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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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역사에서 배태된 문제로 그것의 한계만 지적한다고 오늘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당면한 문제는 지금 바로 잡아야만 보다 나은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 오늘의 과제와 책임, 이와 함께 자유주의의 기본적인 성격도 깊이 살펴봐야 한다. 먼저 문제의 본질을 살펴보고 옳고 그름도 따져본 후 좋은 것은 그대로 지속시키되 더 좋은 것을 이룩하기 위해 개혁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접근이다. 상대방의 논리를 배격하거나 적대적으로 임하는 ‘패거리’식의 주장이나 결정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자유주의적 접근은 적대적 대결이 아니라 상대방을 인정하고 옳고 그름을 함께 판단하면서 연대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유주의는 감성이 아니라 이성에 바탕을 둔 개혁의 사상이다. 이성적 개혁은 사건이나 사물의 인과관계를 깊이 살펴보고 옳고 그름을 밝혀내는 객관적이고도 성찰적인 접근을 의미한다. 자유주의의 문제 해결 방식은 혁명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비록 혁명적일 정도로 철저한 변혁을 추구해도
현직 국회의원 10명 중 8명은 자신의 이념성향이 ‘중도’(중도·중도보수·중도진보)라고 내세우지만 이는 다분히 유권자들에게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의 방어기제에 가깝다.(☞국회의원 10명 중 8명 "나는 중도파"[the300 1주년- 국회의원 설문조사⑧] 기사보기) ‘따뜻한 보수’나 ‘낡은 진보’ 같이 수식하는 바가 애매모호하거나 형용모순으로 보이는 단어의 조합이 등장하기도 한다. ‘보수’나 ‘진보’ 그 자체만으로 정치인의 이념성향을 나타내기엔 우리 정치권의 지형이 너무나 왜곡됐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주의 역사가 짧고 정치 제도와 이를 뒷받침할 사상적 기반이 취약한 탓이기도 하지만 정치를 하겠다고 정치권에 뛰어든 정치인들의 문제점도 크다. '왜 정치를 하는가?'란 물음이 한동안 회자되기도 했지만 왜 정치인이 정치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정치인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국회의원 진영이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이자 뿌리인 '자유주의'에 대해 돌아보게 된 것도 우리 정
나는 몇 해 전에 책 한 권을 쓴 적이 있다. 책의 제목을 ‘인간의 얼굴을 한 자유주의자’라고 하고 나 자신을 자유주의자(liberalist)라고 말했었다. 그 후로부터 이런 질문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자유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유주의의 정책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 자유주의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그때마다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자유주의를 한 두 마디로 말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어려움이었다. 맹목적일 정도로 자유주의를 내걸고 달려왔지만 내 스스로 생각이 깊지 못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점에서 다시 자유주의를 생각해 보면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로 명명했던 그 때와 오늘 사이에 느껴지는 차이점은 무엇인가? 누구에게 설명할 만큼 처절한 성찰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에 오직 새로운 다짐을 위하여 이 문제를 바라봤다. 자유주의자로 살고 싶고 그것을 이념의 푯대로 삼아 먼 뱃길을 저어가고 싶은 열망 때문에 나는 지금 국회의원이란 자리에 매달려 있는지도 모른
"만약 칫솔과 다이아몬드를 똑같게 취급한다면 칫솔은 덜 잃어버리겠지만 다이아몬드는 더 많이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J.F. 케네디 대통령의 국가안보 특별보좌관으로 활약한 맥조지 번디는 '과도한 비밀주의'에 대해 이렇게 우려했다. 모든 것을 비밀로 하게되면 정작 중요한 사안을 놓치게 된다는 의미다. 지난 25일 야당은 박근혜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위해 비밀 테스크포스(TF)를 만들어 운영해왔다고 폭로했다. 규정에 근거하지 않은 조직을 만들고 청와대가 직접 업무보고까지 받았다는 의혹도 나온다. 정부는 현행 역사교육지원팀의 한시적 인력보강일 뿐 비밀조직이 아니라는 설명이지만 문을 걸어잠그고, 불을 끈 채 야당 의원과 취재진의 진입을 막아 의문을 키웠다.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각은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다. 