적으로 일을 하셨어요." 쇠약한 작은 체구의 할머니들에게서 놀라운 힘을 얻은 그는 적극적으로 홍보영상을 제작하고 모금활동을 벌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로 게재된 광고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평생 목회자의 길을 걸을 줄 알았던 한 목사에게 이혼이라는 시련이 닥쳤다. 2000여 권의 책을 읽으며 재기를 꿈꾸던 그는 노점상에서 가래떡 장사로 모은 2000만 원으로 신촌 기찻길 옆에 10평 남짓한 조그만 카페를 만들었다. 1994년 이렇게 시작한 민들레영토는 민들레 꽃씨처럼 전국 30여 개 지점으로 퍼져나갔다. 한국의 '스타벅스'라고 불리는 민들레영토를 만든 지승룡(53·사진) 대표의 성공스토리다. 커피값 대신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고 '문화비'라는 이용료를 내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그는 창조경영, 감성마케팅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CEO다. "21세기를 이끌어가는 힘은 각양각색의 분야를 넘나드는 소통능력과 창의력"이라고 강조하는 그가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비결은 뭘까. "평소 명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명상이 구체적으로 실천되는 것을 더 좋아하지요. 꿈(dream)꾸기보다는 열망(desire)하려 합니다. 막연한 생각을 현실화하려는 습관이 지금
한국수입육협회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김태열 미트코리아 사장(사진)은 15일 "수입육 유통 질서 확립이 가장 중요하다"며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만 수입, 유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회장직에 선출된 후 기자들과 만나 "미 농업부(USDA)가 30개월 미만 월령을 보증하는 한국 수출용 품질평가프로그램(QSA)에 의해 수입이 진행될 것"이라며 한미 업계의 자율규제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확립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창립총회를 통해 공식 출범한 한국수입육협회는 미국산 쇠고기 안정성 문제를 담보하기 위해 월령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되도록 하는 이른바 '자율규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그동안 수입육협회는 민간 자율규제를 모토로 내걸고 법인 출범을 추진해왔지만 '대표성' 등을 이유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김 회장은 "검역원 자료에 따르면 400개 수입업체가 있고 이중 70개는 폐업했으며 이중엔 치즈 등 유제품 수입까지
수줍은 미성으로 1990년대 소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가수 김민우는 없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는 영락없이 노련한 영업사원의 모습이었다. 가수에서 수입차 딜러로 변신해 화제를 모았던 김민우(39·사진)씨. 그가 이번엔 대학교수가 된다. 내년에 대경대에 신설되는 자동차딜러학과의 전임교수로 발탁된 것. 벌써부터 학생들의 관심을 쏠리고 있다. "한 여학생이 전화를 걸어 자동차 딜러의 수입과 전망에 대해 물어보더군요. 긍정적으로 답변해줬더니 전과를 생각해봐야겠다고 했어요.(웃음)" 지난 4월 예절교육, 감성 마케팅에 대한 강의를 부탁받은 그는 이번 달부터 교육 커리큘럼을 짜는 데 참여할 예정이다. "그동안 제게 도움이 됐던 내용과 영업현장에서 깨달았던 노하우를 전해주고 싶어요. 차를 잘 팔 수 있는 법을 알려주기보다는 자신감과 서비스 정신을 심어줄 겁니다. 이 두 가지가 있다면 무슨 일을 하든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거든요." 내성적이었던 그가 이 같은 변신에 성공한 것은 철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사랑받기 보다는 두려움이 대상이 되는 편이 안전하다'고 했습니다. 사랑에는 배신이 따른다는 거죠. 하지만 저는 그래도 사랑을 선택하겠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주관하는 '2008 대한민국 신뢰받는 CEO 대상'에서 최근 행정기관부문을 수상한 김영규 강원병무청장(58·사진)이 말하는 '신(新)리더론'이다. 그는 지난해 1월 부임한 후 1년 6개월 간 믿음직스러운 리더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비결로 주저하지 않고 '사랑'을 꼽았다. "다 직원들 덕분인데 혼자 상을 받아 미안하다"며 소감을 밝힌 그는 딱딱하고 경직되기 쉬운 군대문화를 감성 리더십으로 부드럽게 변화시킨 리더로 평가받고 있다. 육군사관학교를 31기로 졸업한 후 오랫동안 군조직에 몸담았지만, 권위보다 유연함과 화합을 더 강조한다. 자신부터 항상 온화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직원들 사이에서도 다정다감한 청장으로 통한다고. "저는 어떻게든 직원들을 설득하고 감동시켜서 이끌어가려고 합니다. 그
"골프 100개 안으로 치면 1000만원 포상합니다" 신창연 여행박사 대표가 직원들에게 외친 '진짜'공약이다. 실제 직원들 중 4명이 1000만원씩을 타갔다고 한다. 즉흥적이고 효율적이지도 않은 포상이지만 룰은 엄격하다. 멀리건(골프에서 처음 실수한 티샷을 눈감아주고 다시 한번 티샷하기)은 커녕 OK(다음 퍼팅을 넣는다고 인정해주는 것)도 없다. 한 홀에서 10개 넘게 쳐도 다 센다. 물론 조건은 있다. 시작한지 1년 안에 신 대표와 세 번 골프를 쳐서 두 번 100개 미만으로 치면 1000만원을 준다. 여직원의 경우에는 좀 후하다. 120개 미만으로 치면 1000만원을 타 갈 수 있다. 신 대표 자신도 스스로가 '변덕이 많고 즉흥적'이라고 말한다. 학교 다닐 때부터 예습복습은 절대 안하고 그냥 공부도 닥치는 대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관된 원칙은 있다. '재밌게 살고, 재밌게 일하자'다. 지난해 8월 트라이콤으로의 매각도 이강진 대표와의 단 몇 차례의 만남으로 결론을 냈다고 한
‘슈퍼인플레’ 시대다. 경유 값이 휘발유 값보다 비싸지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멀게 방송과 신문에서 ‘고유가 대책’을 놓고 왈가왈부한다. 고유가 시대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원자력’. 원자력 발전의 높은 효율성과 환경적 요인, 다른 산업에의 파급효과 등이 그 이유다. 도대체 처음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짓겠다고 한 것은 누구의 아이디어 였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한국의 ‘원자력통’으로 불리는 이종훈 전 한국전력공사 사장을 만나봤다. 고리1호기 건설 때부터 관여해 프로젝트 매니저, 원자력 건설처장, 본부장, 부사장을 거쳐 한국전력공사 사장 자리에 까지 오른 이 전 사장은 73년에 원자력에 발을 들여 98년까지 25년 동안 한길을 간 원자력 전문가로 꼽힌다. #우라늄 1그램으로 석탄 3톤을 만든다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고리 1호기 원자력 발전소는 7년여의 진통 끝에 1978년 7월 2일 착공됐다. 이 전 사장은 인터뷰가 시작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