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포인트
현상의 이면을 깊이 들여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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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은 1950년 4월 모스크바에서 김일성과 함께 이오시프 스탈린을 만나 "남침해 서울을 점령하면 남로당 지하조직 20만 명이 봉기할 것"이라며 전쟁을 설득했다. 하지만 계산은 빗나갔다. 남침 후 북한군이 3일간 서울에 머물렀지만 기다렸던 민중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봉기를 주도할 핵심 세력은 이미 남한 정부에 의해 무력해진 상태였다. 민심이 공산주의에서 돌아서 있었던 영향도 컸다. 6·25 직전 남한에서 시행된 농지개혁이 이유로 꼽힌다. 농촌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던 소작농이 전답을 보유하게 되면서 자산 불평등이 크게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다수의 국민에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일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이들이 아니었다. '지킬 것'이 생기자 공산주의 체제의 '무상몰수 무상분배'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 해방 후 8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대한민국의 사회적 갈등의 중심에는 부동산이 있다. 정확히는 '아파트'다. 근로 소득이 자산가치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유주택자와 무주택자의 격차는 과거 자작농과 소작농의 격차를 연상시킬 만큼 커졌다.
부동산은 어느 정부에나 가장 위험한 정치 변수다. 진영 논리에 빠지면 더 그렇다. 특히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집값과 부동산 세제에 발목이 잡혔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X에 "국민주권정부는 망국적 부동산 투기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타파할 것"이라고 의지를 내비쳤다. 취임 후 처음 30%대로 내려앉은 국정수행 긍정 평가(리얼미터 8월 4주차 38. 9%)는 민심이 떠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러 요인이 겹쳤겠으나 집값과 전·월세 불안이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가 비거주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를 12억원으로 되돌린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소유자의 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비거주 1주택자=투기꾼'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실거주라는 잣대로 이들을 잠재적 투기자로 몬다고 집값이 잡히지 않는다. 만성적인 공급 절벽이 투기 수요를 부르고 이것이 도리어 집값을 밀어 올리는 구조다. 집이 차고 넘쳐 집값이 내려갈 것 같으면 집을 살 사람은 없다.
"꽃구름 속에 들리는 종소리는/우에노일까 아사쿠사일까" 일본 에도시대 최고의 시인 마쓰오 바쇼는 우에노의 만개한 벚꽃을 이렇게 노래했다. 벚꽃이 구름처럼 뒤덮인 풍경속에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우에노 간에이지(관영사)에서인지, 아사쿠사 센소지(천초사)에서 울리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을만큼, 봄꽃의 아름다움이 도시 전체를 감쌌다는 찬사다. 일본 도쿄 우에노공원은 메이지유신 때 조성됐다. 빽빽한 건물들에 둘러싸인 우에노공원은 녹색섬처럼 보인다. 우에노의 거목들은 마쓰오 바쇼가 노래한 그대로 구름처럼 뒤덮여있다. 150년이 넘었지만 공원내 대형 건축물은 4곳에 불과하다. 도쿄국립박물관,국립서양미술관, 도쿄도미술관,우에노노모리미술관이다. 우에노공원의 건축물은 모두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설계했다. 특히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국립서양미술관은 201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도쿄는 우에노공원의 3대 미술관을 앞세워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우뚝 섰다. 이달 초 32년만에 우에노공원을 다시 찾았다.
최근 미국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의 조직심리학 교수 애덤 그랜트는 소셜 미디어(SNS)에 재밌는 글을 남겼다. 중학교때 SNS 사용을 시작하면 고등학교에서 시험점수가 낮아진다는 내용이다. 애덤 그랜트가 "아이들이 SNS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한 이 글에는 3만3000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렸다. 전 세계에서 청소년의 SNS 이용금지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작년 말 호주가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 이용자의 SNS 이용을 금지한 것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프랑스 등이 SNS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한국도 청소년의 SNS 이용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 청소년기 SNS 사용이 미치는 부작용 때문이다. 그랜트가 인용한 내용은 이탈리아 밀라노비코카대 마르코 구이 교수팀의 연구결과다. 연구팀은 이탈리아 북부 고등학생 5227명을 대상으로 SNS를 처음 사용한 시점과 학업성취도의 관계를 분석해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인간행동'(Nature Human Behaviour)에 발표했다. 이 연구는 6학년(중1)때 처음 SNS 계정을 만든 학생은 9학년(고1) 이후에 계정을 만든 학생들보다 이탈리아어는 0.