과도한 '비밀주의'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어진 탓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도 마찬가지다. 감염자가 확대돼고 전국이 메르스 공포에 떨면서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변협이 검사평가제를 하겠다고 나섰다. 검사의 적법절차 준수여부, 피의자 권리 침해여부를 평가해 내년 1월부터 우수 검사와 하위 검사를 발표하겠다는 방침을 21일 발표했다. 결과를 대검찰청에 제출해 인사자료로 활용하게 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검사평가제'는 올 1월 당선된 하창우 변협 회장의 공약 중 하나였다. 하 회장은 변협 회장 선거에서 "평가받지 않는 성역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며 검사평가제를 공약했다. 그는 이미 2008년 법관평가제를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시절 도입한 바 있다. 변협은 지난 8월엔 "국회의원 300명의 의정활동을 평가한 뒤 결과를 각 소속 정당에 보내 공천 등에 반영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의원 평가'계획도 밝혔다. 여의도 정가엔 아직 변협 '의원 평가'소식이 널리 퍼지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평가 중에 있고 이르면 연말에 발표된다. 실제 발표가 나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하위'평가를 받는 의원들은 예상치 못한 '폭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어 큰 파장이
진영 새누리당 의원에게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일 것이다. 탈박(탈박근혜)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니지만 김무성·유승민 등 다른 탈박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배신의 정치'라고판결내린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나, 잊을만하면 청와대 고위 관계자발로 정치행보에 태클이 들어오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는 달리 박 대통령은 '항명파동'으로 정권 초반을 얼룩지게 한 진 의원에 대해 단 한번 비난이나 원망을 표한적 없다. 사퇴 당시에도 박 대통령은 진 의원을 붙들고자 했다. 2013년 9월 22일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 의사가 전해진 후 3일 후인 25일 사우디아라비아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진 의원에게 정홍원 국무총리를 보내 "사의는 없는 일로 하겠다"는 메시지까지 보냈다. 당시 박 대통령의 뜻은 완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 장관을 세종시 총리집무실에서 만난 정홍원 총리는 장관직 수행이 어렵다는 뜻을 전달하려는 진 장관의 말을 아예 들으려하지 않았다. 진 장관이 사의
계절이 바뀌면 세상도 달라진다. 그리고 사람도 변한다. 나는 올바른 가치와 성실한 생활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믿음만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것 자체가 순진했음을 깨달게 된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건과 바람에 따라 상황은 변하고 이 세상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내 생각의 짧음을 부끄러워하면서 멀어져 가는 그 세상에 매어진 운명의 줄만 바라보았다. 정치학에서는 정치를 ‘갈등의 해결’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는 ‘갈등의 조성’이며 ‘광장의 대결’로 변질돼 버린다. 그 때문에 정치를 일러 ‘올바름, 즉 政은 正’이라고 강조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논리는 한낱 관념으로만 치부되고 있다. ‘적과 동지’로 양분된 정치의 무대 위에서는 ‘제로 섬 게임’만이 철칙처럼 지배한다. 명분도, 논리도, 약속도 모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질 뿐이다. 그 현
1980년대 어느날. 부산 남구의 부산KBS 공개홀 복도에서 그를 만났다. 천하장사 이만기. 그는 1982~1991년 씨름선수로 활약했다. 이만기식 호쾌한 씨름에 열광하는 '이만기키즈'가 적잖았다. 뒤집기, 들배지기… 발밑의 흙을 박차고 자기보다 큰 상대를 눕히는 모습이란. 이씨가 최근 한 방송에서 "그때는 씨름이 인기, 지금 김연아보다 인기 많았다"고 했는데 결코 빈말은 아니다. 그날 KBS 공개홀에서 씨름대회가 열렸다. 그를 마주친 것은 예상치 못한 행운이었다. 아마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려 했던 모양이다. "사인 해달라고 해봐." 아버지가 등을 떠밀었다. 너무 긴장했던 걸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말았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면 속으로 '우와, 이만기 만났다'고 여러번 되뇌었던 것 같다. 이씨는 겁없는 신예 강호동의 등장 후 은퇴했다. 그 후 24년, 그때의 초등학생 이만기키드는 아이아빠가 됐고 그는 교수·씨름해설자·방송인으로 변신했다. TV 속 그는
