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LIFE]유재정 KT캐피탈·렌탈 사장
"선을 그어라. 많은 선을 그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실물을 보고 그려도 좋고, 기억으로 그려도 좋다." 프랑스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가 그림을 배우러 찾아온 애드가 드가에게 강조한 말이다. 드가는 이를 평생 잊지 않았고, 일생 동안 수많은 데생을 하며 성공적인 후기 인상파 대표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KT캐피탈의 초대 CEO인 유재정 사장(55)은 KT의 잠재력을 캔버스에 구현하는 '선긋기'에 한창이다. KT렌탈 CEO도 겸직하는 그는 모회사인 KT 고객들을 대상으로 판매채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현재 가구단위로 구성된 판매망을 개인고객 단위로 재편하는 구상을 진척시키고 있다.
KT캐피탈은 설립 1년 만에 자산 6000억원에 당기순이익 80억원을 낼 정도로 급성장했다. 유 사장의 경영능력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그는 부산고, 성균관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씨티캐피탈에서 26년간 재무, 인사, 기획, 영업 등 다방면의 경험을 쌓았다. 이후 효성캐피탈 대표이사를 맡으며 캐피탈업계에서 CEO로 이름을 날렸다.

유 사장은 상당한 실력을 자랑하는 화가이기도 하다. 서울 삼성동 KT캐피탈 본사 접견실에는 그가 그린 유화가 걸려있다. 1991년 겨울 성균관 명륜당 앞 눈꽃을 품에 안고 있던 은행나무의 풍경을 담은 것이다. 화폭 전반에 따뜻한 색채감을 부여해 한겨울 틈새를 잠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의 느낌을 부드럽게 묘사했다. 눈 녹은 물을 머금은 나뭇가지도 명암효과를 통해 제대로 담아냈다.
"붓을 처음으로 잡은 것은 부산중 시절 미술부에서였지요. 날카로운 만평으로 이름이 높았던 박재동 화백(예술종합대 교수)과 만나게 된 것도 그곳에서였습니다. 화폭이 물들어가는 모습에 한참 빠져있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부모님의 만류로 붓을 잠시 놓게 됐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지금까지 왔는데, 작품 수는 아마 보통 미대생들에게 약간 못미치는 정도일 겁니다."
그는 졸업 후에도 틈틈이 작품에 몰두했다. 한 지인이 전해준 일화. "제가 1980년대 후반 유 사장과 함께 씨티그룹에서 근무하던 시절로 기억합니다. 목포 근방 한 무인도에서 회사 워크숍이 있었지요. 유 사장은 워크숍을 마치고 잠시 짬을 내 풍경화를 그리겠다고 사라졌는데, 그림에 얼마나 몰두하고 있었는지 그만 배 시간을 놓쳐 섬에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연락도 안되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어요."
유 사장은 그림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업무 열정도 뜨겁다. 특히 시장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마케팅 포인트를 잡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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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앞서 CEO로 첫 '등단'한 효성캐피탈의 경우 취임 당시 직원수는 6명, 자산은 1600억원에 불과했다. 그는 사업영역이 협소하고 지나치게 보수적인 영업을 해온 점을 개선, 6개월 만에 자산을 7000억원으로 키웠다.
외형뿐 아니라 내실을 다지는데도 주력해 단기간에 효성캐피탈을 그룹 주요 계열사로 자리잡도록 했다. 조석래 효성 회장의 신임이 얼마나 두터웠던지 KT렌탈·캐피탈 사장으로 선임된 후 사표를 받아주지 않아 유 사장은 한달간 효성캐피탈과 KT렌탈 사장을 겸직해야 했다.
"앞으로 와이브로, 모바일, 노트북, 메가패스, 메가TV 등 KT 고객들이 개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상품들에 대한 금융서비스를 확대하는데 주력할 방침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회사 연계 사업 만으로는 부족하지요. 프로젝트파이낸싱(PF), 할부금융, 신기술 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확장해 기초인프라를 세운 후에야 캡티브 판매가 원활히 돌아갑니다. 2010년까지 자산규모를 3조원까지 늘릴 생각인데, 그때까지는 그림을 잠시 접어야겠습니다." 유 사장의 각오다.