수십년간 보수를 하지 않은 도로가 있다. 사람은 덜 다니는데 차만 늘었다. 비어가는 차에 승객을 더 태우자고 해도, 다른 길로 다니던 사람을 오도록 하자는데도 막고 있다. 1972년부터 변함이 없는 교육교부금과 1994년부터 획일적인 농어촌특별세 얘기다. 먼저 교육교부금.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라는 긴 이름의 교육교부금은 내국세의 20. 79%가 자동 연동돼 쌓이도록 55년 전부터 묶여있다. 1960 ~ 70년대는 교실 하나를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쓰는 '2부제' 수업이 흔했고 학급당 학생수가 70 ~ 80명이 넘었다. 1970년대 학령인구는 약 800만~ 900만명에 육박했고 1980년대 초반에는 10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뒀다. 빈약한 재정에도 후세만큼은 제대로 키우기 위해세수와 연동되는 교부금은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현재 초·중·고등학교 재학생 수는 약 510만 명 안팎으로 감소했다. 향후 5년내에 400만 명대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교부금 규모로 따져보면 1972년은 1800억원(현재 가치 7조4000억원), 2026년 기준 예상액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기업의 호황으로 약 76조~80조원이다.
프랑스 파리를 덮친 폭염이 글로벌 화제였다. 서유럽 다른 도시도 극한 기후를 마주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파리에 유독 관심이 집중된 것은 파리가 갖는 독보적인 위상 때문이다.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100대 도시'에서 파리는 지난해까지 5년 연속 1위를 지켰다. 음식과 패션, 역사, 예술의 중심지로 파리를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파리의 이미지는 19세기 중반 완성됐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가 조르주외젠 오스만 남작에게 맡겨 단행한 '파리 대개조'의 결과다. 그 이전까지 파리는 낭만의 도시가 아니었다. 거리엔 오물이 넘쳤고, 콜레라가 반복적으로 덮쳤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은 시민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가전을 벌이기 유리했다. 오스만은 도시를 근본부터 바꿨다. 파리 개선문을 중심으로 직선의 방사형 가로망을 뚫어 군대가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했다. 바람길을 만들고 하수도를 정비해 위생을 개선했다. 엄격한 건축 규제가 적용된 5~6층 높이의 통일된 석조 건물은 파리의 상징이 됐다.
"부자를 위해 상속세를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개미투자자와 국민연금, 퇴직연금을 위해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상속세를 줄이려고 주가를 낮추고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도 안 하고 편법적 승계에만 매달리면 막을 수도 없고, 기업 경쟁력은 떨어지고, 일자리는 줄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만 심해진다. " 기업지배구조 문제를 제기해 온 강성부 KCGI 대표의 저서 '좋은 기업 나쁜 주식 이상한 대주주' 중 한 대목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배당 활성화와 자사주 매입·소각,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등 주주환원 제도화가 빠르게 진전됐다. 여기에 더해 상장사 대주주가 상속·승계를 앞두고 기업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하려는 것을 막기 위한 이른바 '주가누르기 방지법'까지 논의된다. 이는 PBR(주가순자산비율)이 0. 8배 미만인 상장사의 최대주주가 가업을 상속·증여할 때 4개월 평균 주가 대신 순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반영해 비상장주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평가하고, 세금 계산 기준도 순자산가치의 일정 비율 이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부동산 문제에 정통했던 한 신문사의 선배는 밤늦게 청와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오늘 가판신문 기사를 봤는데 상의할 수 없느냐"는 청와대 고위직의 전화였다. 이 선배가 쓴 신문의 1면톱 제목은 '판교신도시에 1만가구를 더 짓자'였다. 다음날은 토지공사의 공공택지 입찰일이었다. 이미 판교 택지의 용적률이 80%대로 계획된 상태여서 그 기사는 결과를 바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새벽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노무현 대통령이 입찰 중지를 지시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판교의 주택 공급수는 원래 계획보다 4000가구 정도 늘어났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내내 30여차례 부동산대책을 쏟아냈다. 부동산 투기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세금·대출 규제로 압박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공급 확대에도 힘썼다. 국민임대주택을 사상최대인 47만호를 승인했다. 판교·화성·김포·파주 등 수도권 2기 신도시 네곳을 건설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국회의 권력구도에 따라 입법속도가 달라졌다. 취임초기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말할 정도로 야당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최근 필자는 클로드에서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연결해주는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MCP·AI와 외부 데이터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을 사용해보고 상당히 놀랐다. 공시는 기업의 재무와 경영현황을 보여주는 핵심 데이터다. 다만 인적·물적분할, 기업합병처럼 한동안 들여다봐야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한 공시도 많다. MCP를 연결한 후, 상장기업 공시를 분석해달라고 하자 앤트로픽의 최신 모델 '페이블(Fable) 5'는 불과 1~2분 만에 증권사 애널리스트 수준의 답변을 내놓았다. 최근 3년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분기별 매출과 영업이익, 영업이익률을 그래프로 그려달라고 했을 때도 2분 밖에 안 걸렸다. 클로드와 외부 데이터를 직접 연결시킨 MCP의 효율성과 페이블5의 높은 성능 때문이다. 이제 개인 투자자도 하려고만 한다면 증권사 애널리스트 수준의 분석을 할 수 있게 됐다. 인공지능(AI)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AI발 혁명의 진원지인 미국에서는 빅테크가 하루가 멀다 하고 감원을 발표하고 있다.