냉전이 한창이던 1959년 2월23일 저녁. TV로 BBC 뉴스를 보던 영국 국민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자신들의 수상인 해럴드 맥밀란이 사실상의 적국인 소련 모스크바에 커다란 러시아식 털모자를 쓰고 나타나서다. 그리고 놀라움은 곧 환호로 바뀌었다. 털모자를 쓴 맥밀란은 이날 크레믈린에서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와 만나 냉전 긴장 완화에 합의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첫 영소 정상회담이었다. 맥밀란은 "어떤 어려움과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위해 힘을 모으자"고 했다. 맥밀란의 러시아식 털모자는 영국과 소련 양국 국민 모두에게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가 털모자를 쓰고 있는 사진은 이후 오랫동안 영소 간 평화의 상징으로 남았다. 국제외교에서 사진 한장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때론 백마디 말보다 강하다. 모자와 같은 소품을 활용한다면 효과는 배가된다. 방문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모자를 쓴 상대국 정상 등 대표의 모습은 양국의 우호 관계를 대내외
박근혜정부 최고의 기린아, 그러나 '여왕의 남자'를 거부한 '항명파동'의 주인공, 국민들에게 각인된 정치인 진영의 모습이다. 2012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꾸려지면서 진영 의원은 박근혜정부 핵심 실세로 부상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그를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하고 대선공약을 정부 정책으로 다듬는 작업을 그에게 맡겼다. 정관계 인사들과 언론매체들이 진영 의원에게 몰려들었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에 초미의 관심이 집중됐다. 박근혜정부 1기 내각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돼 박근혜정부 최대 업적이 될 복지 분야를 책임지는 '실세 장관'으로 떠올랐다.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서 그의 비중도 커졌다. 정부 출범 다음해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초연금 공약 수정에 반대, 장관직을 사퇴했고 이후 '침묵'을 지켜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 총선에서 당선돼 4선 의원으로 올라서게 되면 박근혜정부 임기말
"나는 지금 거친 정치의 들판에 외롭게 서있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13년 9월 '항명파동' 속에 박근혜정부란 '뗏목'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뛰어 내린" 후 "온 몸이 젖은 채 강가에 서서 멀어져 가는 그 뗏목만을 바라보아야 했다." 그는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는 뗏목이 "격류를 잘 헤치고 잠잠한 장강으로 들어설 수 있기만을 염원"했다. 복지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했던 진영 전 장관이 3년 만에 그동안 담아뒀던 이야기를 풀어낸다. 박근혜정부 대선공약을 주도하며 '희망'과 '행복'의 나라를 향해 꿈틀거리던 열정, 그의 꿈이 내동댕이쳐진 듯한 시련을 묵묵히 견뎠던 과정, 그리고 다시 '국민행복'의 여정을 향해 정치의 '항해'를 시작하고자 하는 다짐을 말한다. 진 전 장관은 '미래를 찾는 긴 여정-리버럴리스트의 매니페스토'라는 주제로 우리나라 정치 개혁 과제와 비전을 풀어낸다. 지금까지 못다한 그의 이야기는 the300 사이트의 '진영의 명예혁
지역구 의원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다른 국회의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난 17일 대구 동구 최대의 행사인 '어울림한마당'이 열리는 대구 율하체육공원에 나타난 유승민 의원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행사장에서 마주치는 지역민들과 손을 잡고 인사하느라 숨돌림 짬도 없었습니다. 행사 부스에서 부침개를 부치느라 손이 지저분하다고 악수를 주저하는 아주머니들의 손도 덥썩덥썩 잡으며 친근감을 표시했습니다. 동구을 지역구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전국적 유명세를 떨친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보였습니다. 팬을 자처하며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어디를 가나 환영받는 모습에서 내년 총선에서 공천탈락의 우려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전날 대구 계산성당 강연에서 "공천받을 것이라 100% 확신한다"는 그의 말이 빈말로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청와대의 '대구 물갈이'설로 유 의원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도 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