그의 영화를 즐겨보곤 했지만 마니아는 아니었다. 30주년을 맞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개막작으로 무협영화 '표인: 풍기대막'을 들고온 홍콩의 원화평(위안허핑) 감독 얘기다. 50여년간 영화제작 현장에서 그는 여전히 현역인데 비해 노장은 물론이고 신예 감독은 더 찾기 힘든 한국 영화와 콘텐츠업계의 현실을 돌아볼까 한다. 지난 수십년간 영화관과 OTT에서 그가 감독(무술감독 포함)한 영화 취권, 황비홍 시리즈, 매트릭스, 킬빌 등을 계속 봤지만 '올해 위안 감독 나이가 어떻게 되지' 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위안 감독을 국내 영화계와 연결지어 처음 생각하게 된 것은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때였다. 당시 위안 감독은 폐막작 '엽문 외전' 연출을 맡아 방한했고 그와 1945년 동갑내기인 한국의 이장호 감독은 과거의 업적으로 영화제 기간 동안 회고전이 열렸다. 흥행작이자 문제작이었던 '별들의 고향', '바람불어 좋은 날', '외인구단' 등으로 1970 ~ 90년대를 관통한 이장호 감독의 후속작이 나오기를 응원하고 싶었다.
대중미디어가 없던 시절 가수는 공연장을 돌며 관객을 만났다. 실력 차이가 있더라도 무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TV가 등장하고 음원기술이 발달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동일한 콘텐츠가 대규모로 복제·유통되자 소수의 스타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뒀고, 가수들 간 격차는 커졌다.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장을 지낸 셔윈 로젠은 1981년 발표한 논문(The Economics of Superstars)에서 이를 '슈퍼스타 경제'라고 불렀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소비는 상위 소수에 집중되고, 그 결과 승자가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노동경제학에 나오는 이론이지만 오늘날 산업과 국가경제에 적용해도 손색없다. AI 기술 발전과 투자 확대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관련 기업이 성장을 견인한다. 올해 경상수지는 역대 최대 흑자가 예상되고 경제성장률이 3% 안팎까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지표만 보면 한국 경제는 보기 드문 황금기를 맞았다. 하지만 한 산업에 부가가치와 자원이 집중되는 문제가 생긴다.
평소에는 그 가치를 잊고 산다. 전쟁이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바로 에너지다. 1970년대 중동전쟁과 석유파동 때도 그랬고, 미국-이란 전쟁으로 석유·LNG 대란을 겪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에너지를 갖지 못한 나라가 에너지를 가진 나라에 의존하는 것 역시 불변의 사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에너지 자립에서 에너지 지배로 나아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액체 금'을 가진 나라라는 점에 근거해 석유·가스 생산을 최대한 늘리고 에너지 가격을 낮춰 제조업 강국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취지였다. 그의 말은 일정 정도 현실이 됐다. 미국·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미국의 원유·석유제품 수출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LNG 수출도 역대 최대 수준으로 치솟았다. 중동산 에너지 수입길이 막힌 유럽과 아시아가 미국산 원유·LNG를 찾은 것이다. 미국의 '에너지 패권'이 발현된 셈이다. 이는 결국 외교·안보·경제의 지형을 바꿔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